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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시편 23:1-6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성도의 말은 예언이고 축복도 되고 예언이고 저주도 됩니다. 인생은 말대로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믿음의 말을 해야 하고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내 말이 나의 인생을 만들어가고 내 말이 나의 가정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람의 말은 자동차의 핸들과 같습니다.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자동차는 오른으로 가고 자동차를 왼쪽으로 돌리면 자동차는 왼쪽으로 갑니다. 사람의 말은 인생의 방향을 결정해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자기 자신과 가족과 일터와 교회와 국가를 축복하는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두 손을 들고 저를 따라 해봅시다. “내 영혼아 평안할지어다. 건강할지어다. 행복할지어다. 승리할지어다”, “내 자녀야! 평안할지어다. 잘될지어다. 건강할지어다. 행복할지어다. 승리할지어다.”, “내 일터야 풍성할지어다. 번성할 지어다. 부흥할 지어다.”
이번 유럽기도여행의 주제 성구는 잠 11:11입니다.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 자의 입으로 말미암아 무너지느니라” 성읍은 축복의 말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주의 말로 인하여 무너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축복을 들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말이 하나님의 귀에 들린 대로 역사하십니다. 이 원리는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국가에도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늘 복된 말, 긍정적인 말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신앙고백은 중요합니다. 롬10:10에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구원은 신앙고백으로 얻는 것입니다. 주님은 믿음의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고백을 하는 사람들에게 천국 열쇠를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 좋은 사람은 신앙고백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신앙고백의 명수였습니다. 그가 기록한 시편의 글들을 읽어보면 거의 자신의 신앙고백입니다. 시18:1-2절입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위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제가 볼 때 다윗의 신앙고백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시 23:1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정말 위대한 고백입니다. 우리 세 번만 해봅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오늘 설교는 여호와가 목자가 되시면 왜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는지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시련이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욥 5:7입니다.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 가는 것 같으니라”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습니다. 그러니 인생에 시련이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다윗은 70년을 살았는데 그 70년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할 때가 많았습니다. 20대 청년시절에는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면서 살았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생활 했고, 여러 번 죽음의 고비도 넘겼습니다. 한 번은 가드왕 아기스에게로 망명을 시도하려다가 죽을 것 같으니까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다가 쫓겨난 일도 있었습니다. 다윗은 30세에 왕이 되었지만 수많은 전쟁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다윗의 통치 말년에는 아들 압살롬과 아도니야가 차례로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다윗은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비애를 느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4절에서 이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선배들을 보면 예외 없이 모두 극렬한 시련을 통과했습니다. 요셉은 소년시절에 형들에 의하여 구덩이에 던져져서 죽음의 위기를 겪었고, 미디안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렸으며, 애굽 왕 바로의 친위 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생활도 했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 생활까지 했습니다. 요셉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중국 위해에서 관을 만들어 일본으로 수출하시는 장로님이 계십니다. 일본에서는 1년에 200만 명가량이 죽는데 그 장로님이 2만개의 관을 만들어 보낸답니다. 일본에서 사망하는 사람의 약 1%가 그 장로님의 관을 사용합니다. 관을 수출하다보니 많은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어느 날 트럭에 관을 싣고 이동 중이었습니다. 짐칸에 두 사람이 관과 함께 타고 있었는데 비가 억수로 쏟아졌습니다. 그들은 비를 피하기 위하여 관을 열고 그 안에 누웠습니다. 길가 던 네 사람이 손을 들어 트럭 운전사에게 부탁하여 짐칸에 올라탔습니다. 한참을 가다보니 비가 멈추어서 관속에 있던 두 사람이 관 뚜껑을 열고 나오면서 말했습니다. “비가 그쳤구먼!” 그 모습을 본 두 사람이 시체가 일어났다고 생각하고 두려워서 벌벌 떨다가 뒤로 넘어지는 바람에 달리는 트럭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두려움은 두려움 자체가 사람에게는 형벌입니다.
