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5일은 나에게 아주 특별한 날로 기억 될 것 같다
이 날은 작년 5월 이후 1년 만에 검사(흉, 복부CT, 위, 대장 내시경, 흉부X-레이, 혈액검사)
한 결과가 나오는 그저 그렇고 그런 날,
동안 수없이 많은 검사와 결과를 받아본 평범한 일인데도
이 날만은 왜 이렇게도 입이 바싹 마르고 긴장이 되지?
오후 진료 순서 첫 번째인데, 결과가 만족스럽게 나와 달라고 하느님께 열심히 기도나 해야겠다.
혹시 결과가 나쁘게 나오면 어떻게 하지? 하면서도
‘에라 모르겠다 안되면 또 수술하고 항암하지 누가 이기나 끝까지 해 보지 뭐.
절대 생명의 끈을 나는 놓지 않을꺼야‘
오기가 발동하기 시작한다.
드디어 내 이름 석자 호명되고 진료실 들어가니
그런데 오늘은 분위기가 영 이상하다.
삼성 서울 병원 혈액종양내과 박교수님. 나의 항암 치료 전담의로서 7년째 인연을 맺고 있는 분이다.
평상시 진료 땐 근엄한 표정으로 필요한 부분만 짧은 말로 극히 사무적이었는데,
‘어, 오늘은 다르네’
모니터 화면에 나타난 결과를 보고 난 뒤,
입가에 미소를 띠면서
“모든 검사결과 정상입니다. 이제 내시경은 그만 해도 되겠고,
1년 후, CT, 혈액검사 해보고 이상 없으면 졸업합시다.
동안 정선생님은 우리 병원에서 간, 폐 수술 하고 항암 하시느라 고생도 참 많이 하셨는데
결과가 좋은 쪽으로 나오고 있어 담당의사로서 기분이 좋네요.“ 하는게 아닌가?
‘아니, 의사가 기분이 좋다고-’
암이란게 워낙 고약한 병이라,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를 해 줘도,
최종결과가 해피엔딩 안되다 보니, 그런 말을 하는가 봅니다
그날 나는 너무 기뻐 교수님께 몇 번이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하고 인사를 했는지 모르겠다.
진료실문을 나서는 순간, 지난 세월들이 영상화되어 내 머릿속에 길게 길게 오버랩 되어왔다.
암과의 전쟁!
내 인생 60대 초반부터 시작된 일생 최대 혈투였다.
2006년 4월초 대장암 (우측 대장 60센티 절제)수술을 시작으로
2007년 6월 간암(쓸개 전부 간 1/3절제)수술
2009년 3월 폐암(우 중엽 절제)수술
이후 1차 9번 (우측 팔 정맥3시간짜리 주사),
2차 12번 (우측 가슴 케마포트 삽입후, 한번 주사 시,
54시간 들어가는 항암주사중 가장 지독한 독극믈) 항암주사를 맞고서도
꿋꿋하게 버티어 왔던 내가 아니었던가
생각만 해도 난 너무나 독종이었고, 아무리 밟아도 죽지 않는 잡초가 되어 가고 있었다
내년 5월이면, 전쟁 개시 이후 만 8년 경과 9년째 되는 해이다.
동안 건강했더라면, 직장 퇴직 후, 자식 출가시키고 마누라 데리고
국내외 좋은 곳 구경다니고
가까운 친구, 이웃, 선후배 만나 맛있는 것 먹으면서
희희낙락 인생을 즐기고 있을 황금같이 좋은 시기에,
대구, 서울 왕복 600Km거리를 당일치기로 마눌님 운전하고
경부→중부내륙→영동→경부고속도로를 5년 동안 140여회(지구 두바퀴) 암 소풍만 다녔으니
적어도 내게만은 너무 공평치 못한 세상으로만 보였다.
그래도 지금생각해 보니 주현미, 장윤정, 현철, 나훈아, 김용임등
뽕짝 토르토풍 가수CD, 테입 틀어 놓고 손뼉치고 따라 부르면서,
항암주사를 고단위 영양제 주사로 미화해 가면서
할멈이랑 같이 다녔던 그 때가 정말 멋진 시간들(?) 이었다고 스스로 자위하며
입가에 웃음을 지어보기도 한다.
투병을 핑계로 너무 오랜 기간 동안 친구들, 이웃들과 담을 쌓고,
도피 아닌 은둔생활을 해 온 것 같다. 누가 대신 아파 줄수도 없는 내 자신과의 긴긴 싸움-
그러나 이제 1년 후면 긴 터널을 지나 졸업을 한다고 하니 조금만 기다리게나
보고싶은 친구들아,
여러 가지 같이 하지 못해서 미안하고 송구스럽구나.
내년 5월 암 졸업장 받고 나면 따따불로 길, 흉사, 모임 참석하고 같이 놀러도 갈께.
