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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추야(梧桐秋夜)
천 승 세
“니기미, 한다한다 항께로 너무 하구밍? 아무리 쓰잘데없는 예팬네라고 역불러 지집 사추리에다 뀌어댈 것은 므시여!”
“도깨비 같은 지집년하고는, 이잉ㅡ쯔읏 쯔읏. 이녁도 모르게 새는 방구를 믓현다고 니년 사추리에다 대고 내갈긴다냐 속창아리가 고렇게 배배 꿰싸먼 못쓰능 거여.”
“그래도 기분상으로 틀린 문제제잉…… 너머하구망. 한정놓고 시피봉게로 그라제잉. 헤엠 ―.”
“내 방구 고렇게 유식이 분별허지는 못항게로 안심놓더라고 쌀매들 년아, 한칸 셋방 속에서 방구 불올 자리가 으디 따로 있다야? 에잉, 즘생 같은 지집년하고는!”
“아, 알았어, 알았당게 그만 나볼대도 다 안다고…… 한방이면 또 몰라. 아 그저 풍풍 몇십 방울 불어대냔 말여? 뱃가죽이 다 얼얼하당께,”
“주둥이 봉하라는디도 저년이?…… 아니 그래, 냄편 잠결 방구가 그리드립고 절통허냐? 참말? 엉?”
“음마? 으째 소락대기를 치고 이 난리라냐? 드럽다는 것이 아니여. 사람올 너머나 무시해뿐다 이거여.”
“니기미 쓰발녀언ㅡ쫑알대는 택아지를 한방 받아뿐질라!”
아내가 옆방에서 들려오는 돼지집 부부의 역정 소리를 듣고 부스스 일어나 앉았다. 흘깃 살펴보니 눈꼬리는 벌써 살큰 심술올 달았다.
나는 “허어엄―.” 하고는 우정 허기진 헛기침올 내뱉았다. 아내의 그 진저리나는 투정도 미리 막올 겸 돼집 부부의 하찮은 언쟁올 은연중에 달래는 익숙한 술책으로였다.
아내는 귓속말로 다급하게 속삭였다.
“진정서 낸 지가 언젠데 감감소식이죠? 저것들 저거 하루빨리 내몰아야지 어디 견뎌나겠수?"
나는 아내의 귓속말올 건성으로 흘리며 따분하고 짜증스러운 하품을 몇 차례 믈었다. 그러는데 돼지집 최씨가 걸걸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거였다.
“변소깐에 불나기 전에 합분않올텨? 속이 뽀그락 쪼그락 지랄인디 합분혀뿌리드라고 맴사 읍능겨?”
“지금이 몇 신데 그래요. 한숨 더 자다 일어날랍니다.”
“그려? 그람 내가 선착으로 방분올 혀사 쓰것구먼.”
아내는 털썩 드러누우면서 “별 시답지않은 사람 다 보겠네, 흥.” 해댔으나 나는 최씨의 “방분혀사 쓰것구먼.” 하는 말을 되뇌어보며 씁스레 웃었다.
아내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흘겼다.,
“흥! 좋기도 하겠구랴 이 동네 주부들이 요새 당신보고 뭐라는 줄이나 아세요? 최씨하고 한통속이래요. 소장님 부인은 더 그러구…….”
옆방에서 미닫이 소리가 났다. 최씨가 선착 방분하러 나가는 모양이었다.
질척대는 하천매립지 위로 허울만 돟은 문화주택들이 신축돼가고 하수천 축대공사가 한창 떠들썩하게 올리고― 하수천 북쪽으로는 휑한 공터, 그 공터의 간올 막고 늘어선 낮은 언덕 아래로는 루핑으로 지붕올 덮은 영세가옥들이 달기달기 늘어앉은 그리고 동서로 뻗은 야산에서는 하루 온종일 다이너마이트의 폭음이 울리는, 그런 개발지구였다.
폭음이 멈춘 밤에라야 겨우 가들지게 울려오는 콩새 소리며. 거기다가 흠씬 비가 뿌린 뒤면 휑한 공터 속에서 올려오는 청승맞은 맹꽁이 울음들ㅡ그래도 이런 걸맞지 않는 바랜 정서들이 운치가 돼오는 황망한 곳에 직무발령을 받았올 때 나는 씁쓸한 신물올 삼키지 않올 수 없었다.
