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오늘 교회는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서 태어나 자신의 온 삶을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하기 위해 평생을 동정으로 살며 시련과 박해 속에서도 자신의 신앙을 지킨 아가타 동정 순교자를 기억합니다. ‘선하다’라는 뜻의 아가타라는 이름이 드러내주듯이, 온갖 선의 원천이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하고 착한 여인이었던 성녀 아가타를 기억하는 오늘 독서와 복음은 공통의 테마로서 작별의 순간을 이야기합니다. 독서의 열왕기 상권의 말씀이 죽음을 앞둔 다윗 임금이 아들 솔로몬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기는 모습을 전하며, 복음은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파견하시면서 그들에게 하시는 당부의 말씀을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헤어짐의 순간을 이야기하는 오늘 독서와 복음은 공통적으로 작별의 순간 남겨지는 이를 위해 전하는 떠나가는 이의 당부의 말을 전합니다.
“나는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을 간다. 너는 사나이답게 힘을 내어라. 주 네 하느님의 명령을 지켜 그 분의 길을 걸으며, 또 모세 법에 기록된 대로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 법규와 증언을 지켜라.”(1열왕 2,2-3)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아라.”(마르 6,8-9)
언뜻 다르게 보이는 이 두 당부의 말은 사실 그 내용의 본질적인 면에서 살펴보면 같은 마음에서 비롯된 같은 말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임금이자 하느님께로부터 선택받은 이로서 이스라엘 왕국을 다스리며 하느님이 보여주신 길을 걸어왔던 다윗은 사실 적지 않은 순간 하느님으로부터 성별된 사람답게 행동하지 못하고 잘못된 길을 걸었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욕정에 사로잡혀 바쎄바를 범하고 그의 남편 우리야를 사지에 몰아 죽게 만들었던 순간, 하느님을 뜻을 저버리고 인간적 마음에만 사로잡혀 하느님이 원치 않는 인구 조사를 했던 순간 그리고 결국 아들 압살롬으로부터 죽음의 위협을 받는 절체절명의 순간들 그 모든 순간들은 사실 다윗이 하느님의 뜻대로가 아닌 자신의 생각과 고집에 사로잡혀 하느님이 보여주신 길을 걸어가지 않아서 생긴 결과들이었습니다. 그런 모든 순간들을 겪어내고 마침내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죽음을 앞둔 순간 다윗은 자신의 뒤를 이을 솔로몬에게 그가 꼭 지켜야 할 것을 진심어린 마음으로 당부합니다.
“주 네 하느님의 명령을 지켜 그 분의 길을 걸으며, 또 모세 법에 기록된 대로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 법규와 증언을 지켜라. 그러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성공할 것이다.”(1열왕 2,3)
다윗의 이 말은 자신의 쓰라린 체험으로부터 비롯된 진심어린 당부의 말입니다. 나는 순간적 유혹에 빠져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을 어기고 다른 길로 빠져 허우적대던 때가 많았지만 내 사랑하는 아들 너만큼은 내가 겪은 그 모든 고통의 순간들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발 아비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진심이 담긴 유언의 말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한 당부의 말 역시 그러합니다. 자신과 언제나 함께 하며 하늘나라에 관한 진리와 사랑을 일깨워주려 노력했던 예수님이 이제 때가 차 그들을 둘씩 짝지어 파견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공관 복음의 다른 부분에서 언급되듯이 제자들을 파견하는 예수님의 마음은 마치 힘없고 순하기만 한 마리 양을 무서운 이리 떼 한가운데 보내는 것만 같은 근심어린 마음이었습니다. 노심초사 이 어린 양들과 같은 제자들이 혹여나 이리들의 공격으로 상처를 받지 않을까 다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이 파견되어 그 곳에 이르러 해야 할 세세한 행동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알려주십니다.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버려라.”(마르 6,10-11)
그들을 떠나보내는 것이 얼마나 걱정스러웠는지 그들의 행동 규정 하나하나, 그들의 옷차림과 가방 꾸러미까지 세세히 알려주시는 예수님의 이 말씀 안에서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어린 그러나 걱정 어린 마음을 그대로 읽을 수 있습니다.
남들보다 먼저 길을 떠나 홀로 그 길을 걸어본 사람이라면 자신의 뒤를 따라 자신이 걸어온 그 길을 걷는 이를 바라보며 무관심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이가 자신이 사랑하는 이, 나의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사랑하는 이라면 그가 자신이 겪어야만 했던 어려움과 고통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길을 걸으며 체험을 통해 얻게 된 모든 깨달음들을 그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자 갖은 노력을 하는 것이 당연한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독서의 다윗과 복음의 예수님의 당부의 말 속에 담긴 마음이 바로 이러하다고 하겠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너희들이 내가 겪어야 했던 그 모든 잘못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어려움과 고통 없이 가야할 길을 모두 걸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들 솔로몬에게 그리고 자신의 열 두 제자에게 진심을 담아 당부의 말을 전했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길 위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께로 가는 순례의 여정 그 길 가운데 서 있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하느님을 바라보며 그 분이 일러주시는 길을 따라 그 분께로 향해 가는 이들이 우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도 자주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나만의 고집과 아집에 사로잡혀 그 분이 일러주시는 길을 거부합니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우리를 길에서 벗어나 길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해 가게 만든다는 것 그래서 하느님이 아닌 다른 것에 사로잡혀 길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오늘 말씀은 일깨워줍니다. 곧 본기도의 기도처럼 진리의 빛으로 길 잃은 우리를 비추어 주시는 주님을 따라 올바른 길로 걸어가기 위해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길이요 진리이자 생명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언제나 찾고 그 분의 말씀을 들으려 노력할 때 어긋난 길이 아닌 올바른 길을 걸어갈 수 있다고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오늘 말씀이 일깨워주는 이 진리를 마음에 새기고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이 보여주시는 길을 따라 마침내 그 분께로 다가가 그 분과 하나가 되는 삶을 매순간 살아가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하느님, 길 잃은 사람들에게 진리의 빛을 비추시어, 올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시니,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모든 이가,
그 믿음에 어긋나는 것을 버리고 올바르게 살아가게 하소서.”(본기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