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이 중앙일보에 기명칼럼으로 아베의 망언을 추궁한 글 때문에 지금 일본 조야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일본 언론이나 일본인들 아베나 하시모토의 망언은 듣기에 괜찮은데 한국의 한 언론인이 쓴 글을 두고는 호떡집에 불이 난 것 마냥 호들갑입니다. 저는 근본적으로 김진 같은 이들을 마초로 봅니다. 마초는 여러 뜻이 있으나 대략 다음과 같은 뜻으로 많이 쓰입니다. 우리 국어사전에는 이렇게 해석되어 있습니다. [마초 : 다듬어지지 않은 야성미 넘치는 남자다움을 뜻하기도 하고 남자의 거칠고 힘만 앞세우며 덤비는 단순 무식한 성격을 뜻하기도 한다. 마초, 마초남 등으로 쓰인다.] 김진, ‘거칠고 힘민 앞세우며 덤비는 단순무식한 성격을 가진 남자’, 이명박 정권이 득세한 뒤로 부쩍 텔레비전에 얼굴을 자주 디밀며 보수우익이란 이들의 성격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각인시킨 인물입니다. 남의 얘기는 전혀 듣지 않고, 특히 자신의 논리가 통하지 않으면 막무가내로 자기 말만 하면서 덤비는 단순무식한 모양새를 보여줬던 전형적인 마초입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자기와 성향이 아주 비슷한 일본의 아베는 못마땅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또 뒷일 생각지 않고 일단 디밀고 본 것입니다. ‘일본은 위안부를 강제동원한 적이 없다’ ‘일본은 타국을 침략하지 않았다’ ‘침략이란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르다’ ‘금세기 일본은 조선의 근대화에 큰 도움을 줬다’ 대략 이 같은 말이 아베 이하 일본 극우인사들에게서 요사이 부쩍 자주 나오는 망언들입니다. 하여 일본인들이 김진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투하는 신의 저주’를 ‘망언’이라고 하는 것과 급이 거의 같다고 보면 무방할 것입니다. 따라서 제게는 아베나 김진이나 어금버금으로 보일뿐입니다. 그런데 김진을 아베와 관련된 일본의 망동가들과 비교했을 때 그렇다는 것이지 그가 국내에 대고 했던 망언들도 용인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일본 극우 인사들의 망언이 일본의 군국주의 선조들을 옹호하면서 타국과 타국인에 대고 한 말이라면, 김진이나 지만원 변희재 강용석 정미홍, 그리고 천지분간을 하지 못하고 부화뇌동하는 일베류들의 망동은 자국민, 특히 역사로부터 피해를 입은 특정인들을 비하하는 망언이라는데 문제가 더 심각합니다. 그동안 저는 이들의 망언에 분노, 광주 5.18 검찰보고서 전문을 연재해 왔습니다. 이편이 그 마지막 편입니다. 이 연재를 하는 동안 저 스스로도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에서 있었던 일을 어렴풋이나마 더듬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그곳 민중들이 얼마나 쓰라린 상처를 입었는지를 회고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깊은 회한이 들었습니다. 즉 그동안 광주의 참상은 여러 매체로부터 알려지고 결국 광주의 참상을 일으킨 주범들이 역사와 법 앞에서 준엄한 심판을 받았음에도 이런 망동들이 일어나고 있는 근본 원인은 역사의 퇴행을 가져 온 정권의 탄생을 용인한 때문이었다는 자각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시는 이런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각오도 새롭게 합니다. 역사는 전진해야지 퇴행하면 안 됩니다. 교각살우의 우는 지난 대선으로 끝을 내야 합니다. 이제 5월 광주, 그 마지막 편을 연재합니다. 10편, 1980년 5월 27일 광주상황 (끝) 44. 1980. 5. 27 - [전남도청 진입작전 상황] 전광석화같이 기습하여 요소 점령 후 20사단에 인수인계
