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서북 지방의 내몽골에 가면 포두(包頭, Baotou)란 고장이 있다. 글자 풀이로 머리를 싸맨다는 뜻이 아닌가. 이 고장 사람들은 머리 싸맨 사람이 많아서일까. 그렇다. 몰아치는 황사 바람에 따가운 여름날 자외선을 막기 위해서라도 머리를 싸맨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많이 산다고 해서 고장의 이름으로 썼을까. 벌써 오십여 년 전의 일이다. 서공기(西公旗)의 지역인데 한 때 독립운동을 하던 조병준(趙秉準) 선생이 황무지를 빌려서 배달 농장을 일구었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공업 도시로 탈바꿈해가고 있지만. 저유명했던 희토류가 많이 나는 곳이니까. 중국의 역사에서 4대 미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왕소군(王昭君)의 유적인 이른바 흉노들이 살던 곳이다. 포두 박물관을 찾아서 고조선의 문화적인 특징인 청동기 철기문화와 진시황의 직도 등을 돌아볼 수도 있다. 여기 진시황의 직도(直道)란 고속공로, 달리 고속도로를 이른다. 당시로는 굴러가는 마차의 바퀴가 나라마다 크기가 서로 달랐는데 진시황이 도량형의 규정을 통일한 뒤 규격을 일정 부분 직도를 만들었다는 것. 내몽골 박물관은 세계의 모든 암벽화 가운데 6할을 갖고 있다는 것, 소장된 암각화가 모두 원본이라 한다. 아주 오래 전에는 이 지역에 많은 이들이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아닌가. 70년대 중반. 당시 포병훈련을 돕기 위해 천진 쪽에서 이곳으로 파견되었던 길림대학의 인 선생은 당시 보고듣고 체험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끝없는 벌판. 이 고장에는 우물이 없었다고. 그런데 어느 마을에는 정말 깊숙한 우물이 하나 있었는데 사람은 물론이고, 소, 말, 개, 양, 돼지 등 짐승들도 다 이 물에 와서 목을 축인다고 한다. 황사 바람이 부는 날이면 10미터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낮에도 차들이 불을 켜고 아주 천천히 다닌다. 사람도 어려운데 짐승인들 오죽하겠는가. 심지어 바람이 많이 불면 심어놓았던 밭의 옥수수가 뿌리채 뽑혀 농사를 망치는 일이 왕왕 있어 계절풍이 지나면 다시 옥수수를 심는다. 여름철 비라도 올라치면 지붕이 샐까 봐서 차진 흙을 퍼 얹어 다진다고 한다. 지붕은 서까래에 흙을 얹고 그 위에 풀이나 짚을 놓고서 마지막으로는 흙을 물로 이겨서 진흙을 만들어 얹는다. 그 흙이 백토 흙 비슷해서 아주 단단하다는 것. 하루는 여름철 비가 오는데 지붕이 샐지 모른다면서 노인이 삽을 들고 나가서 비에 젖은 흙을 지붕에 퍼 얹는 것을 보았다. 여기서도 한가위를 지낸다고 한다. 둥글고 큰 빵 반죽을 해서 구운 데다 수박을 함께 마련하여 한가위 밤에 달이 떠오르면 집이나 동네 어귀에 차린 빵과 과일을 내다 놓고 달님에게 감사를 올린다고 한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달 중심의 태음력을 쓰는 지역에서는 이런 한가위 명절을 맞이하는 일이 많다. 달 제사를 지내고 나서 마을 사람들이 빵이며 열매를 나누어 먹는다. 지나가는 나그네들에 대한 따뜻한 인정이 살아있었다. 날이 저물어 길손이 어느 집에나 들어가면 으레 아무 군말 없이 재워준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으면 자신도 길을 가다 보면 똑같이 어려움을 겪을 테니 너무도 당연하다는 것이다. 나를 헤아려 남의 사정을 살피는 따뜻한 인정. 몹시 춥고 바람 부는 포두 고장의 어려움을 이웃 사랑의 따스함으로 덮어주고 황량한 삶의 터전에 온정의 입김을 불어 넣는다.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구석이 있는 법이란다. 인정의 꽃이 피는 사막이었다.
첫댓글 https://youtu.be/kwHa8vZJm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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