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내용으로 하는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 등이 9월 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통과됐다. 이로서 직장내괴롭힘 금지는 물론, 이와 관련한 사용주의 의무 규정이 근로기준법에 들어오게 됐다. 또 근로기준법에 더해 산업재해보상법, 산업안전보건법 개정까지 함께 이뤄진다. 자유한국당 관계자는 "여야 간사 합의 형태로 직장 내 괴롭힘 방지 법안이 통과됐다"며 "별다른 이슈가 없다면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작년 실태조사 용역보고서 등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직장 내 괴롭힘 해결 방안을 제기한 바 있다. 이후 올해 초부터 직장내괴롭힘과 관련한 정부 실태조사 소식 등이 들리며 조만간 정부 차원의 대책이 마련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결국 국회는 근로기준법 개정 형식을 취했다.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2013년 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대표발의한 바 있지만, 국회에 계류 중 임기만료로 폐기된 바 있다. 이후 병원 업계의 태움문화 등이 이슈화 되면서 직장내괴롭힘을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노동계를 중심으로 나온 바 있다.
이번 개정법이 통과되면 직장내괴롭힘 법제화 논의가 있은지 5년만에 해결되는 셈이다. 개정법 제안 의원들은 법률안 제안 이유를 통해 "직장 내에서의 괴롭힘으로 동료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사고가 발생하는 등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며 "직장 내 괴롭힘은 근로자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기업에도 막대한 비용부담을 초래하게 되므로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근로기준법 개정안, 괴롭힘 '정의 규정' 두고 사용자 의무 강화
먼저 개정안에 따르면 직장내괴롭힘을 금지한다는 명확한 규정이 새로 추가됐다. 이 조항에서는 직장내괴롭힘을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정서적 고통을 주거나 업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그 외에도 직장내괴롭힘 발생사실을 사용자에게 신고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신설됐고, 괴롭힘 발생시 사용자가 취해야 할 조치를 규정한 의무 조항도 생겼다. 만약 사용자가 신고를 접수하거나 스스로 괴롭힘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경우에는 반드시 자체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또 이런 조사기간 동안에는 피해자(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근무장소 변경, 유급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 또 피해 근로자의 의사에 반하는 조치를 해서도 안 된다. 만약에 괴롭힘 발생사실이 확인된 경우에는 행위자에게 징계나 근무장소 변경 등 조치를 해야 하고, 이 때 피해자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또 피해자가 요구하는 경우 근무장소 변경이나 배치전환, 유급휴가 등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 또한 신고한 근로자나 피해 근로자를 해고하거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된다. 또 직장내괴롭힘 예방이나 발생시 조치에 관한 사항도 취업규칙으로 작성해서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신고해야 한다.
[근로기준법 신설 규정(안)
제76조의2(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정서적 고통을 주거나 업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이하 "직장 내 괴롭힘"이라 한다)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76조의3(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조치)
① 누구든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알게 된 경우 그 사실을 사용자에게 신고할 수 있다.
② 사용자는 제1항에 따른 신고를 접수하거나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인지한 경우에는 지체 없이 그 사실 확인을 위한 조사를 실시하여야 한다.
③ 사용자는 제2항에 따른 조사 기간 동안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하여 피해를 입은 근로자 또는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근로자(이하 "피해근로자등"이라 한다)를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해당 피해근로자등에 대하여 근무장소의 변경, 유급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이 경우 사용자는 피해근로자등의 의사에 반하는 조치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④ 사용자는 제2항에 따른 조사 결과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이 확인된 때에는 피해근로자가 요청하면 근무장소의 변경, 배치전환, 유급휴가의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⑤ 사용자는 제2항에 따른 조사 결과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이 확인된 때에는 지체 없이 행위자에 대하여 징계, 근무장소의 변경 등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이 경우 사용자는 징계 등의 조치를 하기 전에 그 조치에 대하여 피해근로자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⑥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신고한 근로자 및 피해근로자등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산업재해보상법 산재 사유에 직장 내 괴롭힘 추가
환노위를 통과한 법안에 따르면 현행 산재법 제37조 1항에 "근로기준법 제76조의2에 따른 직장 내 괴롭힘, 고객의 폭언 등 업무상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질병"이 추가된다.
산재법 37조는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는 사유를 열거한 규정이다.
현행법의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에 업무상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이 돼 발생한 질병이 명시돼 있지 않아,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은 산재로 인정받기 힘든 상황이라는게 이번 개정안 입안자들의 주장이다.
환노위는 산재법 일부개정법률안 제안이유를 통해 "업무상 질병의 인정 기준에 직장 내 괴롭힘, 고객의 폭언 등 업무상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질병을 추가해 업무상 재해를 폭넓게 인정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갖추려는 것"이라고 설명해, 직장 내 괴롭힘을 산재 사유로 인정하려는 의도를 명확히 했다.
산업안전보건법도 손 본다. '정부의 책무'에 '직장내괴롭힘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기준을 마련하고 지도 및 지원'을 해야 하는 것을 추가했다(4조 1항 10호 추가).
다소 넓은 범위의 개정이지만 크게 새로운 형식은 아니다.
한 노무사는 "사용자 조치 의무 규정 등을 보면 '남녀고용평등법'과 유사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다른 노동전문 변호사는 "근로기준법에 정의 규정을 두고, 산재도 대폭 인정하게 된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면서도 "그 해석을 두고 앞으로도 분쟁이나 논의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법에 규정을 한 것만으로 기업들이 어느 정도 개선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질 것이고, 이것이 현장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바꾸는 매커니즘으로 보면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