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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국에 대한 새로운 이해
한때 발해가 조선사에서 빠진 적이 있었다. 『삼국유사』에 “말갈靺鞨발해渤海”가 아주 짧게 다루어졌고, 『환단고기』에는 ‘발해’를 “大震國”[대진국]으로 다루어졌으나, 1900년을 전후한 개화기의 역사 교과서에서는 단군에서부터 역사가 시작되며, 기자조선을 다루었어도 발해는 다루어지지 않았다.
지금은 이 발해가 한결같이 극동아시아의 한반도의 북쪽 지역과 만주 지역에 존재하는 나라로 해석되어 있다. 탈식민을 했다는 어떠한 학자도 발해의 남쪽 한계가 한반도의 어디까지라고 한들 그것이 제소남이 지은 『수도제강』 속의 조선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조금도 언급한 적이 없다. 털끝만큼이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발해를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고 한다. ‘중화中華’라는 뜻과 비슷한 문화가 발달한 나라[盛國]라는 그 ‘海東’의 ‘海’는 어디를 가리키는 바다일까?
『龍飛御天歌』 권1에 나오는 “東海之別 有渤澥 故東海共稱渤海 … 我國在渤海之東 故云海東也”[동해의 다른 이름은 발해渤澥이다. 그래서 동해를 모두 발해渤海라고 일컫는다. 우리나라가 발해의 동쪽에 있으므로 해동이라고 말한다.]라고 한 말에서 발해의 지리적 위치가 명쾌하다. 동해東海=발해渤澥·渤海이고, 우리나라[我國]=조선朝鮮=해동海東이라는 사실이다. 이 ‘해동海東’의 ‘海’는 ‘발해渤澥·渤海’이면서 ‘동해東海’인데, 한반도에서는 동해와 그 동쪽은 태평양으로 이어진 바다임에도 그 이름을 또 발해라고 부르는 것은 극동아시아의 곳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동해東海이면서 서해西海가 되는 발틱Baltic 해가 ‘발bal/bʰel’이란 같은 어원을 가진 유럽 서북쪽에 있는 조선의 발해, 곧 발틱 해를 가리킨다.
이러한 지리적 개념과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는 사료로는 『산해경』「해내중경」의 첫머리에 나오는 “東海之内 北海之隅 有國名曰朝鮮”[동해의 안쪽이고, 북해의 언덕에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다]이라는 말이며, 이 ‘동해’가 곧 ‘발틱Baltic 해’요, 발해이며, ‘북해’가 곧 ‘카라Kara 해[黑海]’이므로, 이를 가리키는 중심 지역은 곧 동-유럽을 가리킨다.
이것은 또한 『해동역사』와 『수도제강』 속의 조선국 터전이 경도로만 봐도 8°E~14.5°E의 범위에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오랫동안 이 사료를 무시했던 것이 『龍飛御天歌』에 실린 그 한마디로써 발해의 터전을 극동아시아에서 반대쪽에 있는 유럽으로 옮겨 잡게 되었다. 물론 발해의 강역의 범위를 그 대강이나마 이제야 비로소 유라시아라고 밝힌다.
마치 이름난 대숭戴嵩의 『투우도鬪牛圖』와 이를 소중히 간직한 마지절馬知節의 ‘농부와 명화’라는 일화에 비유할 만하다. 이것은 사실과 다르게 잘못 그려진 그림을 진품명품으로 알고 애지중지하며 뽐냈던 사실이 소머리[牛頭]만이 아니라, 소꼬리[牛尾]까지도 예사로 보지 않은, 무지렁이로 취급한 농부에게 드러나 웃음거리가 된 것을 가리킨다. 누구도 올바로 보지 못한 저 『龍飛御天歌』의 “東海共稱渤海”란 말이 소꼬리에 비유될 만한 말로서 진실의 핵심이다.
