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해거름에 작은오빠한테 전화가 왔다. 조금 있으면 내가 있는 곳을 지나갈 것인데 잠시 얼굴이나 보고 갈까 싶어 연락을 하셨단다. 내 감각 음주 측정기로 오빠는 만취 수준이다.
도로에 나가 있겠다고 하고 나갈 채비를 하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한 정거장 전에 내려서 다시 차를 타야 한단다. 버스인지 지하철인지 물을 새도 없이 전화는 끊겼다. 지하도 4번 출입구와 버스 정류장 중간에서 오빠를 기다렸다.
잠시 후 운동복 차림에 테니스 가방을 둘러 맨 오빠가 버스에서 내리는 게 보였다. 얼른 횡단보도로 가서 오빠에게 손을 흔들었다. 오빠는 주위를 둘러보시더니 나를 발견하고 해맑은 웃음을 지으시며 손을 드셨다. 마치 길을 잃은 어린아이가 엄마를 발견한 것처럼 반가워하신다. 신호가 바뀌자 얼른 가서 오빠 손을 잡았다.
술 한잔 더 하시고 싶다 해서 근처 주점으로 갔다. 소주 1병에 골뱅이 +소면을 시켰다. 술을 많이 드신 것 같다고 하니 “쪼끔‘ 이란다. 오빠의 음주량은 술이 취했을 때는 늘 ”쪼끔“이고 다음날 아침에는 ”엄청 “ 마신것 같다고 한다 .
마주 보고 앉아 오빠를 보니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오빠 앞에 앉아 있는 나도 그럴 것이다.
오빠는 요즘 삶이 행복하다고 하셨다. 올케언니가 잘 챙겨주고 조카들도 잘하고 주말이면 테니스 하고 또 술도 실컷 마시니 뭘 더 바랄 게 있냐 하신다. 그럼 오빠가 보기에 나는 불행 해 보이지 않냐고 물어보니 ”네가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 보인다 “ 하셨다. 몇 년 전 술 취하셨을 때는 불쌍하다고 했었다. 이제 내 모습이 많이 평안 해 보이나? 오빠가 행복해 보인다 하니 기분 좋은 일이다 .
그러면서 오빠가 얼마 전에 엄청 울었다고 하셨다. 그날은 술도 안 마셨는데 엄마 생각이 많이 나고 왜 그렇게 일찍 돌아가셨을까 하는 애통함에 하염없이 눈물이 났단다. “그러게요, 왜 그렇게 고생만 하시다가..” 그 말을 못 끝내고 안경에 고인 눈물을 닦아 내야 했다. 오빠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길래 냅킨을 드렸다.
60대 중반의 동생과 70대 초반의 오빠가 우리 곁을 떠난 지 40년도 더 넘은 엄마를 그리워하면서 우는 모습이 남들에겐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하는 생각이 퍼뜩 났다.
우리 형제들의 마음엔 엄마가 언제나 함께 하신다. 지난번 큰오빠를 만났을 때 나보고 어렸을 적 살던 집의 뒷산을 기억 하냐고 물으셨다 . 상수리와 밤을 줍던 그곳이 생각난다고 하니 다음에 함께 가보자 하셨다. 나도 그곳에 가 보고 싶었다.
술을 한병 더 주문하자는 오빠의 청을 거절하고 밖으로 나왔다. 집에 가실 수 있냐 했더니 노선버스 번호를 말하며 걱정 말라고 하셨다. 아무리 술이 취해도 집은 잘 찾아간다 하신다.
눈치 없는 버스가 바로 왔다. 교통카드가 있는지 확인해 보고 버스에 타시라 했더니 단말기에 카드도 제대로 대고 얼른 빈자리에 앉는 것을 보며 손인사를 하려는데 버스가 출발했다. 작은올케 언니한테 연락을 했다.