비만 왔다 하면 무릎까지 빠지는 완만한 진흙탕길올 저벅대며 호구조사를 다니고, 일백여 미터 길이의 언덕길에 고작 세 개의 외둥이 설치된 황량한 공터를 야간 순찰하고, 야산밑 무허가 난민촌올 뒤적이며 우범자 명단을 작성하고, 때로는 하수천 축대공사 취로사업장 인부들에게 지급되는 별식지급(장난감 같은 삼륜차에 실린 몰 지난 간갈치 따위)의 마릿수를 점검하는 것 등이 주된 나의 일과였다.
나는 발령을 받고 임지에 도착한 지 불과 두 시간 후쯤에 어안이 벙벙해지는 해괴스러운 구경올 하게 됐던 거였다.
신흥주텍들이 듬성듬성 들어서는, 그러니깐 하수천 축대 공사장 바로 위쯤의 노목 위에서 오십대의 지쳐뵈는 사내 한 사람이 고래고래 악올 써대고 있는 것이었다.
“서울금수덜아아ㅡ니기미 쓰발 종자덜아아ㅡ최종복이놈 사연 좀 들어도라아ㅡ으째서, 으째서어 내 집 내가 못 갖고 산다냐아―허기사사아, 인생 육십이 계약이것제만 이런 니기미 쓰발놈어어 계약도 다 있어어?ㅡ어엉? 이 쓰발 년놈들아아一―”
나는 노목 아래 버텨선 채 곤봉올 때들고 “내려와요! 내려와요!”를 연발하고 있었지만 그 대취미성의 사내는 도망친 오랑우탄처럼 겹가지에다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서는 혼연스레 호통질이던 거였다.
“음마아? 육갑 떠네에ㅡ니가 뭐여, 니가 믓인디 사람올 내려와라 올라가라 명령이여? 지랄 말더라고잉ㅡ이잉 쯔읏 쯔읏―니가 아무리 보락꼬 서서 치다봐야 내 똥구멍 귀경배께 더 하것어?”
사내는 내 머리를 겨냥해서 퇴퇴 엿물 같은 가래침마저 뱉어대고 있었다.
나는 돌아서면서 한 가지 의아스러운 점을 느꼈던 것이었다. 노목 아래로는 단 한 사람도 구경하고 서 있는 사람이 없올 뿐더러 지나치는 사람들도 노목 위를 흘꿈거리며 건성으로 “또 시작했군, 시작이야.” 했을 뿐이던 거였다.
파출소에 돌아와서 이 사실올 소장에게 알렸올 때 소장은 오히려 시큰둥하게 웃으며 쏘아붙였다.
“박 순경 임무나 자알 실행하라구. 그녀석 끝발도 존망지추야 하루에 한 번씩은 그 지랄올 떨지.”
소장은 종이철 하나를 휘익 내던졌다. 나는 건성으로 읽어 내려갔다. 진정서 였다.
진정서의 내용은 대개 이런 것이었다. 산 6번지 일대 하수천 우측 공터에 설치된 최종복 씨의 돼지막과 최종복 씨 일가를 동네에서 타지로 전출해달라, 국민건강이 풍전등화 운명에 처해 있는 차제에 최종복 씨 경영의 돼지막은 뇌염균의 온상지가 될 수 있는 불결 무쌍한 것이며, 최종복 씨의 상스러운 거동온 마을 정화와 아동들의 문화 교육에 지대한 악해를 끼친다는 것, 산 5번지 25가구 주부 25명 연서 날인으로 진정하니 닷새 안에 선결해달라 하는 거였다. 주민 대표는 김정혜라 밝혔고 이름 끝에다 괄호를 열고 ‘파출소장 부인’이라고 씌어 있었다.
“고작 용을 써봐야 닷새야 닷새!”
소장은 동네 유지라는 복덕방 강씨의 오토바이 뒷자리에 달랑 매달려 언덕길을 내려가버렸다.
내가 최종복이라는 문제의 동민에 대해 난감한 수습책을 짜내며 고심한 지 이틀째 되딛 날, 나는 참으로 구리터분하게, 회한한 인연으로, 그와 맞부딪힌 거였다.
신흥 문화 주택지를 제외한 영세가옥들 주위에는 두 개의 공중변소가 설치돼 있었다. 그 공중변소들은 북쪽의 야산을 향한 이백여 평의 공지 위에 세워져 있었다.
