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조심스러워요!
윗분에게 ‘님’과 ‘-시-’를 넣어 말해야
우리는 보통 가정생활에 대한 언어예절은 나름대로 관심을 갖고 있지만 생계의 터전이자 하루의 반 이상을 보내는
직장에서의 언어예절은 의외로 취약한 부분도 있다. 사실상 직장 동료들은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
따라서 직장에서 주고받는 말 한마디는 자신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동료는 물론 윗사람이나 거래처,
고객과의 관계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생각보다 조심스럽다.
부장님이 평사원인 내게 “신동엽 씨, 박 과장 어디 갔습니까?”라고 물을 경우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과장님은
부장님의 아랫사람이니 ‘님’과 ‘-시-’를 넣지 말아야 할 것도 같고, 그래도 내 윗사람인데 높여 말해야 할 것도 같아
망설이게 된다. 이 경우 “박 과장은 총무부에 갔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정에서, 군대에서,
회사에서 그렇게들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분명 우리의 전통 언어예절에 어긋난다는 게 국어학자나 예절 관련 학자들의 한결같은 의견이다.
직장에서는 윗사람에 관해서 말할 때, 듣는 사람이 누구든지 상관없이 ‘님’과 ‘-시-’를 모두 넣어 말하는 것이 원칙이다.
즉 평사원인 나는 “부장님, 박 과장님은 총무부에 가셨습니다.”라고 말해야 옳다.
“사장님, 김 상무는 협회 회의에 갔습니다.”나 “부장님, 최 과장은 은행에 갔습니다.”처럼 낮추어 말하는 것은
일본말의 영향을 받아 생긴 어투이다. 청산되지 않은 일제 잔재의 한 예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전통 언어예절대로 직장에서 윗사람을 그보다 윗사람에게 지칭하는 경우 반드시 높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인 ‘님’과 함께 서술어에 존 경법 선어말 어미 ‘-시-’를 넣어 말해야 한다. 즉 “사장님, 김 상무님은 협회 회의에 가셨습니다.”나 “부장님, 최 과장님은 은행에 가셨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이와 달리 가족이나 사제 간에는 주의해야 한다. 우선 아버지를 할아버지께 말할 때는 “할아버지, 아버지가
진지 잡수시라고 했습니다.”처럼 말해야 한다. 이 경우는 절대로 아버지를 높이지 않는다. 이는 가정과 직장의
언어예절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학교에서 평소에 존경하던 선배에게 존댓말을 하더라도, 그 선배에 대해 선생님에게 말할 때는
“김용만 선배는 결석했습니다.”처럼 낮춰 말해야 한다.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는 가정으로 보면 부모와 자식처럼
한 항렬의 차이가 있으므로 같은 직장인으로 구성된 직장에서의 원칙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어법에 따른 세심한 언어구사 필요
우리말은 다른 어떤 언어보다도 경어법이 복잡하다. 문법적으로는 주체를 높이는 존 경법,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관계에 따라 결정되는 공손 법, 그리고 어휘적으로 존댓말과 예사말이 나뉘어 있는 경우도 있어 적절한 말을 골라 쓰는데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존 경법은 말하는 사람보다 말의 주체가 되는 사람이 높을 경우 ‘웃으시다’처럼 서술어에 ‘-시-’를 넣어 존경을 표하는 것이다.
또 바로 존댓말을 써서 주체를 높이기도 하는데 ‘밥’에 대하여 ‘진지’, ‘먹다’에 대하여 ‘잡수시다’와 같은 것이 그 예다. 윗분에게는 ‘생일’, ‘나이’, ‘밥’, ‘말’, ‘병’ 등의 예사말 대신에, ‘생신’, ‘진지’, ‘말씀’, ‘병환’ 등이 존대어를 써야 한다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요즘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어휘 선택의 잘못으로 일상 대화에서의 경어법이 갈수록 붕괴되고 있다.