다 좋은데 오빠는 과음이 흠이라고 내가 곧잘 말을 한다. 기관지도 안 좋은지 숨소리도 편하지 않게 들리고 통풍도 가끔 있고 예전의 건강한 오빠는 아니다. 그래도 오늘 테니스는 잘 했다고 자랑 하신다 . “오빠 멋있지 ?” 그렇게 묻길래 “우리 오빠 최고예요” 했다 . 그 오빠에 그 동생이다 .
우리 형제 중 가장 음주가무의 좋은 유전인자를 갖고 태어난 오빠의 건강이 이제는 염려된다. 죽으면 하늘의 별이 될 것이라는 오빠는 그래서 별 바라보기를 좋아 하신단다 . 오빠 한테 나도 밤 하늘의 별을 좋아한다는 말을 했다 .
“오빠 저는요 , 우리 형제 중 누가 이 세상을 떠나면 너무 슬플 것 같아요 ” 했더니 “나는 하나도 안 슬퍼 , 내가 제일 먼저 죽을 테니깐..” 오빠는 가끔 사춘기 소년 같기도 하고 유치하게 낭만적인 척한다. 그래도 나는 작은오빠를 참 좋아한다. 술 취한 오빠랑 오랜만에 손을 잡고 걸어 본 날이었다 .
오늘 아침에 안부 문자를 보냈다 . 어제 저녁에 술 엄청 먹었다 하시길래 나랑 있었던 것 기억하냐 물었더니 “그럼 기억하지. 어렴풋이 -”
오빠와 내가 엄마 이야기 하면서 울었던 것 생각나냐고 물어보려다 말았다. 아마 그것도 어렴풋이 기억하시려나?
오늘은 날씨 탓인가? 아침부터 우울해지네.. 우울타파 해 보려 애쓰고 있었는데.. 아녜스님이.ㅠㅠ 계속 우울모드로 이끄시네요. 탓하는건 절대아니에요. 댓글 쓰고 일찍 자야겠어요. 오남매 중 넷째인 여동생이 엄마따라 13년전 떠났습니다. 집안의 분위기 메이커였는데. 그 동생 보내고 집안에 모임이 사라 질 정도였어요. 막내인 남동생은 친구들에게 '난 누나가 셋이나있어.'라고 자랑하다가, 그 후론 '난 누나가 둘 밖에 없네'라고 했답니다.
이제 모두 5 ~60대. 서로 말 하지 않아도, 또 서운한 점 있어도 먼저간 엄마, 여동생 생각하면서 맘 달랩니다. 손잡고 걸을 수 있는 남매. 남은 세월도 그렇게 따뜻하게 지내시길요. 근데 아녜스님 한국 들어오셨어요?
한 배에서 태어나 한 평생 남매 인연으로 살아가는 오빠•동생 인연. 일찍 떠나신 엄마를 그리며 눈물 짓는 그 인연이 참 애틋하고 사랑스럽게 보입니다. 오라버니께서 별이 되시겠다니, 그저께 밤에 밤하늘이 맑아 찍은 폰사진에 제 어릴 때 삼형제별이라고 부르던 별이 잡혀 잘 보일지 모르지만 보내 드립니다. 미리 오빠별 한번 찾아보세요. ㅎ
첫댓글 중년의 남매가 마주앉아 지난시절을 그리는 모습이 따뜻하네요
사람들은 추억을 먹고 사나 봄니다
그리운 어머니를 그리며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는 남매의 우애가 부럽습니다.
중년이라고 하기에도 좀 늦은것 같아요 .
두 오라버니의 모습에서 노인이 보일때
웬지 마음이 서글퍼져요 .
멀리 떨어져 사는 마음이 늘 애틋하답니다 .
댓글 고맙습니다.
오늘은 날씨 탓인가? 아침부터 우울해지네.. 우울타파 해 보려 애쓰고 있었는데..
아녜스님이.ㅠㅠ 계속 우울모드로 이끄시네요. 탓하는건 절대아니에요.
댓글 쓰고 일찍 자야겠어요.
