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추웠던 동장군이 한풀 꺽인 겨울의 끝자락.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대전역 동광장의 바람은 아직 매서웠다. 경부선을 비롯해 영,호남 교통의 요지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전역은 대전블루스, 가락국수 등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이 절로 묻어나는 곳이다.
봄이 오는가 싶더니 마른 나뭇가지가 경칩을 맞아 벌써 연두색 까운으로 갈아 입을 태세다. 2018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에 선정된 대전 원도심 여행에 잠시 빠져보자! 그리하여 대전의 역사속으로 들어가 본다.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이란? 무엇일까? 전국 10개 권역을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로 육성하기 위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의 국내여행 활성화 사업이다. 각 권역에 있는 3~4개 지방자치단체는 그 지역의 특색 있는 관광명소들을 개선하고 연계항 테마가 있는 고품격 관광코스로 여행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출처;한국관광공사)
6·25전쟁 당시 철도는 가장 중요한 육상 교통수단이었다. 대전역 동광장에는 한국전쟁당시 수송 작전에 투입됐다가 전사한 철도인의 숭고한 넋을 기리는 호국철도광장이 2015년 9월 조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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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휘날리는 호국철도광장에는 윌리엄 딘 소장(미24 사단장) 구출과 군수물자 수송작전에 투입됐다가 전사한 김재현 기관사(가운데. 당시 28세)와 황남호, 현재영 두 부기관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광복 70주년 기념과 코레일 116주년 철도의 날을 기념해 이곳에 동상을 세우고 '기적을 울리는 사람들'이라 이름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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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울리는 3인의 영웅들>
그후 미국방부는 한국전쟁 당시 국가를 위해 용감하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한 이분들에게 민간인에게 주는 특별공로상을 줬다고 한다.
물론, 철도를 통해 생겨난 대전은 시간과 공간이 공존하는 도시이다.
대전역 동광장 주차장 한 켠에 덩그러니 자리한 낡은 목조건물인 철도보급창고는 철도청에서 필요로 하는 물자를 이동, 보관하던 철도청 대전지역 사무소 보급창고였다. 허름한 건물 외벽 나무판자가 시커멓게 변한걸로 보아 오랜 세월이 흘렀음을 실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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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문화재 168호로 지정된 이 보급창고는 1956년 일제강점기의 기술을 적용해 지어진 목조건물로 그 원형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근대목조 건축물로서 희소가치가 높다고 하는데 일자형 긴 지붕의 내부엔 기둥 하나 없이 지어져 8.15 광복 후 건물의 특징을 그대로 간직했으며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은 건물로 현재는 문화예술공간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소제동 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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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제동 철갑교>
커다란 느릅나무 아래 자리한 소제동 장승은 평범한 돌 두 개가 나란히 세워져 있는 모습인데 바로옆에 안내문이 없었다면 누구라도 장승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매년 정월 보름 전날엔 복을 기원하는 제를 지낸다고 한다.
나무를 기준으로 왼쪽이 남장승, 오른쪽이 여장승이라 한다. 이곳에서 시내쪽을 바라보면 보문산이 보이는데 그 옛날 송시열 선생이 여인의 돌아누운 모습 같다해 그 기운을 막기위해 이곳에 장승을 세웠다는 설도 전해진다. 소제호가 사라진 곳엔 대동천이 맑게 흐르고 있다.새로운 벚꽃명소로 거듭난 대동천에 노란 꽃창포가 활짝 웃을 즈음 시민들의 발걸음도 잦아진다고 한다.
원래 소제동이라 이름을 붙인 이유도 바로 소제호가 있었기 때문인데 1927년 일본인들이 주변의 산을 허물고 소제호를 메워 관사촌을 지었다 하는데 사라진 호수의 흔적은 없지만, 소제호를 기억하며 1930년대 철도관사촌의 모습을 천천히 둘러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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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제동 벽화거리. 이곳에 송시열 선생 생가가 남아 있다>
소제동을 끼고 흐르는 대동천 철갑교를 기준으로 벽화마을이 쭈~욱 이어져 있는데 대동천을 따라 소박한 그림들을 구경하며 벽화 골목으로 들어섰다. 100년전 소제호가 있었던 바로 이곳! 호수를 끼고 있는 소제동에 우암 송시열 선생이 살았던 집이 현재 남아 있고 기국정이라는 정자를 지어 학문을 논했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버드나무와 연꽃이 예쁘게 피어났던 호수 주변의 평화롭던 전통마을이 어느순간 일본인들이 점령했던 근대마을로 변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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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제동 철도관사촌과 솔랑시울길>
1901년 일제가 경부선 철도를 건설하고 대전은 철도 교통 중심지가 됐다. 철도로 생긴 도시 답게 대전역 뒤 소제동에는 철도관사촌이 밀집해 있다. 당시 철도노동자들이 거주할 관사를 짓기위해 아름답던 소제호가 메워지고 솔랑시울길이라 불리는 골목엔 철도관사촌이 형성된 것이다.
철도공사장 인부들과 고위 간부급이 살았던 관사 지붕 아래에는 집집마다 호수가 새겨져 있고 100여 채였던 관사가 한국전쟁을 겪으며 현재 40여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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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제동에서만 만나 볼 수 있는 좁은 벽화골목>
소제동을 돌다보면 대전의 한복판에 이렇게 낙후된 집들이 있나 싶을 정도로 허물어져가는 집들이 많다. 관사가 모여 있는 솔랑시울길에서 만난 나무전봇대! 소재동에서만 볼 수 있는 세월의 흔적이다. 과거와 현재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 넘어질듯 서 있다.
언제부턴가 이곳에도 변화가 왔다. 골목의 허름한 벽에 소박한 벽화들이 채워지고 지역 예술가들의 활동에 힘입어 언제부턴가 외국인과 여행자들이 찾는 공간이 된 것을 실감할 수 있을 정도다. <채홍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