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성월에 어머니께 올리는 하소연
사랑하올 어머니,
온 누리가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싱그러운 신록의 환희로 가득한 저녁,
신석복(마르코)순교자와 강섬삼(라우렌시오)신부님의 숨결이 함께하는 이 곳 명례언덕,
농익은 봄 날 다소곳한 촛불들의 팔랑거림이 참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잘 가꾸어진 정원 담장에 화려하게 피어난 장미꽃보다도
명례숲 속 한 켠에 피어있는 아까시 나무의 하얀 꽃이 더욱 친근하게 다가옴은
아마도 지금 이 땅에는 슬프고 안타까운 일들이 너무도 많아
어머니의 위로를 얻고자 하는 마음이 더욱 살갑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 입니다.
온갖 풀꽃들이 지천에 피어나고 온 누리는 푸르름을 더 해 가지만
이 오월의 뒤안길이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은 듯 하여 무거워지는 마음 한 켠 입니다.
그저 송구한 마음으로 드리는 저희의 푸념을 너그러이 들어 주십시요.
메이 데이라 하여 오월의 첫 날은 <노동자의 날>로 시작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이들이 땀 흘린 만큼 거두며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기를 염원하지만
아직도 세상의 여기저기에는 생존의 위협을 받는 힘없는 이들의 흐릿한 눈빛이
빈곤과, 상실의 분노와, 사랑하는 가족들의 얼굴들이 뒤엉기면서 내일은 조금 나아질까?
내일은 일터가 얻어질까? 하며 노심초사 밤잠을 못 이룹니다.
닷새째 날, 여름으로 들어선다는 입하, <어린이 날>이라 하여
요즘은 어른들보다도 더 바쁘게 뒤쫒기며 불안속에 방황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이 날 하루만큼은 아무 걱정 없이 신명나게 뛰어 놀은 듯 했지만
아직도 소외와 무관심 속에 우두커니 서 있었을 아이들은 없었을까 싶습니다.
여드렛 날, <어버이 날>이라 하여 우리 어버이들,
어줍잖게 가슴에 꽃 한 송이 꽂으시고 마냥 쑥스러워 합니다.
집 떠난 자식들은 무에가 그리 바쁜지 얼굴 마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제는 세월의 뒤안길에서 엉거주춤 서있게 될 아스라한 모습,
쉬임없이 돌아가는 세상사의 뒷 켠에 묻혀버릴 우리 모두의 자화상일 것입니다.
열 하룻 날, 이 땅에 부모 잃은 어린이가 얼마나 많으면
<입양아의 날> 이란 것이 자리하고 있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 입니다.
입양된 모든 어린이와 그들의 양부모,
무엇보다 그 아이들과 헤어져 멀리서 지켜보며 안스러워 할 생부모들의 시린 어깨를
이 오월의 햇살이 따스하게 어루만져 줄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열 이렛 날은 사월초파일.
온 사찰과 거리에 오색연등 찬연했던< 부처님 오신 날 >그 연등의 수량만큼이나
이 땅에 부처님의 자비가 넘쳐나기를 기원합니다.
열 여드레 날, <5.18민주화 운동 기념일>이라 하니 무슨 재미난 운동회 축제같이 들립니다.
민주화니, 정의니,자유니…. 거창한 구호는 모르더라도
사랑하는 이와 피붙이를 잃은 이들은 아직도 가슴에 맺힌 핏멍울 제대로 삭히지 못하고
오월 그 날이 오면 들려오는 절규에 잠 못 이루는 이들이 있음을 기억해 봅니다.
아…그냥 지나칠 뻔 했습니다….열 닷새 날, <스승의 날> 이 함께 했습니다.
작금에 이 땅의 공교육이 그 어느 때 보다 위협받고 있음에
스승 된 이들은 그 무엇보다 당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온유와 너그러움으로 지식과 지혜를,
무엇보다 사람의 냄새가 나게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또한 아이들은 진정 참 스승으로 존경을 드릴 수 있는 세상이 되어 지기를 소원합니다.