나는 거느린 식솔이 아내 단 한 사람뿐이어서 터무니없이 비싼 신흥문화 주택의 전세 입주를 사절하고 하수천 축대 공사장 위쪽에 있는 영세가옥 방 한 칸에 전세를 들었던 것이었다.
그 말썽 많은 최종복 씨가 내 방과 베니어 칸막이를 한 바로 옆방에 세들어 산다는 것이 그와 상면함에 있어 희한한 인연이던 거였다.
나는 그날 아침 다소 설사기가 있어 차례가 다가오자마자 염치 불구하고 변소 문을 열고 들어가 문올 걸어 잠글 새도 없이 푸지직대는 후련한 뒤를 보고 있던 거였다.
그러던 잠시 후였다. 변소 문이 덜그덩 열리더니 웬 남자가 서슴없이 나를 등뒤로 하고 허리춤을 풀어대는 것이었다.
“어어? 아니, 여보십쇼!”
그는 아랑곳없이 내 엉덩이와 맞부빌 정도로 바짝 엉덩이를 들이밀며 푸드덕 푸드덕 용변을 보기 시작했다.
“허어 ―미안스럽구만요…… 즘생들끼리도 아니고 인간들인디 합분하면 으짤랍디껴. 어릴 적에도 그랬었고, 우리덜 고장에서는 똥 누는 자리는 가리덜 안 항께로…… 고의춤에다 퍼질르는 것보다야 훨씬 낫제 머…… 끄웅―웅응―막걸리를 과하게 묵었다 하면 똥 냄새가 시리고 알알허단 말여…… 끄웅―.”
나는 어이가 없고, 그보다도 밖에서 들려오는 깔깔대는 소리에 그만 얼굴이 달아올라 도망치듯 변소를 나와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최종복 씨를 파출소로 불러들였다.
“이봐요. 당신 그 따위 개버릇 어디서 배운 거야?”
“그것이사 배우고 말고가 으디 있답디껴? 원체 뒤가 급해서 똥줄 좀 갈겨댔기로 말여, 막둥이 자식뻘이나 되는 귀순사께서 그렇게 반말지꺼리로 나올 일은 한 가지도 읍구먼그려. 아니 그라먼, 놈의 집 여팬네들에다 쪼깐한 어린것들이 나라비를 섰는디 말여 이 늙은 놈이 바지에다 내질러사 도덕적이란 말여?”
“당연한 일 아닙니까? 본능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 아니오?”
최종복 씨는 할래할래 손을 내저으며 가소로웁다는 듯이 웃었다.
“훈계도 좋지만 말여, 그런 훈계는 너머나 꼬잘스러운 데가 있다고잉. 말은 바로 하라고 있능 거여. 새끼 내질로고 똥오짐 싸고 밭일허고 밥 묵고…… 이것이 다 본능이란 목자인디 말여, 고것을 으찌께 억제하고 산단 말이여? 말이사, 그녀러 똥줄이 쪼개만 덜 급했어도 을매나 피차간에 좋았겄어? 그란디 일이 비도덕적으로 행진혀다보니께 결과가 구리구리헌 남세를 피운 거여. 양해허시고 풀어줘. 나 급허단 말여. 새끼 낳은 도야지가 시 마리나 된당께그려. 밥줘사 혀잖여? 허허허ㅡ.”
나는 쑥스럽게 이마를 긁적대며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때 소장이 벌떡 일어나 그에게로 바짝 다가들었다. 소장은 들고 있던 볼펜 꽁무니로 최종복 씨의 이마를 꾸욱꾸욱 눌러대며 잔인스러운 실웃음을 물었다.
“이거 봐! 이 씨팔놈의 영감아, 철 좀 들어라, 철 좀! 내 말 무슨 뜻인 줄 알겠어? 엉?”
“으디, 더 한 번 늘러봐라! 더 씨게 놀러대봐여!”
최종복 씨는 늘펀하게 앉은 채로 소장을 올려다봤다.
“뭐야? 근데 이 싸가지 없는 영감이 어디다가 막말이야 근데에? 따귀 한짝 부서져봐야 정신이 들겠어?
