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담 한마디
수천 년 이래로 모든 국가 대사는 아침에 결정되었으며, 나아가 개인이 처리하는 정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를 들어 증국번은 정치를 할 때 회의를 별로 하지 않고 부하들을 찾아가서 함께 아침 식사를 하면서 정무를 논의하였는데, 한 사람이라도 도착하지 않으면 젓가락을 들지 않았습니다. 지난날의 조회와 지금의 회의를 잘 비교 연구해서 국가의 장래 제도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갑시다. 하루는 공자가 조회에서 돌아온 염유에게 오늘은 왜 이렇게 늦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염유가 논의할 정무가 있어서 그랬다고 대답하자, 공자는 “나는 다 알고 있다. 만약 국가 대사와 같은 것이라면, 비록 내가 정사에 참가하고 있지는 않아도 그 소식을 직접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공자의 이 말은 매우 유머가 있는데, 아마도 그가 이 말을 할 때는 틀림없이 의미 있는 미소를 지었을 것입니다. 염유를 한방 먹인 것이지요.
정공이 물었다. “지도자의 말 한마디로 나라를 흥성케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런 일이 있습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말이란 그처럼 간단하고 기계적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말하기를 ‘임금 노릇 하기도 어렵고, 신하 노릇 하기도 쉽지 않다.'고 하는데, 만약 임금 노릇 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안다면 이 한마디로 나라를 흥성케 할 수 있는 것에 가깝지 않습니까?”
“지도자의 말 한마디로 나라를 잃게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런 일이 있습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말이란 그처럼 간단하고 기계적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말하기를 ‘나는 임금 노릇 하는 데 다른 즐거움이란 없고, 다만 내가 말하기만 하면 아무도 어기지 않는 것뿐이다.’고 하는데, 만약 그 말이 올바르기에 아무도 그것을 어기지 않는다면, 매우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올바르지 않은데도 아무도 그것을 어기지 않는다면, 한마디로 나라를 잃게 할 수 있는 것에 가깝지 않습니까?”
定公問:一言而可以興邦, 有諸? 孔子對曰:言不可以若是其幾也! 人
정공문 일언이가이흥방 유저공자대왈언불가이약시기기야인
之言曰:「爲君難, 爲臣不易」。如知爲君之難也, 不幾乎一言而興邦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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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一言而喪邦, 有諸? 孔子對曰:言不可以若是其幾也! 人之言曰:
왈 일언이상방 유저 공자대왈 언불가이약시 기기야 인지언왈
「予無樂乎爲君, 唯其言而莫予違也」。如其善而莫之違也, 不亦善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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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不善而莫之違也, 不幾乎一言而喪邦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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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노나라의 정공定公이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고 하는데, 특히 정치에 종사하는 사람은 더욱 그래야 한다고 합니다. 지도자의 말 한마디가 ‘나라를 일으킬 수 있다.’興邦고 하는데 정말 그렇습니까?” 그러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말이란 그런 게 아닙니다. ‘한마디로 나라를 일으킬 수 있다.’(一言可以興邦)는 것은 하나의 원칙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알고 있는 ‘임금 노릇 하기도 어렵고, 신하 노릇 하기도 쉽지 않다.’(爲君難, 爲臣不易)는 말도 한마디가 아닙니까?” 이 역시 기회를 보아서 하는 공자의 교육방식입니다. 그는 자기 나라의 임금을 직접 가르치기가 거북했기 때문에, 임금이 질문한 기회를 이용하여 은연중에 그를 교육한 것입니다. 정공이 지도자였기 때문에, 공자는 “사람이 ‘임금 노릇 하기도 어렵고, 신하 노릇 하기도 쉽지 않다.’는 이 말을 이해한다면 나라를 일으킬 수 있고 사업 전도가 양양합니다.”고 말했습니다. 이 단락은 문자적으로는 간단하지만, 역사적 사실로 보면 “한마디 말로 나라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례가 매우 많은데, 그 중 두 가지만 예로 들겠습니다.
