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바리데기는 설화 속에 나오는 바리공주를 부르던 말이다. 서사무가 바리데기의 내용은 어느 나라 왕과 왕비의 7번째 딸로 태어나 갖은 구박을 받다가 나중에는 부모님의 불치병을 고치기 위해 생명수를 구하려 저승에 가서 갖은 고생 끝에 결국 생명수를 얻어 부모님을 구하고 무당이 된다는 내용이다. 놀랍게도 바리데기 소설은 서사무가인 바리데기를 모티브로 현실을 다루고 있다. 소설 속 이야기는 북한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주인공 바리는 북한에서 한가정의 일곱째 딸로 출생하지만 부모에 의해 버려지지만 흰둥이에 의해 목숨을 건진다. 바리의 세상과의 첫 대면은 버려짐이었다. 바리에게는 잠깐 동안의 행복한 삶이 있지만, 바리에게 또다시 닥친 시련은 북한의 극심한 식량난과 외삼촌의 남한도피로 인한 집안의 몰락이었다. 그 후 바리에게는 시련과 고난의 삶이 펼쳐진다. 북한을 탈출하면서 가족과 이별한 바리는 중국에서 발마사지를 배우게 되는데 중국에서 영국으로 밀항을 한 후에도 발마사지를 하게 된다. 할머니의 죽음 이후 발안마사 생활을 하는 바리는 다른 사람의 발을 만지면서 그 사람의 인생을 마음으로 보고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이를 통해 그녀는 단순히 발을 마사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마음의 아픔까지 진심으로 이해하고 치유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다. 이를 통해 황석영 작가가 말하려는 것이 굴곡진 삶이 담긴 발을 통해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보듬어 주는 바리의 마음과 행동으로 우리 인류에게 치유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 같았다.
이후 바리는 빚을 갚기 위해 돈을 벌고, 남편 알리와 결혼하고 또 생이별을 하고, 아이를 잃는 험난한 삶이 펼쳐지는데, 마치 생명수를 찾기 위해 서역을 향해 가며 고초를 겪는 바리공주의 삶과 흡사하다. 바리의 결혼과 남편의 실종, 아이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18살 어린 아내이자 엄마의 번민과 고통은 다시금 설화의 환상을 빌려 인류의 본성과 구원을 말하는 것 같다. 아이가 죽은 뒤 꿈을 꾸고 깨달음을 얻어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나게 된 바리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고 사지에서 돌아온 남편 알리의 새 아이를 잉태하고, 평온한 삶이 계속되던 어느 날 빌딩에서 테러 사건이 일어난다. 이는 바리가 깨달음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여전히 그대로임을 보여준다.
소설 바리데기의 마지막부분은 환상의 세계에서 급격히 현실의 세계로 전환되며 답답하고 먹먹한 느낌을 주었다. 바리데기 소설은 꽤 묵직한 기분으로 다가왔다. 책에 있는 인터뷰나 책머리에 소개되었듯이 황석영 작가는 바리가 설화에서처럼 생명수를 찾았는가 하는 답을 책 속에 심어놓지 않은 듯 했다. 바리는 설화에서처럼 아직 6명의 아이를 더 낳아야 하고, 그때마다 힘든 고통을 겪어야 하며, 그 고통이 다한 뒤에야 비로소 이 인류와 세계를 다시 살게 할 진정한 생명수를 찾을지도 모른다. 증오와 갈등, 죽음과 전쟁으로 이어지는 21세기에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연민과 이해, 희망이라는 생명수는 아직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체화되어 제도와 법으로, 실질적 행동으로 구체화 될 때 세상은 비로소 바리의 생명수를 마시게 될 것이다. 이는 바리 혼자만의 깨달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깨달음을 얻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생명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첫댓글 * 소병민 : 1) 남한도피로 -> 남한 도피로 2) 마지막부분은 -> 마지막 부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