“시상천지가 개벽을 친대도 말여, 소장 손에 볼따구 붓지는 않을껴. 손만 대봤단 봐여! 무궁화 잎새기가 풍지박산 헐 뎅께 말여!”
최종복 씨는 끄웅―안간힘을 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내 책상 위에다 두 손바닥을 세워 어깻죽지를 치켜세우고는 실실 웃어왔다.
“젊은 선상, 관용허시고 나 풀어주어. 아, 저 도야지새끼 우는 소리를 좀 들어보랑께? 만삭이여 만삭! 밥 돌라고 공알이 빠질 지경이란 말여. 배고픈 것은 즘생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여! 똥 매라운 것도 즘생이나 사람이나 꼭 마찬가지고…… 이 늙은 늠, 말하는 즘생이라고 접어 유념허구는 풀어줘.”
“……가봐요.”
나는 얼굴을 떨궈버렸다. 그가 막 파출소 문을 나가려고 할 때 소장이 그를 불러 세웠다.
“또 노목 위에 올라갈 꺼야?”
“아암―.”
“뭐야? 다시 한 번만 올라갔다간 나무 뿌리에 다이나마이트를 박을 거라구 정신 똑바로 차렷!”
“화이고오―배꼼창 까뒤집히네거. 매미도 나무에 올라 자진모리를 뽑는디 사람새끼가 으째 못 혀? 아, 마음대로 혀! 다이나마이트를 박든지 느 예팬네 대합에다 남포를 트든지! 알겄어?”
그때 누군가가 후적후적 파출소 안으로 들어섰다. 최종복 씨의 부인이었다. 그녀는 깊은 팔짱을 낀 채 소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작달막한 키에 펑퍼짐한 허리통, 부승대는 머리칼을 질끈 묶어서는 훼훼 쪽올 틀어 양은 젓가락을 꾸욱 꽂은 그녀의 모습은, 한눈에 청청한 오기가 묻어나는 거 였다.
그녀는 허공에다 대고 내쏘아붙였다.
“웂이 산다고 너머나 무시하구만? 아니, 뒤가 급해서 똥 한 번 같이 퍼질렀기로 그것이 믄 죄랑가? 주재소 양반들은 완행 똥만 매려봤당가? 진장칠녀러! 급행 똥도 있능 거라고잉. 우덜 고장 같으면사 밭뙈기에 주저앉아 속곳 내리면 그만이제. 그라제만 여그가 서울특별시라니께 우덜도 도리를 감안혀셔 합분혔는디, 믓이, 대체 믓이 죄 된당가?”
최종복 씨가 그녀의 어깻죽지를 터억 떠다밀었다.
“방정맞은 예팬네하고는? 아니 멋헌다고 주재소까지 깔대와?”
“시끌사끌 속이 폭폭 끓는디 지집년이 구둘 차고 사추리 익힐끄라우?―시상에 벨놈어 구속을 다 본당께! 똥 한 번 합분혔다고 개도 아닌 사람을 잡아가는 뱁이 으디 있어?”
“썩올 년아, 주둥이 좀 간수혀. 내가 걸어왔제 잠혀왔어? 쯔읏 쯔읏ㅡ이런 것을 예팬네라고……에잉 ―.”
소장이 넋빠진 듯 허탈하게 웃었다. 그리고 나서 최종복 씨 부인에게 야지를 띄웠다.
“영감 간수나 자알 해! 진정서가 모레면 끝장이야!”
그녀가 휑 돌아섰다.
“영감, 영감 하지 마씨요! 인자 사십일곱밖에 안 목었소! 인생이 고달프다봉께 겉늙어서 그체, 용심 떡심 아직까정도 상머슴이다고잉. 으째 그려? 으째 그려?”
나는 견디다 못해 그들의 둥을 문 밖으르 떠다밀었다. 내가 밖으로 나왔을 때 그녀가 새삼스럽게 차악 목소리를 가라앉혔다.
“젊은 순사 양반은 아직 몰라서 그래라우 소장놈허고는 사연이 있다고잉. 웬수나 다름없는 놈이랑께…… 우리 이 냥반, 차암 좋은 사람이라고라우! 홧김에 술을 즐기시다봉께는 나무도 타올르고, 일류 연설쟁이에다 일류 가수가 돼서 그체, 천성을 물레섭 빠진 미영실이요잉. 을매나 좋은지 몰라라우!”