5월 26일 23시경 3공수여단 특공조 11대대 1지역대 장교 13명·사병조 66명은 광주비행장을 출발하여 주답에 도착한 후 다시 조선대 뒷산으로 이동했다. 조선대 종합운동장, 조대부중, 조대여고, 전남기계공고, 조대앞, 노동청을 거쳐 5월 27일 04시경 전남도청 후문에 도착했다. 도청 후문을 넘어 3중대·2중대·1중대·특공중대·4중대·11중대 순으로 진입하여 05시 21분 전남도청 점령을 완료하고, 07시 30분 20사단 61연대에 전남도청을 인계한 후 08시경 부대로 복귀했다. 7공수여단 특공조인 33대대 8·9지역대 6개 중대 장교 20명·사병 181명은 5월 27일 01시경 광주비행장을 출발, 광주통합병원을 경유하여 05시 06분 광주공원을 점령했다. 광주공원에는 시위대가 이미 전남도청으로 이동하여 충돌이 없었으나 7공수여단이 광주공원에 접근하는 도중 시위대와 두 차례 총격전이 벌어졌다. 7공수여단 병력은 05시 42분 20사단 61연대 1대대와 연결, 임무를 인계하고 07시 25분 최초 집결지로 복귀했다. 11공수여단 특공조 61대대 4중대 장교 4명·사병 33명은 광주비행장에서 주답으로 공수되어 5월 27일 01시 50분 조선대 뒷산에 도착했다. 그 다음, 전남도청 뒤로 침투하여 04시 46분 제 1목표인 전일빌딩과 관광호텔을 저항없이 점령했다. 이어 06시 20분 YWCA 건물을 점령한 후 06시 40분 20사단 61연대에 인계하고, 07시 05분 광주비행장으로 복귀했다. 20사단은 02시 20분 장교 252명, 사병 4305명이 31사단 책임지역인 서구를 제외한 전 지역을 대상으로 충정작전에 참여하여, 07시 25분 계획대로 작전을 완료했다. 31사단은 04시 장교 56명·사병 693명이 충정작전에 참여하여, 07시 15분 계획대로 광주 서구 지역 일신방직 일대를 점령하여 작전을 완료했다. 이날 계엄군의 광주 재진입 작전수행 과정에서 양동선(남·27세·광주고 직원), 오세현(남·25세·회사원), 박용준(남·24세·신협 직원), 유영선(남·27세·회사원), 김동수(남·22세·회사원), 김종연(남·19세·재수생), 이강수(남·19세·금호고 2년), 박성용(남·17세·조대부고 3년), 유동운(남·19세·한신대 2년), 안종필(남·16세·광주상고 1년), 문재학(남·16세·광주상고 1년), 민병대(남·20세·부화장 종업원), 김명숙(여·14세·서광여중 3년), 이금재(남·28세·상업·카빈총상), 문용동(남·26세·호신대 4년), 이정연(남·20세·전남대 1년), 김성근(남·23세·목공) 등이 총상으로 사망하고, 시위대 295명이 체포되었으며 계엄군 3명이 사망했다. <자료 출처> 서울지방검찰청·국방부 군검찰부 발표 5.18수사보고서 전문(1995년 7월 18일 발표)
여기까지가 자료출처에서 밝힌 대로 5.18 관련 수사기관의 수사보고서에 기록된 1980년 5월 18일~1980년 5월 27일까지 10일 간의 광주민주화운동 사건 일지입니다. 이 자료에도 물론 두어 군데 북한 간첩에 관한 기술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군 쪽의 보고내용에만 등장합니다. 또 딱 한 군데 북한공작원의 침투실패에 대한 기록도 있습니다. 그리고 실패한 공작원도 서울 진입 후 체포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게 진실입니다. 그럼에도 일베에서나 또 다른 인터넷 게시판과 관련뉴스 댓글 등에서 북한 공작원 또는 특수부대 요원 대거 잠입설을 믿고 퍼뜨리는 사람들은 없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북한 개입설을 퍼뜨리므로 이익을 본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일수록 이처럼 명백한 자료를 소지하고 있으면서 이 자료에 의한 주장을 해야 공신력이라도 인정을 받습니다. 저는 그 분들이 이제라도 우리 민족의 가슴 아픈 역사인 5.18 광주를 더 이상 이용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김진같은 이가 일본 아베수상의 망동을 ‘망언’ ‘망발’ ‘도발’ 등으로 질타하면서 강경대응을 하는 글을 쓰려면, 우리 우익들 스스로 대한민국 근대화 60년사에 얽힌 자신들의 잘못을 솔직하게 국민들 앞에나 국제사회에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독일이 국제사회에서 1등 국가로 칭송받는 이유가 자기들 선조인 나치의 