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회화(151) - 왕희지(王羲之) 1
왕희지(303-361)는 산동성 낭야 임기 출신이다. 아버지 왕광은 회남태수, 할아버지 왕정은 상서랑, 종숙부인 왕도와 왕돈은 사마예가 동진을 건국할 때 도운 공로로 승상과 병권을 나누어 가진 세도가이다. 낭야 왕씨는 위진 시대에 최고의 세도 가문이었다. 왕희지도 명문 가문의 명맥을 이어갔다.
왕희지는 비서랑(秘書琅—궁중의 전적을 관장하는 명예로운 벼슬)을 시작으로 여러 관직을 거친 후에 351년에 회계내사, 右軍將軍을 마지막으로 은퇴하였다. 그래서 왕희지를 왕우군이라고 부른다. 벼슬에서 물러 난 후에는 문인들과 산수를 유람하고, 낚시를 즐기며 은거 생활을 하였다. 남북조 시대에는 끈임없는 전쟁으로 선비 사이에 청담사상과 노장사상이 유행하였다. 왕희지도 그런 분위기에 빠져 있었지만 청담사상의 쓸데 없는 논쟁은 싫어 하였다. 노후에는 생노병사에 관심을 가지고 불교에 심취하기도 하였다.
만년에는 여러 병을 앓으면서 그의 작품에 감성적인 기분도 느껴진다. 여러 서첩에서 병을 언급한 내용이 많다.
어릴 때는 위부인(272-349 –위부인은 종요에게 글을 배웠다고 한다.위부인의 서론은 강한 서풍으로 글을 써야 한다고 하였다.)에게 글을 배웠고(전설적으로), 강남으로 온 동진시대에는 여러 서예가의 글을 배워서 자신만의 개성적인 서체를 만들었다. 왕희지는 해, 행, 초의 실용적인 서체를 예술적인 서체로 승화시켰다. 특히 해서와 행초를 잘 썼다.
첫댓글 왕희지에 대한 공부 잘 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