“촉새방정을 떠는 구먼, 그년이…… 냄편 자랑하는 거 육불출이여, 이년아.”
“노래 중에서도 흘러간 옛노래는 쭈욱 꿴다요 그 중에서도 서울이 좋다지만 나는야 싫어, 낮이면 밭에 나가 길쌈올 매고 밤이면 사랑방에 새끼 꼬면서 이러능 것을 제일 잘하지라우”
“음마? 그것은 일절이여. 이절이 기맥 히게 좋탕께그려.”
최종복 씨가 겅중겅중 뛰며 그녀의 낮은 어깻죽지 위에다 터억 손올 얹었다.
“비슬도오 좋다마아는―나는야아 싫어―흐르는 시냇가에 다리를 놓고오――고향길 잃은 길손 건너게 하아며어―.”
나는 그저 어이가 없었다. 야산 솔숲 새로 달이 걸렸다. 흐느적대며 멀어져가는 그들의 그림자만으로도 여태 구경 못 해본 진풍경이던 거였다.
소장은 동민의 진정서 건올 나보고 마무리 지으라고 명령했던 것이었다.
“맘 느긋하게 먹고 있다가 큰코 다쳐. 바야흐로 뇌염창궐 시기야 돼지막은 절대 철거돼야 해. 그리구 말야, 전체 동민의 진정인 이상 최종복 일가를 일단 타지로 강제 전출시켜야 되네. 강권이야 강권! 도리가 없어. 책임지고 해결하라구!”
나는 소장의 엄명이 있은 뒤 만 하루 동안을 넋 빠진 듯 흐릿한 정신으로 지내야 했다. 돼지막 철거야 명분이 있다고 치자. 최종복 씨 일가의 타지 전출을 어떤 명목으로 강행시켜야 하느냐 하는 문제에 이르러서는 골이 패이는 것이었다.
최종복 씨는 술이 거나해서 밤늦게 나를 불러댔었으나 나는 죽은 듯 대꾸도 하지 않았었다 퇴근 무렵, 최종복 씨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그 공터의 노목에 올라가 고래고래 악올 써대고 있었다.
“이 서울 인간들아아―계목리 선민들아아一내 말 좀 들어도라아―나는 무식혀서 모르것응께 니년놈들이 헌명헌 대가리들로 생각혀 부아―이 썅 년놈들아아ㅡ내가 으째 나가, 아니, 으디로? 집터 뺐겨목고 여기를 으찌께 떠어? 니기미 쓰발 년놈들아아一이 귀신 나락씨 까먹는 이 쓰발 년놈덜아아ㅡ.”
나는 최종복 씨의 고함과 역정과 노랫가락들올 귓가로 흘리며 그냥 지나쳐버렸던 것이었다.
마침 파출소 안에는 나 혼자였다. 당직이었던 것이다. 열나흘 달이 물색 차디찬 숲에 부풀며 떠 있었다.
나는 사환 아이에게 잠깐 파출소를 맡기고는 산 6번지 공터를 향해 걸어나갔다.
내가 최종복 씨의 돼지막에 이르렀올 때 세 개의 돼지막은 엷은 비닐로 차일이 처져 있었고 그 차일 속에는 희뿌연 호롱불들이 주황빛 불빛올 밝히고 있었다.
최종복 씨는 돼지막 바로 앞에다 낡은 의자를 놓고 돼지막을 향해 앉은 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듯싶었다.
“안녕하십니까?”
내가 그의 귓바퀴에다 가만히 속삭이자 그는 화급히 눈을 부벼대며 그제야 알은 체를 했다.
“으짠 일이셔?”
“심심해서 놀러왔습니다.”
“소장 있능겨?”
“강씨 오토바이 타고 추석절 치안사례 나갔지요.”
“흥! 개발지구 인심에 떡고물 한줌이라도 제대로 얻어묵을 줄 알고? 잘 안 될 거여:”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되지요…… 돼지가 새끼를 낳는 모양이지요?”
“못 깐 놈은 두 마리여. 한 놈은 열 시마리나 깠는디…… 도야지라는 즘생이 원칸 미련혀서 산고 때 안 봐주면 새끼를 깔아 쥑인단 말여. 밥이 좀 덜찬다 허면 새끼도 줏어묵어 뿌린당께그려.”