『발해고』를 번역하면서 고백할 것이 있다. 참으로 오래전의 일이다마는 한치윤의 『해동역사』를 보면서 그 책의 속권14 지리고에 실린 조선의 강역을 도외시했다. 물론 『수도제강』의 글을 인용한 것이지만, 이 또한 아예 무시해버렸다. 왜냐하면, 무슨 지명에 동경 8°니, 동경 14.5° 등이 나오니, 조선이라는 한반도와는 120°나 차이가 나는 대척점에 있으므로,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어떻게 보며 이해해야 할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도 누구든 거의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새롭게 번역한답시고 벌써 『발해고』 원고를 번역해놓고도 ‘발해국의 지리적 위치’ 때문에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미루어온 지 20년도 더 넘었다. 그러다 임진왜란 연구에서 『회본 조선정벌기』에 보인 히데요시가 조선 침략에 쓰인 지도가 한반도가 아닌 유럽반도임을 판단하고서 이것이 『수도제강』의 조선국의 위치와 똑같으며, 『龍飛御天歌』 첫마디에 나온 “발해”와도 같은 맥락이고, 이것이 『산해경』「해내중경」의 천하 중심에 있는 조선과 『훈민정음』의 첫마디와 『환단고기』와도 함께 엮어지고 어울려 풀어짐을 알았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참 바보스럽기도 하고, 어쩌면 기특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 『발해고』의 번역에서 본문에다 지리적으로 어디 어디라고 다 밝히지 못한 것은 아직도 이 발해의 국경의 한계를 능력의 한계로 완전히 밝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러시아를 포함하여 이제까지 연구하고 답사하며 찾은 극동아시아 한반도 북쪽의 발해가 아니라, 유럽과 시베리아 벌판을 갖다 놓고서 그곳이 발해라고 씨름해야 마땅하다.
더구나 발해는 고려, 곧 고구려의 옛 땅이라고 했으니, 흑해와 지중해 북쪽의 유럽과 러시아 옛 땅 모두를 아울러 봐야 한다. 천학비재한 나의 눈에 이제야 겨우 보인 만큼 이러한 사실을 세계의 역사가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단지 모른 척하고 있을 뿐이라고 본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현재의 역사를 과거의 역사에 비춰 보는 것을 은감殷鑑이라 한다. 그 역으로 과거의 역사를 현재에 비춰봐도 같은 지역의 현상은 거의 같다. 당나라와 고구려와의 645년 10월 안시성 전투에서 보그[蒲溝=蒲吾渠=Бог] “진창길 200리 길”에 빠져 곤경에 처했던 것이나, 2022년 2월과 9월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헤르손Херсон 등지의 라스푸티차распу́тица 진창에 빠져 곤경에 처했던 것이 서로 같은 땅, 같은 현상이기 때문이다. 발해가 남쪽으로 니하泥河를 경계로 삼은 곳으로서 이 ‘泥’가 곧 ‘뻘밭·진창·라스푸티차’라는 말이며, 『환단고기』 속의 “蒲吾渠[포오거]”, 『자치통감』 속의 “蒲溝[포구]”는 강이름 ‘Southern Bug’의 ‘Bug/Бог’가 ‘늪/marshy’의 뜻이니, 그 주변의 헤르손 등지가 모두 ‘라스푸티차’, 곧 ‘뻘밭·진창’ 지역이므로 같은 뜻이다.
마걀靺鞨이란 이름을 뒷날에 버리고 부르게 된 새로운 이름이 발해이며, 고구려를 이은 나리이다. 이 마걀이 고구려·백제·신라와의 관계에서 고구려의 통치를 받았던 부족이며, 대개 고구려 군사와 함께 또는 마걀군 단독으로 1만 명이니 15만 명이라는 대병력으로 백제 또는 신라를 공격하였던 것은 지리적으로 한반도가 아니라, 유라시아였기 때문에 가능한 역사이다.
이 『해동성국 발해고』의 새로운 해석으로 말미암아 현재 중국의 동북공정은 쓰레기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동북아역사재단’의 역사도 원천적으로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
이제는 고려척경비도, 광개토대왕훈적비도, 진흥왕북한산순수비도 어느 것 한가진들 한반도에서 찾아질 것이 아니다. 또 그 발해 땅에 금金나라가 섰고, 키탄[契丹]/키타이[遼] 나라가 섰고, 청淸나라가 섰으니, 옛날 고구려 땅에 이런 나라들이 선 것이므로, 이런 나라들이 동-아시아에 있어야 할 이유가 있겠는가? 이를 반드시 뿌리부터 다시 따져야 한다. 무엇보다 발해의 땅은 『龍飛御天歌』와 『수도제강』에서 말하는 지리적 위치를 핵심으로 삼아 그 주변까지 찾아야 한다. 그곳은 현재의 유라시아이다. 독자들이 더욱 현명해지기를 바란다.
2023년 3월 일
동양사 문학박사 자은 최두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