독일 파사오 대학의 바움가르텐 교수는 유럽에서 목회 심리학 분야의 대가입니다. 그는 인간이 두려움이나 위기 혹은 공포 속에 빠질 때 4가지를 상실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첫째는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둘째는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셋째는 용기를 잃어버리고, 넷째는 인생의 목표를 잃어버리게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두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수많은 두려움 때문에 현대 사회는 보상산업이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언제 건강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의료보험이 생겼습니다. 자동차 사고의 두려움 때문에 자동차 보험이 생겼고, 갖가지 암으로 인해 생명을 잃게 되자 암 보험이 등장하였습니다. 불이 나서 한 순간에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화재보험이 만들어졌습니다. 제가 그리스도인에게 보험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보험이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은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목자이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두려움을 이기게 합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우리의 목자이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에게 이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만족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2.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한국 국회의원들의 성적표라는 유머가 있습니다. 성적을 수우미양가로 매겼습니다. 요즘은 A, B, C, F로 성적을 매기는데 전에는 수우미양가로 설성적을 매겼습니다. 유일하게 수를 받은 과목은 수학이라고 합니다. 워낙 월급과 들어오는 비자금 계산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랍니다. 우를 받은 과목은 국어인데 말하기 쓰기 읽기 다 잘했는데 듣기가 잘 안 된다고 합니다. 미를 받은 과목은 외국어인데 외국여행은 잘하는데 외교 실력이 미미하기 때문이랍니다. 양을 받은 과목은 사회인데 워낙 사회봉사를 안 하다가 명절에 한번 나타나기 때문이랍니다. 가를 받은 과목은 윤리인데 그 원인은 거짓말, 싸움, 욕설에 능하기 때문이랍니다. 아예 점수가 안 나온 과목이 있는데 체육이라고 합니다. 특히 달리기 과목에서 힘은 넘쳐나는데 엉뚱한 다른 방향으로 달린 까닭에 점수가 안 나왔다고 합니다. 방향을 잃은 정치와 국회를 풍자하는 유머입니다. 정치인들이 방향을 잃고 헤매는 이유는 하나님의 인도 없이 당리당략과 자신의 출세욕에만 눈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들도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다윗은 정치를 했던 사람입니다. 다윗이 왕이 된 후에 이스라엘은 근동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가 되어 주변 국가들로부터 조공까지 받았습니다. 다윗 때에 이스라엘의 영광이 컸기 때문에 지금도 유대인들은 다윗 왕의 시대와 같은 부흥을 꿈꾸고 있습니다. 다윗이 그렇게 훌륭한 왕이 되었던 것은 목자이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목자는 길 잃은 양을 바른 길로 인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로써 양된 한 사람 한 사람뿐만 아니라 가정과 교회 그리고 회사와 국가도 인도해주십니다. 2절에서는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3절에서는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양인 우리를 인도하시는 목자이십니다.
여호와는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인데 구약성경에 무려 7,059번이나 나옵니다. 여호와의 뜻은 ‘스스로 있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의 도움이 없이도 존재하시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길 잃은 인간의 참 목자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목축이 주산업인 근동 지역에서 좋은 목자가 되려면 다음과 같은 자질들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①강인해야 합니다. 양을 기르는 일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므로 힘도 강해야 하고 끈기도 있어야 합니다. 벼랑으로 떨어진 양을 어깨에 메고 올라오기도 해야 합니다. ②섬세해야 합니다. 양들의 상태와 성격을 잘 파악해야 합니다. 허약한 양, 강한 양, 성격이 급하고 거친 양, 고집이 센 양, 잘 먹지 않는 양, 질병에 걸린 양, 새끼 벤 양들을 잘 분별해서 각각에 맞추어 보살펴야 합니다. ③부지런해야 합니다. 양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좋은 풀, 맑은 물,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인근의 지형도 미리 탐색해두어야 합니다. ④양의 보호자가 되어야 합니다. 양들이 짐승들과 도적들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도록 밤낮으로 양을 잘 지켜야 합니다. ⑤양들을 끝까지 책임을 지고 사랑해야 합니다. 양의 건강한 발육과 안전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⑥양의 길을 잘 안내하는 인도자여야 합니다. 양을 뒤에서 채찍으로 모는 것이 아니라 앞에 서서 양들의 이름을 불러 인도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주님은 훌륭한 목자이십니다. ①주님은 강인하십니다. 우주에 주님보다 강한 존재는 없습니다. ②주님은 섬세하십니다.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세신 분입니다. ③주님은 부지런하십니다. 주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십니다. ④주님은 우리의 보호자가 되십니다. 주님은 바위와 산성 같으신 분입니다. ⑤주님은 양들을 끝까지 책임을 지고 사랑하십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우리를 책임지셨습니다. ⑥주님은 우리의 인생길을 잘 안내하시는 인도자이십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캐나다에서 토양학 박사학위를 받은 필립 켈러(W. Phillip Keller) 박사는 [양과 목자]라는 책에서 8년 동안 목장을 운영하면서 양을 쳤던 경험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목자는 여름동안에 양떼들을 멀리 방목장으로 데리고 갑니다. 그곳은 고지대인데 양들은 거기서 지내면서 풍부한 목초를 뜯어 먹습니다. 그러다가 눈발이 날리게 되면 목자는 양떼를 이끌고 목장이 있는 낮은 지대로 돌아옵니다. 이때 내려오는 과정에서 지나게 되는 곳이 골짜기입니다. 양들의 입장에서는 ‘목자가 겨울에 잘 지낼 수 있게 할 것이면 왜 골짜기로 이끌어 가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골짜기는 산과 산 사이에 있는 계곡이라 위험한 곳이고 하루 중 햇볕도 얼마 들지 않는 음침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높은 절벽위에서 골짜기로 바위나 흙더미가 쏟아져 내릴 위험성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목자는 골짜기를 지날 때 더욱 양들에게 가까이 있으며 신경을 곤두세워 돌보게 됩니다. 