오남매 중 넷째인 여동생이 엄마따라 13년전 떠났습니다.
집안의 분위기 메이커였는데.
그 동생 보내고 집안에 모임이 사라 질 정도였어요.
막내인 남동생은 친구들에게 '난 누나가 셋이나있어.'라고 자랑하다가,
그 후론 '난 누나가 둘 밖에 없네'라고 했답니다.
이제 모두 5 ~60대. 서로 말 하지 않아도, 또 서운한 점 있어도 먼저간 엄마, 여동생 생각하면서 맘 달랩니다.
손잡고 걸을 수 있는 남매.
남은 세월도 그렇게 따뜻하게 지내시길요.
근데 아녜스님 한국 들어오셨어요?
커쇼님 미안해요 .
기분을 다운시켰네요 .
밝은 에너지를 나눠야 하는데요 .
한국에 왔다가 곧 떠나야 하니
제 마음이 글로 슬프게 표현 되네요.
편안히 주무세요 .
@아녜스 허걱. 서울역에서의 데이트는 기약없는 이별 속으로~~
머리속으로 일정이 없나. 내일이라도 달려가야지, 덕분에 서울 북한산도 다녀올까? 온갖 궁리 중이 였구만.ㅎ
일정이 그러시다면 이해해 드려야죠.
아쉽지만 부담없이 늘 글로써 뵈어요.
편히 지내시다 가세요.
지금 이곳은 대한민국 입니까?
언제 한국에 오셨어요?
충성
잠시 한국 나왔는데 곧 돌아가야 합니다 .
저도 충성 !!!
아녜스님~
한 번 불러보고 싶네요.
오빠와 함께 있는 모습이
괜히 예뻐 보이네요.
어린 시절, 남매가 함께 있는 모습이나
중년을 넘어가는 고개에 있는 남매의 모습이나
어디가 다를까요.
아마도, 엄마를 그리는 두 마음이 합쳐져,
더욱 아끼고 애틋한 혈육의 정이 도타울 것 같아요.
느낌에, 한국에 오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오시면 오신대로, 편안한 마음으로 수필방에 자주 오셔요.^^
한국에 와서 정신 없이 바쁘게 지냈습니다.
수필방에 흔적도 못 남겼네요 .
오빠들이랑 나이 차가 많이나서 저를 항상
어린아이로 생각합니다.
아직도 걱정을 많이 하지요 .
이번에도 못 뵙고 가지만
기회가 오겠지요 .
감사 합니다 .
작은 오빠께서
70대인데도
오래 전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눈물 흘리시는군요.
나이들어도
어린 시절의 어머니는
늘 그리운 모습입니다.
지난번 글은
서울역
그렇지만 오래 전
추억이 깃든 곳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 글은
요사이 일을
쓰셨는데
아녜스님께서는
캘리포니아가 아니고
서울에 와 계시는군요.
밤낮 기온차 심한
한국에서
감기라도
걸리지 마시고
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한국 방문을 앞두고 있으니
서울역 추억이 많이 떠 올라 마음이
아팠습니다 .
반기고 기다려 줄 벗은 이 세상에
없으니까요 .
그벗은 올 2월에 떠났습니다.
추억이 어직도 생생합니다 .
건강 염려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 - 그리고
우리 엄마는 누구보다도 헌신적인
자식 사랑이 깊으셨는데 너무 일찍
50초반에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아녜스 한국에 오셨다
가셨군요.
늘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혜전2 아니요.
한국에 나와 있습니다.
다음주에 돌아 갑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4.10.12 08:22
한 배에서 태어나 한 평생 남매 인연으로 살아가는 오빠•동생 인연.
일찍 떠나신 엄마를 그리며 눈물 짓는
그 인연이 참 애틋하고 사랑스럽게 보입니다.
