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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 미술관으로 사용중에 있으며 현제 이쾌대 작품 전시중에 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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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쾌대의 작품> 미리 눈요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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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쾌대[ 李快大 ] 1913∼1965. 서양화가.개설
서울의 휘문고보 재학시절인 1932년 일본의
데이코쿠미술학교(帝國美術學校)에
유학하여 1938년에 졸업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경상북도 칠곡의 대지주 집안 출생으로, 미술 및 복식사, 민속사에 깊은 식견을 가지고 있던 맏형 이
여성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미술에 관심을 가졌다. 1928년 대구 수창보통학교를 졸업했고 휘문고등보
통학학교에 입학하여 미술교사로 재직 중이던 화가 장발에게 미술을 배운 것이 계기가 되어 본격적
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932년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면서 화단에 데뷔하였고, 그 해 가을에 제3회 전조선남녀학
생작품전람회 회화부 2등상을 수상했다. 1934년 일본으로 유학, 도쿄 제국미술학교에 입학하여 1938
년 졸업했다.
1938년 도쿄에서 열린 제25회 니카텐(二科展)에 「운명」을 출품해 입선한 이후 3년 연속 입선하였
다. 당시의 작품은 개성적인 표현 감각과 예민한 조형 의식으로 전형적인 한인 여인상이라는 주제에
치중되어 있었다. 1941년 도쿄에서 이중섭(李仲燮), 진환(陳瓛), 최재덕(崔載德), 문학수(文學洙),
김종찬, 김학준 등과 조선신미술가협회를 조직하고, 1944년까지 도쿄과 서울에서 동인전을 가졌다.
1945년 광복 직후인 1946년 조선조형예술동맹 및 좌익의 조선미술동맹 간부가 되었다가 스스로 이
탈하였다. 1947년 8월 ‘진정한 민족예술의 건설’을 표방하면서 김인승, 조병덕, 이인성 등 18명으로
이루어진 조선미술문화협회를 결성해 위원장이 되었고 1949년까지 4회의 회원 작품전을 가졌다.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는 독도(獨島) 어민 참변 사건을 주제로 삼은 참담한 분위기의 사실적인 대작
「조난」(1948년)과 영웅적인 초인적 의지의 인간상을 표현한 「걸인」(1948)이 있다. 「군상Ⅰ-해
방고지」도 같은 해에 완성하였다.
1948년 서울지검에서 운영하던 좌익 인사 사상전향기구 보도연맹에 가담하여 전향하였다.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에 서양화부 추천 작가로 참가하여 정물화 「추과(秋果)」를
출품하였다. 홍익대학교 강사로 일하던 중 한국 전쟁이 발발하여 서울이 조선인민군에게 점령되었을
때 (남)조선미술동맹에서 활약했다. 이후 인민 의용군으로 참전하다가 9·28 수복 직전 서울을 탈출
했으나 대한민국 국군에 체포되어 부산과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구금되었다.
그러다가 1950년 6·25전쟁 직후, 서울에 급조되었던 남침 북한 체제의 남조선미술동맹에 적극 가담
하였던 끝에 인민 의용군으로 참전하다가 포로가 되어 거제 수용소에서 휴전을 맞이하였다.
하지만 남북 포로 교환때 자의로
북한을 택하여 넘어갔다.
첫댓글 사상이 무엇인지? 이쾌대는 경북 칠곡의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소위 말하는 부르조아
출신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또한 그는 이미 결혼하여 아이가 있는 몸으로 단독 월북
하였고 625을 맞이하여 포로가 되어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서 포로 교환시 다시 이북을
택하여 북으로 돌아 갔다가1965년경 병사하였다고 합니다..예술가가 무슨 사상의 병이
생겨 처자식를 버리고 갈 정도라면, 물론 북에서 다시 결혼했다고 하나...
이건 정상이 아닌 병적이로 소이다.사상의 병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