푸르고 넓은 초장에서 지낼 때는 목자가 양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지만 골짜기를 지날 때는 양떼를 지켜주고 돌보아야 하는 때입니다. 그래서 자연히 양 떼와 목자가 가까워지는 때가 바로 골짜기를 지나는 순간입니다. 우리는 언제 하나님 아버지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게 됩니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즉 인생에서 가장 외롭고 두렵고 험하고 힘든 길을 걸어갈 때입니다. 그 때 하나님을 더 가까이 모시게 됩니다. 평탄하고 형통한 길을 걸을 때는 결코 맛볼 수 없었던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즉 목자이신 여호와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주님! 저를 인도해 주세요”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가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판단을 해서 인생길을 살아간다면 피곤합니다. 쉽게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항상 긴장하고 스트레스에 눌리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목자로 인정하고 인도를 받으면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지시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길을 찾으면 잘못 찾아 방황할 수밖에 없고 후회할 수밖에 없습니다. 목자는 양을 설득하지 않습니다. 양에게 무슨 설명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목자가 앞서 가면 양은 목자의 뒤를 따라가면 됩니다. 목적지도 목자가 알고, 목표도 목자가 알고, 방향도 목자가 알고 양을 인도합니다. 양들은 묵묵히 목자를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최선의 길입니다.
양이 목자를 따르려면 목자의 음성을 잘 들어야 하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도 목자이신 주님의 음성을 잘 들어야 합니다. 요 10:27입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양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장점은 청각입니다. 양은 특별히 자기 목자의 음성을 잘 분별합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목자의 음성을 흉내 내서 양을 부를지라도 양은 속지 않습니다. 목자들은 누구나 허리에 피리를 차고 다닙니다. 목자가 피리를 불면 양들은 목자가 주변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때문에 신변에 안전을 느끼고 아주 편안해 합니다. 이 피리 소리는 다른 짐승들의 접근을 막는 효과가 있습니다. “목자가 있으니까 너희들 접근하지 말라.”
주님의 양된 우리는 목자의 음성을 잘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목자의 인도를 잘 받을 수 있습니다. 목자이신 주님은 성경으로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목자이신 주님은 성령으로 말씀하십니다. 성령님은 믿는 자 속에 오셔서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마지막 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성령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어야 합니다.
잠 20:5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깊은 물 같으니라 그럴지라도 명철한 사람은 그것을 길어 내느니라” 여기서 모략은 ‘충고, 조언, 의논’입니다. 저는 이 ‘충고, 조언, 의논’의 출처가 하나님이라고 믿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성령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충고와 조언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통해서 목자이신 주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목자이신 하나님은 설교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구약 시대 때는 하나님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셔서 하나님의 뜻을 말씀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습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설교자를 세우셔서 하나님의 뜻을 자기의 양들에게 들려주시며 인도해주십니다. 그래서 주님의 양인 성도는 설교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어야 합니다.
저는 한 걸음 한 걸음 저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저는 양 같아서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가장 최선의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우리는 이런 믿음을 가지고 목자의 인도를 구해야 합니다. 목자이신 주님은 우리를 최고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부족함이 없습니다.
3. 하나님이 나를 행복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의 저서에서 “인간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인간의 행복과 불행이 소유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에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자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양입니다. 이런 깨달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복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되어 감격하게 됩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목자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다윗과 같이 위대한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부족함이 없다는 말은 만족한다는 말입니다. 만족이란 말의 국어 사전적인 뜻은 ‘마음에 흡족함. 또는 흡족하게 생각함.’입니다. 환경적인 흡족이 아니라 마음에 흡족함입니다. 만족은 마음이 문제입니다. 아무리 많아도 마음에 차지 않으면 부족함입니다. 아무리 없어도 마음에 차면 만족입니다. 인생은 만족할 때 행복합니다. 그런데 여호와를 목자로 모신 사람은 부족함이 없습니다. 만족합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주님은 선한목자이시고 우리는 주님의 양입니다. 눅 22:35입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배낭과 신발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이르되 없었나이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전대와 배낭과 신발도 없이 보내셨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부족한 것이 있더냐?” 제자들이 대답했습니다. “없었나이다.” 주님이 목자가 되시면 부족함이 없습니다. 만족합니다. 행복합니다.
