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인가 교종인가?’를 읽고 / 성용규 신부
한국교회에서는 오래전부터 교회 최고 목자를 ‘교황’으로 부를 것인지 ‘교종’으로 부를 것인지 고민해 왔다. ‘늘 해왔던 대로 교황이라 부르면 되지 호칭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을 것이지만 교황의 ‘황’(皇)은 황제(皇帝, emperor)를 의미한다. 우리는 제국주의 국가의 왕을 ‘황제’라고 부른다. 만일 프란치스코 교종과 개인적으로 만날 기회가 있다면 “교황님! 한국에서는 당신을 황제라는 호칭, ‘Religious Emperor’(the Emperor of Catholic Church)로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라고 묻고 싶다. 그리고 교종께서 어떤 표정을 지으실지 보고 싶다.
‘제국주의’란 다른 나라와 민족을 식민지로 만들어 대국가를 건설하려는 침략주의를 말한다. 유럽 제국주의는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로 만들어 수탈하고, 학살하고, 고유한 토착 문화와 종교를 폐기시켰다. 그 고통은 지금까지도 진행 중이다. 실제로 중세 교황은 종교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황제의 권위를 행사하며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고, 15세기부터 시작된 ‘대항해 시대’에는 하느님과 교회의 이름으로 제국주의적 문명을 이식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지난 2019년 10월 ‘아마존 시노드’에서 제국주의 시대 교회의 잘못을 깊이 사죄했다. “저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다시 한번 아마존 역사 전체에서 이어진 끔찍한 범죄들과 ‘이른바 아메리카 정복기에 토착 부족들에게 저질러진 범죄들에 대하여, 또한 교회 자체가 저지른 잘못들에 대하여 겸허하게 용서를 청합니다.”(교황 권고 「사랑하는 아마존」 19항) 그리고 2022년 7월 캐나다 인디언 기숙학교를 방문해 과거 그리스도인들이 원주민들과 그 자녀들에게 저지른 악행에 대해 다시금 용서를 간청했다. 그리고 2023년 3월 교황청은 교황 칙령들에 의해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수탈을 정당화했던 ‘발견자 우선주의’(Doctrine of Discovery)를 공식 거부하고, 이는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이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우리나라도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되어 온 민족이 고통을 겪고, 남북으로 분단돼 지금까지 그 고통이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그러한 아픔을 겪고 있는 우리가 교회 최고 목자를 제국주의의 우두머리 황제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가? 복음 어디에 제국주의 황제직무가 나오는가? 나는 매일 미사를 봉헌하면서 “우리 ‘교황’”이라고 부를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신자들과 논의해 우리 본당에서는 ‘교종’으로 부르기로 약속했다.
지난주 ‘교황 주일 특집’에서 “한국교회 현직 주교들도 교황이라는 용어를 선호하고 있고, 교종(敎宗)의 ‘종’(宗)자도 황제를 뜻하는 마루 ‘종’자로 의미에는 아무 변화가 없는데, 교종이라고 쓰는 것은 신자들에게 혼란만 줄 뿐”이라고 한 주교회의 용어위원회의 입장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종’(宗)자는 조상신을 모시거나 제사를 지내는 혈족의 장손을 의미하며 종손(宗孫), 종가(宗家), 종통(宗統) 등 모든 것의 가장 ‘으뜸’이라는 뜻을 지닌다. 그리고 태종, 세종, 숙종 등 왕의 사후에 공(功)과 덕(德)을 평가하여 관례적으로 공은 ‘조’(祖)로 덕은 ‘종’(宗)으로 묘호(廟號)를 붙이는데, 이는 제국주의 황제와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 그러므로 교황과 교종이 똑같이 황제를 뜻하기 때문에 신자들에게 혼란만 준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교종’이 우리 정서에 잘 맞는 호칭이라고 생각한다.
말이 나온 김에, 바오로 서간을 보면 초대교회는 신자들을 ‘성도’(聖徒)라 불렀다. 그러나 현재 한국교회는 신자들을 ‘평신도’(平信徒)로 불러 거룩한 ‘성직자’(聖職者)와 구분한다. 거룩함(聖)과 평범함(平)으로 구분 짓는 이 용어도 가톨릭교회가 얼마나 위계적이고, 수직적 구조의 패러다임 속에 갇혀 있는가를 보게 한다. 세례받은 신자 모두는 보편 사제직에 참여하는 사제들이다. 우리도 초대교회 때처럼 ‘성도’라는 호칭을 사용하면 어떨까? 용어가 바뀌어야지 사고가 바뀌고, 구조도 바꿀 수 있다. 시노달리타스적 교회를 이루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 이 시기에 용어부터 시노달리타스적으로 바꾸면 좋겠다. 교황을 ‘교종’으로, 평신도를 ‘성도’로.
성용규 도미니코 신부(대구대교구 구미 신평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