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 속의 고사성어 -69
몽부삼연(夢負三椽)
[요약] (夢: 꿈 몽. 負: 질 부. 三: 석 삼. 椽: 서까래 연)
꿈에 서까래 세 개를 짊어졌다는 말로,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창업하기 전 꾼 꿈에서 유래. 소망했던 일을 이루게 된다는 뜻으로 쓰임.
[문헌] 한국인물사(韓國人物史) 등
[내용] 조선 태조이성계의 고조부 이안사는 원래 전주 지역의 향리였는데, 가솔을 이끌고 쌍성총관부 지역으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이성계의 가문은 고조부 이안사부터 아버지 이자춘(李子春) 때까지 원나라로부터 천호(千戶)라는 지방관의 자리를 얻어, 대대로 이 지역 고려인과 여진족 위에 군림하는 세력가로 성장하였다. 아버지는 이자춘(李子春)은 공민왕 4년(1355)에 조정에 들어와 소부윤(少府尹)의 관직을 받은 후, 이듬해 유인우(柳仁雨)와 더불어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이때의 전공으로 사복경(司僕卿)으로 임명되었으며 저택이 하사되어 동북면을 떠나 개경에 거주하게 되었다. 이듬해 다시 동북면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공민왕은 그를 삭방도만호(朔方道萬戶) 겸 병마사(兵馬使)로 임명하였으나 4년 뒤에 죽었다. 공민왕은 쌍성총관부(雙城總管府)와 연결되어 있던 기철(奇轍)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이자춘을 자신의 세력으로 끌어들였으며, 이자춘은 이 지역에서 다져왔던 토착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공민왕에게 협력하였다.
이때 태조 이성계는 아버지를 따라 22나이로 비로소 벼슬길에 들어섰다.
*이성계(李成桂.1335~1408)는 말을 타고 활 쏘는 재주가 뛰어났다. 그 활쏘기의 일화를 조선왕조실록에서 보자.
〇태조가 젊을 때, 정안 옹주(定安翁主) 김씨(金氏)가 담 모퉁이에 다섯 마리의 까마귀가 있음을 보고 태조에게 쏘기를 청하므로, 태조가 단 한 번 쏘니 다섯 마리 까마귀의 머리가 모두 떨어졌다. 김씨는 이를 이상히 여겨 태조에게 이르기를,“절대로 이 일을 누설하지 마시오.”하였다. 김씨는 환왕(桓王)의 천첩(賤妾)이니, 곧 의안 대군(義安大君) 이화(李和)의 어머니다.
〇태조가 일찍이 한더위에 냇물에 목욕을 하고 난 후에 냇가 근방의 큰 숲에 앉아 있는데, 한 마리의 담비[蜜狗]가 달려 나오므로, 태조는 급히 박두(樸頭)를 뽑아 쏘니, 맞아서 쓰러졌다. 또 한마리의 담비가 달려 나오므로 쇠살[金矢]를 뽑아 쏘니, 이에 잇달아 나왔다. 무릇 20번 쏘아 모두 이를 죽였으므로 도망하는 놈이 없었으니, 그 활쏘는 것의 신묘(神妙)함이 대개 이와 같았다.
〇태조가 일찍이 친한 친구를 많이 모아 술을 준비하고 과녁에 활을 쏘는데, 배나무가 백 보(步)밖에 서 있고, 나무 위에는 열매 수십 개가 서로 포개어 축 늘어져서 있었다. 여러 손님들이 태조에게 이를 쏘기를 청하므로, 한 번 쏘니 다 떨어졌다. 가져와서 손님을 접대하니, 여러 손님들이 탄복하면서 술잔을 들어 서로 하례(賀禮)하였다.