오라버니께서 별이 되시겠다니,
그저께 밤에 밤하늘이 맑아 찍은
폰사진에 제 어릴 때 삼형제별이라고
부르던 별이 잡혀 잘 보일지 모르지만 보내 드립니다. 미리 오빠별 한번 찾아보세요. ㅎ
사진을 넓여서 보니 별이 보이네요.
오빠별 옆에 잘 보이지 않지만 제 별도
있네요 .ㅎㅎ
오빠와 여동생의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으로 와닿습니다.
형제와 자매는
부모님과 함께 했던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죠.
20년 전 큰오빠가 돌아가셨을때
전 때어나서 그렇게 많이
울어 본 적이 없었답니다.
요즘은 전동쪽 지나가면
아녜스님 생각이 나곤 합니다.
아녜스님 고향이 여기구나
생각하죠.
고운 글 잘 읽었습니다.
20년전에 그런일이 겪으셨군요.ㅠㅠ
전동이란 시골 면소재지를 함께 이야기 할 수있는
이베리아님과 저도 특별한 인연이라 생각해요.
고맙습니다.
남매간의 우애가 참 아름답습니다
읽다보니 저도 눈물이 납니다
40여년전에 하늘의 별이되셨다는 어머니
곧 하늘의 별이 될거라는 오라버니
시기는 다르겠지만 우리모두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이되겠지요
제가 자매가 없고 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오빠들이 저를 많이 챙기십니다 .
거기에 이국땅에서 홀로이다보니
그렇겠지요 .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별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공휴일 잘 보내세요 .
막내여동생의 손을 잡아본 기억이 거의 50년이 훨씬 넘은 것 같습니다.ㅜ
이제 같이 늙어 간다 하지만 아직도 두 살, 여섯 살 터울의 여동생들이 저는 애처럽습니다.
나이들어서도 손잡고 이야기 나눌 수 있슴이 너무 부럽습니다.^^
술에 취하신 오빠를 부축하느라
손을 잡아 드려야 했어요 .
그렇게 흔히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요.
마음으로 따스한 정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우애가 충분하다 생각 합니다 .
자주 연락하며 사는게 좋겠다고
생각 합니다 .
한편의 다큐
오누이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
잘 보고 갑니다
그런 해맑은 오빠와
그런 여동생이 있는 모습이
부럽기만 합니다
저는
여동생이 없거든요
오빠와의 사랑 이야기
계속 이어가세요
주위 사람들이 부러워 합니다 .
좋은 오빠들을 두었다고요 .
그러나 저는 동생에게 살가운 누나는
아닙니다 .
받을 줄만 알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홑샘님은 다정한 오빠이실텐데
아쉽습니다.
대신 많은분들께 정을 베푸시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음을 나눌 수있는 오빠가 있으니 아녜스 님은 이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 중에
한 분이세요.
오빠가 있으니 세상풍파 험란해도 괜시리 든든하고 그러신거죠^^
개인적으로 저는 오빠나 언니가 있는 님들이 가장 부러워요.
오랜만이예요 나무랑님 ,
그리고 아름 문학상 당선 축하드려요 .
제 욕심엔 더 큰상을 기대 했습니다만
수필방에 나무랑님은 자랑 이십니다.
오빠자랑 미안해요 ㅎㅎ
자랑 속에 아픔도 느끼셨죠?
글을 읽으면서 헌국적인 분위기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댓글들도 함께 읽어보니
지금 한국이시네요.
오빠들과 좋은 추억 도 많이 만들고
평안히 지내시다가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여동생들이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역시나
오빠들 입니다.
답글이 늦었습니다.
형제들과 멀리 사는게 아쉬움이 크지요 .
과감히 고국생활 하시는 무악산님이
부럽습니다.
이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어 맘이 바쁘네요 .
풍성한 가을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댓글 주신것을 늦게 알았습니다.
형제가 아무리 가까워도
저식만큼은 아닌것 같습니다.
나이 먹으면 자식이 보호자가 되어 주더군요 .
저는 자식들 곁에서
살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은 늘 이방인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