하나는, “창업도 어렵지만, 성취한 것을 지키기도 쉽지 않다.”(創業難, 守成也不易)라는 당태종의 명언이 바로 그것인데, 국가의 일만 이러할 뿐아니라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가난에서 벗어나 부유해지는 것은 창업의 어려움이며, 자손들이 그것을 지켜 나가는 것 또한 큰 문제입니다. 도대체 어느 것이 어려울까요? 고대 정치 사상에서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어렵다고 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송나라의 고종이 말한 “내 나이 쉰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마흔아홉 살까지의 잘못을 알았다.”(吾年五十方知四十九之非)는 것입니다. 춘추전국시대 위나라의 거백옥蘧伯玉도 이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나이가 들어 경험이 쌓인 후에 되돌아보니 그제서야 과거의 잘못이 발견된다는 뜻입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한마디로 나라를 일으킨다.”(一言興邦)의 실제 사례입니다.
반대로 그 아래 나오는 “한마디로 나라를 잃게 할 수 있는”(一言喪邦) 사례도 많습니다. 역사상 초나라와 한나라의 전쟁을 보더라도 유방劉邦의 장점은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받아들였다는 점입니다. 그의 성공은 다른 사람의 좋은 의견을 잘 받아들인 데에 있습니다. 우리가 역사에서 성공한 인물과 실패한 인물의 성격을 연구해 보면 아주 재미있는 대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의견을 즉시 거두고 남의 좋은 의견을 받아들이기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아주 적습니다. 유방은 이런 소수의 인물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항우項羽는 자신의 의견과 판단을 절대로 바꾸지 않았으며, 남의 의견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점은 개인의 수양 면에서 주의해야 됩니다. 특히 한 조직 단위의 책임자는 흔히 심리적 잘못을 범하기 쉬운데, 남의 의견이 더 옳고 훌륭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체면’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크게 말하면 수양이 모자라는 것이고, 작게 말하면 개성의 문제로 융통성이 없는 것입니다.
이제 역사적으로 중요한 항우의 결정을 보도록 합시다. 항우가 함양咸陽까지 쳐들어갔을 때, 어떤 사람―초한춘추楚漢春秋의 기록에서는 채생蔡生이고, 한서漢書의 기록에서는 한생韓生―이 그에게 “관중은 사방이 산과 강으로 막힌 험한 지형이며 땅 또한 비옥하니, 이 지방을 수도로 정하면 패자覇者가 될 수 있습니다.”(關中險阻, 山河四塞, 地肥饒, 可都以覇)라고 하면서 함양에 수도를 정하면 천하를 크게 평정할 수 있다고 권했습니다.
수도를 어디에 정해야 하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역사상 많은 연구가 있었습니다. 이 문제는 역대 왕조에서 항상 논의되었습니다. 송대와 원대 이전에는 대부분 수도를 섬서 지방의 장안長安에다 정했지만, 송대에는 국력이 대단히 약해서 변량卞梁에 수도를 정했습니다. 그 당시에도 어떤 사람들은 낙양洛陽을 사전지지(四戰之地:지세가 험하지 않아 쉽게 공격을 받을 수 있는 곳―역주)라고 하면서 수도로 알맞은 곳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 뒤로 원․명․청에 걸친 8백 년 동안은 북경을 수도로 삼았습니다. 중화민국이 성립된 후에도 수도를 어디에 정하는가 하는 논쟁이 있었는데, 주장이 다양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북경에 정하자고 하고, 다른 사람들은 남경에 정하자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함양에 정하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수도를 북경에 정하든 남경에 정하든 상관없이, 장안․무한 등 4개 지방에다 제2의 수도를 정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미 장차 다가올 국가의 대세를 보았기 때문에 국제 정세와 맞추려 했던 것입니다.
한 나라가 수도를 어디에 정하느냐 하는 것은 정치․군사․경제․외교 등의 여러 방면과 관련되어 중요하기 때문에 아주 커다란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제 미래의 시대에 맞추기 위해서는 국가의 원대한 계획뿐만 아니라, 이러한 역사나 근대사․국제 현황 등을 모두 연구해야 합니다. 이상은 본 주제 이외의 한담이었습니다.
논어별재에서
첫댓글 지금 우리나라가 대통령 한 사람 바뀌니 엄청난 변화가 오고 있지 않은가! 공자님은 역시 성인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