〇태조가 이두란(李豆蘭)과 더불어 사슴 한 마리를 함께 쫓는데 갑자기 쓰러진 나무가 앞에 가로막아 있고 사슴은 나무 밑으로 빠져 달아나니, 두란(豆蘭)은 말고삐를 잡아 돌아갔다. 태조는 나무 위로 뛰어넘고, 말은 나무 밑으로 빠져 나갔는데, 즉시 잡아타고 뒤쫓아 사슴을 쏘아 잡으니, 두란이 놀라 탄복하면서 말하였다.“공(公)은 천재(天才)이므로 인력(人力)으로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벼슬길에 들어 중앙으로 진출한 태조 이성계는 그 후 동북면 여진 출신의 사병(私兵)들을 거느리고 홍건적(紅巾賊)의 침입을 막아냈으며, 원(元)나라 장수 나하추(納哈出.납함출)가 쳐들어왔을 때에도 함흥평야에서 물리쳐 나라를 구했다. 또 명나라의 힘을 입은 여진의 추장 호바투(胡拔都.호발도)가 침입하자 길주(吉州)에서 물리쳐 함경도 땅을 수복했다.
우왕 14년에 철령위(鐵嶺衛)를 설치하는 문제로 최영에 의해 요동정벌이 결정되자 신진 유학자와 이성계가 반대했으나 용납되지 않았다. 이성계는 우군도통사(右軍都統使)로 임명되어 요동을 향하다가 위화도(威化島)에서 군사를 돌이켜 돌아와서 최영 일파를 숙청하고, 1392년 조선을 개국하였다.
그리고 1394년에는 서울을 한양(漢陽)으로 옮겼다.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 안변에 머무를 때 꿈을 꾸었는데 그 내용이 괴이하여 이해할 수가 없었다. 즉, 온 동네 닭이 일시에 울고, 무너진 집에서 서까래 석 장을 짊어지고 나오는데 피었던 꽃들이 떨어지고, 거울이 땅에 떨어져 깨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성계는 파자점(破字占)을 잘 친다는 도승을 찾아갔다. 그가 바로 무학대사(無學大師)였는데 그에게 해몽을 부탁했다.
무학대사는 크게 놀라며 말했다.
“하례 드립니다. 닭 울음소리는 꼬끼오이니, 이는 고귀한 분이 될 것이라는 말이고, 서까래 석 장을 짊어진 모습은 바로 왕(王)자를 뜻하는 것이니, 장차 군왕이 될 것을 뜻하는 꿈입니다.”
“하하! 설마요……. 그럼 꽃이 떨어지고 거울이 깨지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꽃이 떨어지면 마침내 열매를 맺게 되지요. 또 거울이 깨지면 소리가 나는 법입니다. 그러니까 열매가 맺는다는 것은 계획하고 있는 왕업의 결실을 의미하고, 소리가 난다는 것은 국위가 사방에 떨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후 이성계는 전기한 바와 같이 조선을 건국하고, 태조가 되었다.
그는 훗날 무학대사를 만난 곳에 큰 절을 짓고, 왕의 꿈을 해석했다하여 이름을 석왕사(釋王寺)라 했다.
*석왕사(釋王寺)
이 절은 안변부 서쪽 40리 지점인 설봉산(雪峰山) 아래에 있다. 우리 태조대왕이 잠룡(潛龍) 시절에 무너진 집에 들어가서 서까래 세 개를 지고 나오는 꿈을 꾸고는 산 아래 토굴에 있는 승려에게 찾아가 물으니, 승려가 대답하기를 “몸에 서까래 세 개를 졌으니 바로 ‘왕(王)’ 자입니다.” 하였다. 태조대왕이 이에 감동하여 토굴이 있던 터에 절을 세우고 석왕사라고 불렀는데, 그 승려가 바로 무학(無學)이라 한다.
釋王寺寺在安邊府西四十里雪峯山下。我太祖潛龍時。夢入破屋中。負三椽而出。往問於山下土窟中僧。僧答曰身負三椽。乃王字也。太祖感此。建寺于土窟之基。號釋王。其僧卽無學云。
남구만(南九萬)약천집(藥泉集) > 제28권 >기(記)
(임종대의 한국고사성어를 바탕으로 첨삭하여 재구성함)
첫댓글 멋진 꿈 해몽!
읽을제마다 재미있습니다 ^^
그러게 말입니다. 돼지 꿈이나 한 번 꿔 밨으면 좋겠습니다. 즐거운 시간되세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시간되세요.
몽부삼연(夢負三椽), 꿈에 서까래 세 개를 짊어졌다는 말로,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창업하기 전 꾼 꿈에서 유래.
소망했던 일을 이루게 된다는 뜻으로 쓰임. 잘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재미 있는 고사네요.
네에 감사합니다. 즐거운 시간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