패악질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진솔하게 사과했으며 나치 가담자들을 철저하게 응징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대 현재 대로라면 우리가 일본을 비난하면서 독일의 예를 드는 것은 사실 창피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의 앞선 정치 권력자들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일본을 비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 우익들이 솔직하게 지난 권력자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국제사회에 사과하게 되면 구차하게 독일의 예를 들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우익들은 갈수록 일본 우익들보다 더 뻔뻔해지고 구차해지고 있습니다. 국민의 피 흘림을 마다않던 저항에 밀려 대통령직을 하야하고 망명했던 독재자를 '국부'라며 칭송하는 것이 떳떳한 사람들이 당당하게 자신들을 애국세력이라고 합니다. 그 독재자의 묘소에 당당하게 참배하면서 그 묘소에 참배하지 않은 정치인들을 '종북'이라고 몰아치는 사람들이 애국세력이랍니다. 민중을 억압했던 독재자를 추앙하는 애국은 뭘까요? 다시 파시즘이 판치는 암흑국가를 그들이 원하는 것일까요? 독재자가 통치하는 나라에 애국하는 세력…기가 막힙니다. 이미 1995년 김영삼 정부에서 5.16은 쿠데타 또는 정변이라고 정의, 교과서까지 개정했습니다. 그런데 이 애국세력은 다시 쿠데타를 혁명으로 되돌려야 합니다. 20년이 가까운 세월이 지났음에도 다시 5.16 부활이라는 역사의 퇴행을 당당하게 주장합니다. 이런 그들의 애국은 말만 민간통치이지 군부독재국가인 미얀마 같은 나라가 되자는 것과 같습니다. 33년 전에 무력으로 상관을 체포하면서 성공한 쿠데타, 그 쿠데타의 완성을 위해 특정지역 양민들을 총칼로 무고하게 죽인 뒤 권력자가 된 독재자, 그 죄로 사형수가 되었던 전직 대통령, 우리나라 우익들의 5월 광주 폄하는 이 흑역사를 되돌리려는 퇴행입니다. 이런 퇴행을 위해 다시 특정지역을 죽이려고 합니다. 이들이 이 땅 우익이라면 우리는 일본 우익의 망동을 질타할 자격 자체가 없습니다. 5월 광주… 저는 군검찰과 서울지방검찰청의 수사보고서를 입수하여 타이핑하면서 그 구절 면면마다 흐르는 ‘서글픔’ ‘애잔함’에 그 보고서를 쓴 수사관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보고서를 쓴 이들이 김영삼 정권 당시 검찰과 국방부 군검찰부입니다. 그리고 이 보고서를 근거로 전두환 일당에게 ‘불기소처분’이라는 면죄부를 줍니다. 그랬음에도 사실을 모두 조사한 그들은 이 보고서 곳곳에 5월 광주에 대한 /서글픔’ ‘애잔함’이 깃든 연민을 보이고 있습니다. 왜요? 자신들이 보기에도 5월 광주가 너무나 ‘불쌍’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이제 우리 모두가 이 자료를 공동으로 가슴깊이 소유하면서 5월 광주를 놓아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훨훨 자유롭게…그렇게 비상하도록 놓아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놓아드림이 완결되었을 때 광주에서 새누리당 국회의원 후보가 당선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새정치를 여는 문이 될 것입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1980년 5월 광주 1편, 5월 18일 상황 ☜
* 1980년 5월 광주 2편, 5월 19일 상황 ☜ * 1980년 5월 광주 3편, 5월 20일 상황 ☜ * 1980년 5월 광주 4편, 5월 21일 상황 ☜ * 1980년 5월 광주 5편, 5월 22일 상황 ☜ * 1980년 5월 광주 6편, 5월 23일 상황 ☜ * 1980년 5월 광주 7편, 5월 24일 상황 ☜ * 1980년 5월 광주 8편, 5월 25일 상황 ☜ * 1980년 5월 광주 9편, 5월 26일 상황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