존댓말을 잘 가려 쓰는 것도 중요하다. 흔히 ‘사장님한테 야단을 맞았다.’와 같은 말을 쓰는 사람이 있는데, ‘야단’은
어른에 대해서는 쓸 수 없는 말이다. ‘사장님한테 꾸중(꾸지람)을 들었다.’처럼 말해야 옳다. 윗분에게 ‘묻다’는 ‘여쭙다’로,
‘말하다’는 ‘말씀하시다’나 ‘말씀드리다’로, ‘주다’는 ‘드리다’로 말해야 한다.
존경의 어휘를 쓰지 않아야 할 자리에 존경의 어휘를 쓰는 것 또한 잘못이다. ‘상무님은 협회에 볼 일이 계시다’는
‘볼 일이 있으시다’가 옳다. 이는 ‘볼 일이 안 계시다’는 말이 안 되고 ‘볼 일이 없으시다’가 옳은 것으로 미루어 알 수 있다.
듣는 사람과 말하는 사람과의 관계에 따라 경어 상의 등급이 달라지는데 이를 공손 법이라 한다. 공손 법은 문장의 끝에
나타나는 것으로, 대체로 ‘왔습니다’, ‘왔어요’, ‘왔소’, ‘왔네’, ‘왔어’, ‘왔다’처럼 등급에 따라 어미를 달리 한다.
이중 문제 되는 것이 ‘제가 했어요.’, ‘그러셨어요?’ 등과 같은 ‘해요’체의 말인데, 이 ‘해요’체는 깍듯이 존대를 해야 할
사람에게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절대 써서는 안 된다. ‘그랬어요’, ‘저랬어요’라는 말은 낮춤말은 아니지만
웃어른에게 쓸 수 있는 격식을 차린 말이 아니다. 윗분에게 ‘고마워요’보다는 반드시 ‘고맙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대화에서 ‘그랬어요’, ‘저랬어요’ 대신 ‘… 습니다’를 붙이도록 평소 습관을 익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고’는 동료나 아랫사람에게 쓰는 말
어떤 이는 “그동안 보살펴 주셔서 고마웠습니다.”나 “한 해 동안 보살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와 같은 과거형
표현들을 쓰는데 이 또한 일본 말투의 언어이므로 과거형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한 해를 보내는 인사말로는
“한 해 동안 보살펴 주셔서 고맙습니다.”(윗사람에게)나 “한 해 동안 수고했습니다.
”(동료나 아랫사람에게)라는 인사가 가장 좋다.
그리고 상대방에 대해 고맙다는 표시로 “여러 가지로 보살펴 주셔서 감사합니다.”처럼 ‘감사합니다’라는
어휘들을 많이 쓰는데 이 경우 ‘감사합니다’보다는 ‘고맙습니다’가 더 좋은 말이라는 점도 알아두자. 젊은이들 중에
‘감사하다’라는 말은 겸손해서 옳고 ‘고맙다’는 말은 어른에게 쓰기에는 건방지거나 부적절한 말이라 여기는데
이는 잘 못된 생각이다.
‘감사하다’보다는 오히려 ‘고맙다’라는 고유어를 살려 쓰는 것이 좋다. 더욱이 ‘감사드린다’는 말 또한 (글 쓸 경우가 아니라면)
좋지 않다. 굳이 ‘고맙다’ 대신에 쓰고자 한다면 그냥 ‘감사하다’로 족하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나
“그동안 수고했네.”와 같은 인사말도 많이 하는데, 이 ‘수고하다’는 말은 동료나 아랫사람에게 쓰는 말로
윗사람에게 써서는 안 된다. 가령 직장에서 퇴근하면서 윗사람에게 “수고하십시오.”라고 인사하는 것은 옳지 않다.
최근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들이 윗사람으로부터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수고했어’라는 말이고,
반대로 가장 듣기 싫은 호칭은 ‘너’나 ‘야’와 같이 인격을 무시하는 듯한 짧은 반말 호칭을 꼽았다고 한다.
아랫사람이 나이가 어리고, 또 아무리 가깝더라도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존중해주거나 예우를 해주는 일에
신경을 써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