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 때 "로얄살루트50년" 이라는 영국 위스키 20병이 한국에 들어와 백화점에서 1,200만원에 팔렸다고 하나 아직 냄새도 맡아보지 못한 주제에 그 술 얘기를 하려니 좀 쑥스럽기도하다.
그러나 지난 주, 금년의 왕릉탐사를 마감하는 뜻에서 여주의 세종대왕릉인 英陵, 또 다른 寧陵(효종릉)을 거쳐 인근에 있는 명성황후 생가 기념관을 들렀을 때 일어난 일 때문에 영국 위스키 얘기를 안할 수가 없게 되었다.
명성황후 생가 옆에 현대식 건물로 명성황후 기념관이 있어서 들어갔다. 우리 일행은 첫 설명자료 부터 마음에 들지않았다. 두 개의 사건을 콤마없이 한문장으로 연결하여 같은 해에 두사건이 일어난것처럼 혼동이 되게 써 놓았다. 이 때문에 전체 설명자료들이 권위가 없어 보이는 할로에펙트 상태에서 구경을 계속했다. 드디어 기념관의 마지막 부분, 명성황후의 국장 장면을 설명한 연도가 틀리게(?) 적힌것을 보고는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행 중 두사람이 관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을미사변이 1895년인데, 국장을 1897년에 했다니 이렇게 틀린 자료를..."
" 지적은 감사합니다만, 국장은 1897년이 맞습니다. 명성황후는 1895년에 일본인 깡패들에게 시해 당하고 난 뒤 고종에 의해 폐서인 되었다가 2년 뒤인 1897년에 복위되고 명성이라는 시호를 받은 뒤 국장을 치렀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흥분했던 우리는 다른 몇가지 의견을 제시하는것으로 난국을 수습하고 기념관을 나왔다.
이런 일이 바로 영국의 위스키 로얄살루트의 나이 계산과 영국 여왕의 대관식 연도와의 관계에서 자주 일어난다. 21년 묵은 위스키 로얄 살루트가 처음 시장에 나온것은 1953년이였다. 흔히들 이 술은 에리자베스 여왕의 대관식을 위하여 Chivas Brothers사가 여왕의 다섯살 시절 부터 숙성을 시작했다고 알려져있다. 에리자베스 여왕이 다섯살일때인 1931년부터 숙성을 시작한것은 맞으나 대관식이 21년후가 될거라고 예측하고 한것은 아닌것이 분명하다.
당시 영국의 왕위는 부왕이 서거해야 이양되는데, 살아있는 왕의 사망 날짜를 예측한다는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에리자베스 2세는 1926년생인데 26세인 1952년,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식민지국가를 시찰하던 중, 첫 기착지인 케냐에서 아버지 조지 6세가 서거하여 자기가 왕에 즉위(卽位)하였다는 통보를 받고 귀국한다. 그것이 1952년 2월 6일이다. 그래서 여왕은 지난해 2002년, 즉위 50주년 기념일, Golden Jublee를 치렀다. 여왕의 대관식은 즉위 1년 뒤인 1853년 6월2일에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그래서 올해는 대관식 50주년이다.
여왕이 대관식을 하던 해에 시바스 브라더스사는 지하 저장고의 오크통을 검사했더니 숙성시키고 있던 위스키가 21년이 된것을 알았다. 여왕의 대관식을 기념하여 21년 묵은 위스키를 병입(Bottling) 하면서 생각해 낸 이름이 Royal Salute였다. 여왕에 대한 군함의 예포가 21발이니 여왕의 대관식 연도에 출시하기에 딱 맞아떨어지는 절묘한 이름이었다.
이 술은 시장에 처음 나왔을 때는 비싼 가격때문에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다만 60년대 초 일본의
상사(商事)맨들이 출장 길에 한두병씩 사서 들고 오다가 일본이 해외여행 자유화를 한 70년대 부터 일본사람들이 해외에 나갔다가 들어올 때 너도 나도 한병씩 들고오는것이 유행하기 시작하여 수요에 불을 붙였다.
1979년에 서거한 박대통령도 마지막 술자리에서 주전자에 부어서 마신 술이 고작 Chivas Regal 12년 짜리 였으니 이때까지 우리나라에 Royal Salute가 소개되지 않은것이 분명하다. 한국에서 21년산이 유행한것은 90년대나 되어서였다.
프리미엄 위스키가 한국과 일본에서 대성공을 거두자 영국의 위스키 회사들은 앞다투어 숙성창고를 확장하였다. 일본의 산토리 위스키가 히비키(響)라는 이름으로 21년산을 내놓았고 다른 회사는 영국의 위스키회사를 인수해 버렸다.
2003년 5월 29일 Chivas 사는 255병의 "로얄살루트50년"을 출시한다고 발표하면서 제1번 병을 에드문드 힐러리경에게 증정했다. 힐러리경은 1953년 5월29일,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정복한 등산가다. 힐러리의 에베레스트 정복은 공표를 미루고있다가 6월 2일 에리자베스 여왕의 대관식이끝난 뒤 저녁 파티자리에서 발표되었다. 이 회사는 21년짜리는 여왕의 즉위식에 맞추어 출시하고, 50년짜리는 여왕의 대관식 50주년인 금년에 출시하여 여왕과의 관계를 계속 상술에 활용하고 있다.
로얄살루트50년은 정확히 255병만 만들어서 모든 병에는 일련번호가 붙어있다. 우리나라는 그 중 20병이 배정되어 지난 추석대목에 풀었는데 모두 다 팔렸다. 이 술 수입회사는 영국 흉내를 낸다고 그 중 한병을 우리나라 산악인 엄홍길씨에게 기증하였고 엄홍길씨는 그 술을 자선단체에 기부하였다. 스무병 중 몇병은 특급호텔에서 사 갔는데 호텔에서는 한잔에 50만원을 받고 팔고있다고 한다.
한잔에 50만원 하는 술을 마실 형편이 못되니 그 술이 아직도 호텔 바에 남아있는지는 궁금 하지도 않다.
2003.12
첫댓글 좋은 정보 감사 합니다.앞으로도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