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죽
이정희
도마 위에 전복을 저미다가
그의 위胃에서 잘라낸 암 덩어리를 생각한다
수술을 마치고 나온 의사가
가족들을 불러놓고 아무렇지 않게
전복만한 거뭇한 덩어리를 핀셋으로 툭툭 건드렸다
저것도 그 사람의 일부인데
의사의 입과 그것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왜, 위 바깥쪽에 숨어서 제 주인을 속였을까
의사는 그의 운명을 몇 년으로 선고할 것인가
전복이 잘리고 내장의 검은 물이 도마에 번질 때면
칼끝이 내 장기를 건드리는 것 같았지만
잔인함도 습관이 되는지
의사의 메스처럼 내 칼질도 점점 무디어졌다
참기름을 두르고 전복을 볶다가
불린 쌀을 한 줌 털어 넣고
밖을 내다보며 생각한다
그 많은 나무 중에 하필 저 대추나무가 벼락을 맞았을까?
가슴에 큼직한 지퍼를 다셨군요
젊은 의사의 말에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지네발을 보듬고 잠든 밤이면
바짝 다가가 숨소리를 엿들었다
서두르지 마세요
불안한 계절은 그 자리에
또 한 번의 깊고 긴 칼자국을 남기고
지나갔다
시집『닭에게 세 번 절하다』2019. 서정시학
닭에게 세 번 절하다
이정희
닭님!
닭이나 밤똥 누지 사람도 밤똥누나요?
내 밤볼일 닭님이 다 가져가세요
한쪽 다리는 가슴 털에 묻어둔 채
외줄로 된 대나무 위에 앉아서
도도한 척 두 눈 떴다 감았다
세상 해탈하신 닭님
미동도 없이 퍽 퍽 똥 떨어뜨리는
닭님에게 세 번 절하고 두 손 모아 빌었지
외할머니 흔들어 깨워서
뒷간까지는 못가고 두엄에 똥을 눈다
힘 한번 주고 얼른 엉덩이 치켜들고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할머니 별도 담배 피워?
할머니 맛나게 한 모금 빨아들인
담뱃불이 반짝 별이 반짝
늬 애비가 널 보러 나왔는갑다
달님은 구름에 한 쪽 눈 가리고
내 시린 엉덩이 다 바라보셨지
삼일동안 세 번 절하고 두 손 모아 빌었더니
다음날부터 밤똥 누지 않은 것은
닭님이었을까?
달님이었을까?
아니면 나를 안쓰럽게 여긴
별님이었을까?
시집『닭에게 세 번 절하다』2019. 서정시학
이정희 시인
익산출생.
2013년 서정시학으로 등단.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시집『닭에게 세 번 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