그럼 그때까지 안녕-
동안 넘 고생한 마눌님과, 뽀뽀와 재롱으로 앤돌핀을 팡팡 솟게 해준 두 손녀와 함께 (청도 운문사 입구에서)
첫댓글 정영택동기께서 오랜투병생활을 이기시고
건강을 회복하고 계심에 축하드립니다~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늘 함께하시길 빌며
앞으로도 건강잘 챙기시고 행복한 삶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친구의 우정어린글 넘 반갑고 고마웠다
자네와 마지막 본게 99년 말쯤 봉덕동 지점 정기 감사떄였지.
이후, 자네 근황 동기까페를 통해서 알고는 있었지만, 건강상 침묵만 지킬수밖에 없었네.
여전히 차분하고 조용한 자네가 아니었나
일년후, 졸업하면 동기회모임에 적극 참여항께
박종범입니다,.반갑내,. 고통은 즐기라고하던가,.그래 이렇게 즐거운 세상도있다내,.
박지점장, 자네를 마지막 본게 언제였지
자네 모습이 눈에 선하군
까페를 실린 자네의 훌륭한 작품사진에
뒤늦게나마 뜨거운 찬사를 보낸다.
앞으로는 자주 연락할께
정영택동기! 듣던중 참으로 반가운 소리네! 앞으로 완쾌해서 건강한 몸으로 자주보세!
까페에서 보아 알듯이 동기들은 부부동반여행도하고 등산도 애경사참석등등--자주 어울리고 있지
커다란 목소리 호쾌한 웃음 밝은 자네의 얼굴을 기대하겠네
유회장, 고맙구료
동기회모임 활성화를 위해 다방면 수고하시는 모습 카페통해 진작 알고 있었네만
건강을 핑계로 뜻을 같이 못하고 울타리밖에서만 맴돌았네
아마 내년 하반기엔 꼭 만남기회 갖도록 하마
기어이 이겨낸 친구야..장하네..! 진심으로 축하하고.. 계속 건강 조심하며..사모님도 고생많이 하셨다고 전해 주시게나..
자 ~남은 인생 즐거운 마음으로...
유지점장, 격려 감사하고성 암센타 지하식당에서 만났던게 엊그제같은데 꽤나 많은 시간 지났군길수 있도록
자네와
인생후반 얼마 남지 않은 건강수명 최대한 늘려 팔팔하게 오래 오래
우리 서로 노력 함세나,
자주 연락 하자
반갑다! 친구야!
미국여행을 하고오니 이런 기쁜소식이~~~ 축하하네
가끔 전화하면서 좋은소식은 들었지만 병원졸업이라니~~~정말 축하한다
오랜투병생활을 항상 웃으면서 불굴의 정신력으로 이겨낸 기적의 삶을
이젠 남은인생도 또한번 멋지게 살아가기를~~~
미국 갔다 아직 여독도 덜 풀렸을것 같은데
격려의 글 올리고, 전화까지 해 주니,마니 마니 고맙고 감사하구료
아직 졸업이 아니고 예정이다
아픔을 핑계로 너무 오랫동안 얼굴 못봤네.
내년 동기 모임땐 꼭 참석해 쌓인 회포 풀자구나
밭에서 땀흘리다 전화받고는 구름을 잡은 기분이더라."삶이란 이렇게 사는 거야" 라는 깃발을 네가 올려주었어.
궁금증이 사라지면서 혹시나 하며 전화못한 내가 부끄러웠다.좋은 소식 넘 고맙고,만 8년의 투병생활을 기록으로 남겨 놓으면 어떨까.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줄꺼야.그리구 안주인께 축하인사 드린다.얼마나 좋으시겠나.또하나,그 기쁨은 조용히 길고 길게 가져가길^^*
농사꾼 영호야, 허허 했었지.
지금쯤 땡볕아래서 구슬땀 흘리며 일하고 있을 자네 모습 생각하고 전화했더니,얼씨구 딱이네.
동안 소원했다며 누가 먼저랄것 없이 오랫동안 통화하면서
히히
항상 다정한 말씨로 위로, 격려 넘넘 고마웠으며,투명생활에 큰 활력소가 된것 같애.
동안의 투병기록 너무 많아 정리해서 수필, 아닌 소설로 만들어 볼 생각인데 잘될지 모르겠네
영호야 다시 한번 고맙다
정말축하한다. 친구야! 사진속 얼굴도 멀쩡하고.. 이렇게 기쁜소식을 이제야 보다니... 우리친구 대단하다!
언제 서울에 오는날 추어탕 이래도 함깨하자...^^^^
정지점장!!!
그간 너무나 고생이 많았구만
소식은 들었지만 내 코가 석자라...
미안하기도 하고 아 어떻게 글을 써야 할 지 모르겠네
역시 산자가 최고야 살아 남아야 해
그리고 승리했구만
안주인에게도 정말 수고하셨다는 말을 보내네
정신없이 달려 온 8년일거야
정말 고생 많았어
누가 알아 주겠는가?
서로 위로하고 의지하고 그렇게 살아야지
대구에 가는 길에 한 번 들릴게
정말 장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