그는 덩덕새 머리통을 굵적대며 쩌업쩌업 쓴 입맛을 다셔댔다. 그는 발치 밑과 뿌연 주황빛 차일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이 뜸했는데 이곳으로 부임한 후 처음 보는 최종복 씨의 모습이었다.
“오늘은 딴사람 같으십니다”
“……속이 지랄 같아서나 슬 묵올 맴도 웂구…….”
최종복 씨는 거칠고 마디가 굵은 손가락을 헤어가며 뭔가 깊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나는 망설이다 말고 입을 열었다. 진정서의 기일 시한이 하필이면 추석날이라는 것도 야릇한 일이었거니와 그보다는 소장과 그와의 사이에 얽힌 개인적인 인간 관계를 훔쳐듣고 싶은 마음이 더 급하던 거였다.
이렇게 멀쩡한 사람이, 한낮이면 한 차례씩 노목 위에 올라앉아 부리는 행패가 웬일인가, 하는 어설픈 의혹에 미쳐 나는 다소 답답해 있던 참이었다.
“진정서 시한이 내일까지랍니다. ……저로서도 면목이 없습니다만…… 도대체 무슨 곡절이 있는지요. 저한테만이라도 들려주시면 비밀에 붙이고 힘이 돼보겠습니다…….”
그는 허기지게 웃었다.
“진정서 그까짓녀러 것은 맴에도 웂어. 내 주사를 싫어허는 사람들이야 많겠제만 이 최종복이를 무담씨로 해꼬지하고 싶은 사람들은 없을겨. 진정서에다 지장 누른 년들이사 다들 소장 예팬네 통속들잉께로 당연 허지…… 그래 내일까정 타지로 뜨란데며? 그려?”
“그렇습니다…….”
최종복 씨는 널빤자로 짠 좁은 헛간(구정물통 따위를 넣어두는) 속에서 반쯤 남은 막소주 됫병을 들고 나왔다.
“한 잔 걸쳐 보실티여?”
“술을 못 합니다.”
“그려? 그라면 내가 좀 마셔사 쓰것구먼…… 아, 그라고 말여, 사전에 양해 사항이 한 건 있는디 말여, 그때 합분현 것 이해해도란 이런 말이여.”
나는 씁쓸하게 웃고 있었는데, 그는 그새에 벌컥벌컥 소주를 마셔대고 있었다.
“벨 얘기는 안어…… 나 말여, 자네헌테 통사정혀서 처져 살고 싶어 이런 말 하는 거 안여…… 어떤 놈이 주둥이 자발질올 혀도 최종복이가 으째 여그를 뜬당가?…… 그것이 문제가 아니고오…… 나도 농촌에서는 심 하나로 부럽잖게 살았든 놈이여. 부렵잖게 산다는 것이 양명입신혀서 부자노릇 혔다는 것은 아니고 놈 죅여묵고 죅임당하고는 안 살았드라는, 이런 말이시…… 근디 운수가 또랑창 짚세기가 될라고 그랬든지…… 아들이라고 둘 둔 박복한 자손운에다 큰놈이 백혈병이라랑가 므시랑가 허는 시상 드러운 병을 얻었단마시. 재답까지 다 팔아 처묵고도 원이 안 찼던 게벼. 뒈져뿐졌어. 허어―시상 꼴 좀 봐! 둘째늠이 월남에 진군현다고 청대를 높이더니, 이놈은 애비 목전에다 빼따구도 안 뵈주고는 월남에서 행방불명이 됐댜 오죽혔으면 선산까지 팔아 치우고는 지집년 하나 차고 서울로 올라와뿌렀제. 여팬네는 떡판 행상으로 나서고 나는 공사판 막일로 나섰니. 어정어정 혀다봉께는 돈푼이 좀 모이데. 그래서 단독으루다 판을 벌렸제. 지금은 별천지제만 내가 우물 공사 십장을 혈 때만 해도 집 몇 채 웂었어. 내가 우물 공사를 맡은 집이 바로 소장놈 집이었제. 여그 물맛도 드럽고 물줄도 시답지 않어서는 죄다 우물올 팠었제. 인부 네 사람을 뽑아서는 내가 그 집 우물을 파는디 발파가 잘못돼서 한 놈이 팔 미터 땅 속에서 뒈져뿐겼어. 사고가 터지고 나서 계약서를 보니 이것이 믄 난리난 말여? 쥔놈은 일절 책음이 웂구 십장이 일절 책음을 다 진다고 써 있네그랴. 그런 시상에 무지막지헌 날도독놈이 으디 있겄냔 말여?…… 그때만 혀도 땅값이 괭당 일백오십 원이라아―삼백 평을 사뒀었제. 