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키우는 청설모
글로별
휘청휘청 잣나무 꼭대기 휘어잡으며
바람 일으키는 청설모
이 빠진 잣송이 툭, 떨어진다
쪼르륵 산돌 밑 여기저기 저장한 양식
까마귀 까치에게 털리고
깜깜하던 청설모 창고에 봄이 싹튼다
청설모 꼬리 붓이 되어
총보다 더 강한 무기되어
세상 지면을 휘어잡는다
수척한 청설모 큰 나무꼭대기 올라
흔들흔들 바람키우고
봄 여름 가을 겨울 키우던 옛시절이 떠오르면
검은 눈물 뚝뚝 떨구며 계절을 까맣게 먹칠한다
나무와 나무 사이 바람같이 몸을 날리는 청설모
추운 겨울 하얗게 핀 슬픔을 모아
계절을 기르고 있다
아무리 춥다해도
청설모의 모정을 이기지 못한다
----이서빈 외 남과 다른 시쓰기 동인 {덜컥, 서늘해지다}에서
청설모는 청설모과 청설모속이며, 평지의 산림지대와 고산지대의 산림에 걸쳐 서식한다. 푸르고 푸른 상록침엽수가 있는 산림을 좋아하며, 주행성으로 주로 나무 위에서 활동한다. 지상에서 활동하는 시간은 매우 적고 호두와 잣과 도토리와 과일과 버섯과 곤충들을 먹고 살아간다. 겨울철의 먹이부족을 위하여 도토리와 잣 등을 땅속이나 바위 틈새에 저장해 두는 습성이 있다.
글로별 시인의 [숲 키우는 청설모]는 “청설모 꼬리 붓이 되어/ 총보다 더 강한 무기되어/ 세상 지면을 휘어잡는다”라는 시구에서처럼 ‘문필의 대가’이자 ‘자연의 숲의 지휘관’이라고 할 수가 있다. 청설모는 “휘청휘청 잣나무 꼭대기 휘어잡으며/ 바람을 일으키기”도 하고, “이 빠진 잣송이 툭, 떨어”지면 “쪼르륵 산돌 밑 여기저기”에 그 양식들을 저장한다. 청설모가 저장한 양식은 그러나 까치나 까마귀의 양식이 되기도 하고, 그가 여기저기에 숨겨둔 양식들에 의해서 잣나무와 참나무 등의 싹이 트기도 한다.
깜깜하던 청설모 창고에서 봄이 싹트듯이, 나 하나 살자고 했을 뿐인데, 그의 근검절약의 양식비축이 수많은 동물들의 먹이가 되고, 궁극적으로는 그 나무의 종자들을 퍼뜨리는 행위가 된다. ‘자리즉이타自利卽利他’, 즉, 자연은 이처럼 상호 상생과 공존을 위한 법칙으로 되어 있으며, 만물은 조화를 이루게 되어 있는 것이다. 청설모가 양식을 저장해둔 것은 자기 자신의 삶을 위한 의도적인 행위가 되지만, 그러나 그 양식에 의해서 수많은 동식물들이 살아가는 것은 무의도적인 행위가 된다.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모두가 다같이 대자연의 가족이고, 그 어떤 동식물의 삶과 그 행위도 이 대자연의 법칙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가 없다.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일까? 인간이 신을 창조한 것일까? 만일, 전지전능한 신이 존재한다면 우리 인간들을 창조해낸 것이 ‘최악의 실수’라고 할 수가 있는데, 왜냐하면 우리 인간들은 자연의 파괴와 전지전능한 신들의 목을 비틀어버린 대역죄인들이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아니, 우리 인간들이 그의 언어로 전지전능한 신들을 창조해낸 것이라면 이 가공의 신들의 존재를 이용하여 우리 인간들의 이익만을 극대화시킨 최악의 파렴치범이자 흉악범들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날 우리 인간들은 도덕과 예의범절도 모르고, 너무나도 뻔뻔스럽고 파렴치하게 수치심도 모른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전혀 터무니없고 허무맹랑한 가짜 월계관을 쓰고 자연을 정복하고 만물을 지배하고 있으니, “수척한 청설모가 큰 나무 꼭대기에 올라/ 흔들흔들 바람 키우고” “봄 여름 가을 겨울 키우던 옛시절”을 떠올려 보며, “검은 눈물 뚝뚝 떨구며 계절을 까맣게 먹칠”하게 된다. 수척한 청설모는 굶주린 청설모이고, 굶주린 청설모는 생존의 위기에 몰린 청설모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푸르고 푸른 숲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자연은 파괴되고, 대부분의 동식물들의 먹이가 부족하니 청설모가 청설모로서 살아가기가 무척이나 힘 들어진다.
하지만, 그러나 청설모는 ‘문필의 대가’이자 ‘자연의 숲의 지휘관’답게 “나무와 나무 사이 바람같이 몸을 날리”고, “추운 겨울 하얗게 핀 슬픔을 모아/ 계절을 기”른다. 지혜와 용기와 성실함은 ‘문필의 대가’이자 ‘자연의 숲의 지휘관’인 청설모의 근본 신조이며, 이 문무를 겸비한 청설모의 삶의 철학, 즉, 낙천주의에 의하여 “아무리 춥다해도/ 청설모의 모정을” 확대 재생산해 나가게 된다.
아아, 청설모여, 자연의 숲의 지휘자여!
오오, 글로별 시인이여, 이서빈 시인이여, 이 세상의 삶의 찬양자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