제가 시 23편에서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 1절의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와 5절에서 “내 잔이 넘치나이다”입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여호와가 목자가 되시면 내 잔이 넘칩니다. 그래서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뉴욕 맨해튼 슬럼가에 시 23편을 페러디한 내용이 있답니다. “돈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돈이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아멘 하지 마세요. “마약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마약이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 도다.”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전도서 5:10입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세상의 것에는 결코 만족함이 없습니다. 돈이 되었든 마약이 되었든 명예와 권세가 되었든 그런 것들은 결코 인간을 만족 시킬 수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목마른 사람이 마시는 소금물과 같습니다. 마실수록 더 갈증만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목자로 삼아야 만족한 인생,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2절에 보면 목자는 양을 푸른 풀밭에 누이십니다. 여기서 ‘눕는다’라는 히브리어 동사는 ‘배를 땅에 대고 엎드린다’는 뜻입니다. 나귀 같은 짐승이 무거운 짐을 지고 가다가 지칠 때 주인이 멍에와 짐을 풀어줌으로써 땅에 엎드려 쉴 때 쓰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양들은 아주 안전하고 아주 만족스러울 때만 배를 풀밭에 깔고 눕는답니다. 이 말은 여호와가 목자가 되시면 양이 만족해서 배를 땅에 대고 엎드리듯이 그렇게 행복하다는 말씀입니다.
양은 겁이 많은 동물이라 늘 긴장 속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목자가 곁에 있어야 안심하고 눕습니다. 주위가 소란할 때든지 동료 양들이 서로 싸울 때는 눕지 못합니다. 양은 변화하는 환경에 빨리 적응하지 못하고 쉽게 동요합니다. 이때도 목자가 개입하여 주변 환경을 정돈할 때 비로소 안심하고 눕습니다.
양은 쾌적한 풀밭이 아니면 잘 눕지 않습니다. 풀밭에 양들의 건강에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기생충이 서식하든지 독초나 가시덤불이나 딱딱한 나뭇가지들이 널려있으면 양들은 눕지 않습니다. 목자가 질이 좋은 풀밭으로 인도해야 눕습니다.
양은 배가 고플 때도 눕지 못합니다. 싱싱한 풀을 마음껏 뜯어먹어 배가 불러야 눕습니다. 이처럼 양들이 편안하게 누울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좋은 목자 때문입니다. 양은 목자 때문에 만족하고 행복한 것입니다.
2절에 보면 목자는 양을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고 했습니다. 양들이 배불리 먹고 휴식한 다음에는 2차 소화를 위해 많은 양의 물을 마셔야 합니다. ‘데이비스’라는 분은 중동에 가서 실제로 유목민들을 따라 다니면서 경험한 것을 [완전한 목자]라는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그가 보니 목자가 양떼를 데리고 물가로 인도했지만 양들이 물에 들어서려고 하지 않더랍니다. 그 이유는 맞은편 바위 위에 길 잃은 개 한 마리가 서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개가 두려워서 양들이 물가로 내려가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목자가 물매로 돌멩이를 개에게 던져 개를 쫓아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양들은 물에 들어서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개가 서있던 자리에 목자가 서있는 것을 보고서야 물가로 내려가서 물을 먹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양들은 목자 때문에 안심하고 물을 먹었던 것입니다. 양은 목자 때문에 만족하고 행복한 것입니다.
다윗이 부족함이 없이 언제나 잔이 넘치는 축복의 삶을 살게 된 이유는 여호와가 목자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여호와를 목자로 삼고 하나님만 따르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해가 되던 이해가 되지 않던 목자이신 하나님만을 따르며 살았습니다. 그의 인생은 겉으로 볼 때는 고된 삶 같았으나 실제로는 목자이신 하나님 때문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잔이 넘쳤습니다. 목자이신 주님은 나를 행복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전지하신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양들을 앞서 인도하시는 목자이십다. 예수님은 생명의 공급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끝까지 보호하시는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목자일 뿐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의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셔서 모든 성도들에게 영원한 목자가 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윗처럼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한 절 씩 믿음을 가지고 고백해봅시다. 1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절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절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절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절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할렐루야! 저와 여러분의 목자이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