집이나 올리고 즘생이나 칠라고 말여. 그라제만 뒈진 인부 목숨값을 으찌께 헐껴? 눈 따악 감고 팔았제. 몽땅 다 줘뿐졌어…… 이 돼지막 쳐진…… 바로 이 땅이 옛날 내 땅이었단 마시. 내 팔자가 하도 짠혀서 시방 땅주인 염가놈이 돼지막이로 빌려준 거여……그란디, 뇌염이 어쩌고 믓이 어쩌고 혀서 내쫓겄다 그거여?…… 흥! 못 가! 절대적으로 못 가 이 염가놈 말이 김포 쪽에 노는 제놈 땅이 있다. 거기 가서 우선 즘생이나 쳐서 밑천을 벌으라고 기특한 인정을 쓰는디…… 최종복이 놈은 절대적으로 못 뜬다고!…… 눈깔 하나로 망한 인생이여. 흙만 보고 살아온 놈이 계약서 조항을 제대로 봤어야 말이제. 우덜은 밭도 논도 곡식으로 사고 팔아봐서 증서 같은 것에는 눈깔이 시단 말여…… 현재의 최종복이 인생사가 대충 이려…… 술기운이 차오는디 으디 나무에나 또 올라가 봐? 달도 밝고 빌도 밝고…….”
최종복 씨는 바지춤을 추세우고 나서는 어적어적 노목께로 다가가고 있었다.
나는 그가 남겨둔 훈훈한 체온을 빌려 비어 있는 의자에 털석 주저앉아버렸다. 물색 달이 차츰 바알갛게 억어가고 있었다.
나는 추석절 비상근무의 본때를 되게 받는 편이었다. 나는 그저 황량하기만 한 개발지구의 드센 들판을 내다보고 선 채 보초를 서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그러니까 파출소 정문에서 왼쪽으로는 제법 무성한 오동나무 밭이었다. 나는 복덕방 강씨의 그 오동나무 밭을 질러오는 시린 바람과 우수수대는 오동잎새들의 속삭임을 들으며 그 밭 위로 터질 듯 떠 있는 중추만월올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아―-.”
후끈한 숨이 내 목덜미로 날아드는 듯싶었다. 소장이었다. 그는 바지춤에다 두 손을 찌른 채로 짜증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 건도 없었어?”
“무슨 말씀이신지요?”
“심빠이라 할 수 없군―치안사례라는 거 말일세.”
“아직까지 송편을 다 빚지 못한 모양이죠.”
“딱한 사람―쯔옷 쯔옷―누가 송편나부래기 먹쟀나?”
“그럼요?”
“신정동에 있올 때는 그래도 좋았지이…… 개발지구라는 게 뻔질한 번화지보다 인심이 후하고 천진한 건데 말야. 여긴 어떻게 된 게 순사 뺨치게 깡발들이 쎄단 말야.”
소장은 바지춤 속에다 두 손을 찌른 그대로 하늘 속의 만월올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연신 쩌업 쓴 입맛을 다셔댔다.
“만약 내가 자리를 비우더라도 외워두라구…… 삼거리 티브이 상점 목씨, 버스 종점 혜련 다방, 그리고 만복사 복덕방; 백구사 복덕방, 번창사 복덕방…·그리고 또 부림 건재상 김씨―.”
“…….”
“뭘 멍청해 있는 거야?”
“그걸 외워서 어떻게 하라는 말씀인지 몰라서 그렇습니다.”
“정말 김 빼네 거…… 이 사람아, 뭘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 가랑이 임파선 븟도록 오토바이 타고 돌아다닌 건 뭐야?”
“치안사례!”
“맞아…… 영감이 늦군.”
소장은 돌아서면서 혼잣소리로 중얼거렸다.
“풍수지리라는 게 진리거든. 삼십 리만 빼면 왕소금 김포읍에다가 고천만 넘어가도 인천 바다 짠물이 한강물에 섞이거든. 간에 절여도 보통 절인 게 아니야 전파상 스피커가 죽자고 쿵작대고 맥주흘 네온싸인이 삐까번쩍대야 날을 만나는 거지. 세월 한 번 길고 지루하구나야―.”