열 아흐렛날, 이 날은 조금은 생소한 <발명의 날>이란 것도 함께 하였습니다.
<모든 문명은 자연을 보호해야 하고 그 가운데 인간들도 함께 보호된다>는 기본철학을 가지지 못하고
오직 안락과 편리함을 추구하기에 우리 삶의 터전은 급속히 망가져가고 있으니
이 역시 참으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스무 날, <성년의 날> 을 맞은 청소년들, 기대가 크듯이 실망도 클 듯 합니다.
우리의 청년들이 몸집만 성인이 아니라 따뜻하고 아름다운 속마음을 지닌 사람들로 거듭나
이 땅의 초석이 되어지기를 원함은 이 세상 모든 부모들이 한결같이 가지는
지극히 소박한 바램일 것 입니다.
또한 이 날은 <세계인의 날>이라고도 합니다.
아직도 제 목소리만 크게 내고 제 배만 채우기에 급급하는 세상의 모든 나라들이
이제는 서로 배려하고 나누며 살아가는 지구촌의 가족이 되어지길 진정으로 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피를 나눈 동포인 남북의 모든 사람들이
이제는 더 이상 불목하지않고, 서로 해치지 아니하고 사랑하는 형제들이 되어지길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스무 하룻 날, 이 날은 둘이 하나된 사람들이라며 <부부의 날>도 몇 해 전에 얼떨결에 생겼습니다.
이 땅의 모든 가정들이 더 이상 안전지대이지 못함도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개인주의의 팽배, 그릇된 남녀 평등의 인식, 물질만능의 혼탁한 세상에서 이 땅의 모든 가정들이
더없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서로 아끼며 살아가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지면 참 좋겠습니다.
오월의 서른 하루 째 마지막날은 < 바다의 날 >이라고 합니다.
우직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는 바다는 무한한 포용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더 이상 무조건 받아들이기를 거부할 것 입니다.
바다의 인내심은 그 한계가 어디까지일지 이제는 가늠을 할 수 없어 두려울 뿐 입니다.
현세에 벌어지는 지구촌의 가공스런 자연재해들은 수 많은 인명과 재산을 참혹하게 앗아 갔으며,
지금 이 순간도 수 많은 사람들이 세상 곳곳에서 기아와 병마와 재해로 숨져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안타까운 일들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고
모두가 스스로 피해자일 뿐이라고 착각합니다.
한없이 자애로우신 어머니,
세상사 이런저런 시름에 힘겨웁지만 그래도 <더도말고 덜도말고 오월만 같아라>.
이 좋은 어머니의 성월에,
오늘 저녁만큼은 그 시름 떨쳐 버리고 마음편히 해드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허기진 젖먹이마냥 당신께 마냥 보채기만 하였습니다.
그저 송구한 마음으로 용서를 청합니다.
이렇게 머리 엎조리면서도 마음 한 켠 무겁게 짓눌려옴은
그래도 어머니께서는 무조건 저희들을 두 팔과 온 마음으로 꼭 보듬으시고,
< 그래 내 사랑하는 새끼들아…너그들 모두 큰 욕 본다…. 많이들 힘들제?
그래도 어쩌누.. 서로 도와가며 잘해 내거라…너그 엄마, 하늘 아부지한테 잘 말씀 드려 볼끼다….
힘들 내거라…에그 우리 새끼들….> 하시며 그 고우신 눈가에 잔주름 드리우시고
눈물방울 툭~ 툭~ 떨구실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시고
이곳 명례 언덕에 함께한 모든 이들에게 축복하시고
우리 모두가 녹는 소금과 나누는 누룩의 영성으로 흠뻑 젖게 하소서. 아멘
하느님의 어머니
Dei Genitrix . mother of God
첫댓글 형님의 감동적인 편지로 인해 너무나 감동적인 성모님의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