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여, 내 말 좀 들어보오
문희봉
오늘 어떤 친구의 카톡 편지를 받았소. ‘용서를 해 줄 사람이 있으면 오늘 해주라.’고요. 오늘 그 용서가 행해지지 않으면 내일은 그 사람을 영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더이다. 그렇지 않소. 용서도 기회를 잘 타야 한다고 생각하오. 오늘 할까, 내일 할까 망설이다 보면 영원히 할 수가 없을 것 같기도 하오.
친구여! 이제는 이성의 벽이 허물어지고, 가는 시간, 가는 순서도 다 없어졌나 보오. 초중등학교 동기들이 만나면 왜 이리도 반가운지요. 오랜만에 만났어도 ‘야, 자’ 하는 사이이니 그보다 좋은 사이도 없지 않나 싶소. 남녀 구분 없이 부담 없는 좋은 친구 만나 산이 부르면 산으로 가고, 바다가 손짓하면 바다로 가고, 하고 싶은 취미생활 마음껏 하며 남은 인생 후회 없이 즐겁게 살다 가는 것이 최선의 삶인 것 같소.
한 많은 이 세상(꼭 그렇지만은 아닐 테지만) 어느 날 갑자기 소리 없이 훌쩍 떠날 적에 돈도 명예도 사랑도 미움도 가져갈 것 하나 없는 빈손이요, 동행해 줄 사람 하나 없으니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다 쓰고 쥐꼬리만큼 남은 돈 몇 푼 있으면 자신을 위해 아낌없이 다 쓰고 갑시다. 행여라도 사랑 때문에 가슴에 묻어둔 아픔이 남아 있다면 미련 없이 다 떨쳐버리고 "당신이 있어 나는 참 행복합니다."라고 진심으로 얘기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나 남은 인생 건강하게 후회 없이 살다 갑시다.
이 세상에서 진실한 친구가 한 사람이라도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은 먼저 남을 배려하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용기 있는 사람은 용서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단 한 사람일지라도 그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은 모든 것을 긍정하면서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삶입니다.
늘 남을 비웃는 버릇을 가진 사람은 남들도 자기를 비웃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남이 말하는 중간에 말을 낚아채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악수하면서 눈을 딴 곳에 두고 있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상대보다 조금은 덜 훌륭하다고 생각하면 실수가 없습니다.
남이 나보다 좀 우둔해 보이는 것은 그가 절대 못나서가 아닙니다. 보는 사람의 기준이 잘못 설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나름대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컴퓨터를 열어서 인터넷이라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앞서가는 사람입니다. 집안에 가만히 앉아 놀기보다는 집 주변이라도 돌아다니며 건강을 다지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새로 산 휴대폰 사용이 어렵다고 들고만 다닌다면 비싼 돈 주고 왜 샀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저 아무렇게나 이것저것 작동시켜보다 보면 오묘한 이치를 깨닫게 됩니다. 새로운 세계에 입문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손에 익숙해집니다. 젊은이들과 대화가 가능해집니다.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합니다. 좋아하는 드라마 하나는 꼭 보는 습관도 갖는 것이 좋습니다. 그 드라마 한 편이 내 지루함을 달래주는 청량제 역할을 할지도 모르니까요. 취미생활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방법 중 제일은 취미생활입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 즐거움의 욕구를 타고 납니다. 그래서 즐거운 일을 많이 할수록 건강해집니다.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어림잡아 생각해도 길어봤자 8, 90입니다. 친구여! 여생을 후회 없이 살다 갑시다. 어차피 인생은 짧은 여행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인생 뭐 별것 있겠습니까? 그저 욕심 조금씩 줄이면서 하루하루 즐기면서 살면 되는 거지요. 내 몸속 욕망의 피 죄다 흘려버리고, 증오와 사악과 부정의 칼을 버리고, 나뭇잎처럼 잎을 떨구어 비우는 것이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으로 삽시다. 욕심을 버리고 열 지어선 나무들이 자라는 산기슭은 평온하기만 합니다. 생각해보세요. 물이 산을 두고 가지 않고, 산 또한 물을 두고 가지 않습니다.
언뜻 김상용 시인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 참 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 건 웃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