나는 허망한 심사였다. 소장의 투정보다는 퀭한 중추만월이 괜스레허 방하게 느껴지는 거였다.
그때였다. 달달거리는 경운기 소리가 점점 가까워왔다. 경운기가 파출소 앞에 멈췄을 때 그 뒤를 잇대은 달구지가 멈췄다. 소의 고삐를 쥐고 있는 염씨의 얼굴이 유목 거나한 취기를 얹고 있었다. 호구조사에서 안 사실이지만 염씨는 이 마을의 유일한 마부였던 거였다.
“아니?……웬일이십니까?'’
나는 달구지와 경운기를 번갈아 쳐다보며 아연했다. 술이 거나한 최종복 씨가 비틀대며 경운기에서 내렸다. 최종복 씨의 부인은 경운기 트레일러 위 이불덩치 속에 포옥 파묻혀 앉은 채로 모가지가 떨어져라 하늘 속의 만월올 올려다보고 있었다.
“……경올 칠 녀석허구는…… 추석 송편이라두 씹어보구 간대면 얼마나 좋아. 아, 글쎄 중추가절에 이게 무슨 청승이람! 하아ㅡ.”
염씨는 꺼질 듯한 한숨올 내쉬면서 달구지 위에서 꿀꿀대는 돼지막올 올려다봤다.
“지긋지긋한 데는 믄났다고 들러? 싸게싸게 가야 혀. 아 후딱 나와여, 나오랑께?”
부인이 코가 맹맹한 소리로 최종복 씨의 둥에다 소리쳤다.
나는 최씨를 부축하면서 파출소 안으로 들어섰다.
소장의 얼굴에 가벼운 경련이 놀고 있었다.
“떠나십니까…….”
“웬일이랑가? 파출소 소장이 존댓말을 다 쓰구 말여.”
“잘 가시오……차후 애로 사항이 있을 때는 연락주시오.”
“애로 사항?……씨도 읎어…… 그보다도 부탁 한 자리가 유헌디 말여.”
“들어주기로 하겠소 뭐요?”
“나 야통중 한 장 끊어도라고!”
소장은 실웃음올 물었다.
“농담이 심하시구만. 야통증이라는 게 장난감 이름인 줄 아시나?”
“농담이라니? 이봐, 소장! 아니, 양놈들 떠들고 지랄치는 구리스마수 때는 통금 해제에다 야퉁중이 자연적으로 발부되는디 말여, 오동추야 이 좋은 추석 명절날은 으째 야통중이 없당가? 엉?”
“아, 앙. 그마안―그건 안 되요”
“믓이여? 안 돼! 나 성깔났다 하면 성질이 쪼깨 드럽다고잉. 당장 내 놔! 안 내놓으면 여그서 한 발도 못 떠!”
소장의 얼굴이 비열하게 웃고 있었다. 그는 턱으로 나를 불렀다. 한 장 긁적거려주라는 눈치였다.
나는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야통증올 썼다. 최총복 씨의 손안에다 꼬옥 쥐어주고는 얼굴올 돌렸다.
최종복 씨는 비틀걸음으로 경운기에 올랐다. 뒤쪽의 부인올 돌아다보며 웃었다.
“사알사알 해찰하고 가도 쓰것다. 야통중이 있응께로…… 그리고 오늘 밤에는 용심 한 번 쓰게 해줘잉? 아냐? 늘그막에 박줄 같은 아들놈 하나 생길지!:’
“인자 노망까지 등갑만?”
“안여! 증말이여 증말! 방구나 맞는 사추리 고것이 믓이 아깝다고 그라냐? 이 쌀매들 년하 히잉―.”
“이괴 그려 그려! 원대로 줄뎅께 박줄 같은 아들놈이나 하나 앵겨줘. 목소리는 믄났다고 저리도 큰고?…… 목소리나 작아사 으디서라도 끼어살제.”
경운기가 내리막길올 내려갔다.
“달도 밝고오―빌도오 밝고오―사뿐 사아뿌운 걸어나간다아――.”
부인의 맹맹거리는 타령이 달빛을 등에 지었다.
― 1977년
2016년 12월 25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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