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비리 문제의 근원은 원전 마피아와 부패 매커니즘
미래경영연구소
연구원 함용식
1. 며칠전 또다시 원전이 중단되며 이 나라 원전의 총체적 문제 해결에 대한 목소리가 여기 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
본 사건은 원전에 쓰이는 냉각 작동 제어케이블 부품의 시험성적표가 위조된 서류 날조 및 불량 부품 납품 사건이었다. 문제가 된 제어케이블은 냉각을 위해 안전계통에 제어신호를 보내는 핵심 부품 중 하나로, 만약 원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 부품에 문제가 생겨 가열된 원자로를 냉각시키지 못하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같은 대재난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런 핵심 부품에서 조차 시험성적표 위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그 외 다른 원전 기자재 및 부품에 대한 부정부패 문제는 더욱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한 언론 사설은 이 문제를 두고 『한수원은 비리 복마전』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에 대해 미래경영연구소는 이미 수 년 전부터 비리 복마전으로 변해버린 한국 원전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해 왔다.
참고 : 1) 원전증설을 밀어 붙이는 숨겨진 이유들 (2011.12.26)
→ http://blog.naver.com/pjbjp24/110127391021
2) 고리원전 정전, 보안을 빙자한 부패 커넥션 다 까발리자 (2012.3.16)
→ http://blog.naver.com/pjbjp24/110134049993
3) 고리원전 재가동 결정한 『원자력 안전위원회』와 하인리히 법칙 (2012.7.9)
→ http://blog.naver.com/pjbjp24/110142322343
2. 이번 사건을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 보면 한국 원전 비리의 깊이와 넓이가 얼마나 심오하고 복잡한지 알 수 있다.
먼저 한국 원전 부품이 개발되고 납품되는 과정을 살펴보자.
<그림 1. 이번 시험성적표 조작 사건 관련 원전 납품 및 제보 과정>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위 그림의 과정 중에, 국내 시험기관 S사가 캐나다 시험기관이 보내온 시험성적서를 조작했다는 정도이다. 물론 문서 조작 자체도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이 문제는 뒤에 다시 언급하도록 한다. 그러나 아직 밝혀지지 않은 더 심각한 문제는 위 그림의 과정 이면에 있는 『원전 마피아』들이다.
한국에 원자력 공학과를 운영하는 대학은 9곳이며, 원전 운영, 감시 업무를 하는 고위 간부들은 주로 2~3개 명문대에서 나온다. 이들은 원자력이라는 지식과 인력의 희소성 때문에 거의 경쟁 없이 수십조원에 달하는 이권을 손아귀에 쥐고 흔들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 엄청난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사회 각 분야에 강력한 카르텔을 형성한다. 다시 말해, 이들 명문대 출신 소수의 원자력 엘리트들은 한수원, 한국전력기술, 제조업체, 시험기관은 물론 총리 직속 원자력 감시기관의 주요 요직들 까지도 전부 차지하여, 사실상 자기들끼리 다 해먹는 것이다. 이들이 바로 『원전 마피아』들이며, 이번 사건의 본질은 바로 이들에게 있다.
이러한 마피아 카르텔 구조 속에선, 뇌물과 봐주기가 판을 칠 뿐, 정직한 조사·감시 같은 것은 도저히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이와 관련, 작년 『원전부품 품질검증서 위조 사건』 직후 정부의 원자력 감시기관이 4만5천개 부품에 대해 전수조사를 벌였지만 비위를 발견하지 못한 사례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 역시 정부기관의 감사 과정에서 드러난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제보를 통해서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에 더해 한국의 원전 비리는 지난 MB정권을 거쳐오며 권력 핵심들이 이 막대한 노다지에 꼬여드는 모양새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UAE원전이며, 여기서 가지 치며 자라난 것이 국내의 원전 증설 계획이다. 원전 1기당 건설비용은 5조원안팎으로 추정되며 앞으로 20기에 가까운 원전이 추가 건설될 계획이므로 부대비용까지 합해 대략 100조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돈이 걸린 사업이 바로 원전이다. 이 노다지 사업에 권력 핵심까지 끼어들어 그 비리 판은 지난 정권 동안 몇 배로 커졌다. 이 부분에 대한 더 자세한 사항은 위에 링크한 『참고 1) 원전증설을 밀어 붙이는 숨겨진 이유들』을 참고하기 바란다.
3. 또한 본 사건은 지식과 인력의 희소성이라는 원전의 독특한 『비밀주의』에 기원하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는 일본이 먼저 경험하고 그 대가를 심각하게 치르고 있는 사안으로, 사실 우리나라는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밟아가고 있다.
일본의 원자력 석학 다카기 진자부로는 일본 원자력계의 부조리에 회의를 느끼고 반핵운동가로 돌아선 사람으로, 그는 자신의 저서 『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책에서 일본도 역시 예전부터 원자력계에 비밀주의가 팽패해왔다고 밝혔다. 이 비밀주의 문제는 처음엔 원자력 관련 데이터나 각종 사고를 은폐하는 데서 시작했지만, 나중엔 아예 데이터 자체를 수정하여 날조하는 일까지 저질러졌다고 했다. 또한 그는 은폐라는 것은 잘못을 덮어두려는 것으로 어떻게 보면 누구나 범할 수 있는 행위이지만(물론 이 또한 심각한 범법행위이다) 데이터 날조나 글귀 수정 같은 문제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했다. 즉 이 것은 부정부패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 완전히 무뎌진 것으로 『모럴헤저드』가 극으로 치달을 때 발생하는 현상인 것이다.
일본에서 일어난 데이터 조작 행위와 어제 밝혀진 우리나라의 원전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 행위를 보면, 그 위법 행위 자체는 물론, 여기까지 범법행위가 발전한 모럴헤저드 변화과정의 기가막힌 유사성에 소름이 끼칠 정도다. 한국도 작년 초에 고리원전의 단전 사고 은폐 사건이 있었고, 그 해 말부터 문서 조작 사건이 터지기 시작했다.
원전 마피아들은 『국가 보안 사안』이라는 이유를 들어 원전 부품에 대한 중요 정보를 모두 숨김으로 불량 가능 부품에 대한 감사를 피해가고, 이런 것을 제도적으로 가능케 만든 권력핵심들은 중간에서 납품 대금 중 일부를 떼어 가며, 원자력기관들과 제조납품 업체들은 학계, 언론계, 정계에 갖은 로비를 벌인다. 이로 인해 학자들은 양심을 버리고 원전의 위험성에 눈을 돌리며, 원자력관련 진흥 단체들은 원자력에 호의적인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홍보활동을 벌이고, 언론도 역시 이런 움직임에 적극 호응해 주며, 권력 핵심들은 원전관련 주요 기관들에 자기 사람들을 심어둔다. 이 것이 바로 원전마피아-권력핵심-원전대기업-이들에게 돈을 받은 학계/언론계들이 만들어 내는 부패 커넥션이며 부정부패 매커니즘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위에서는 권력 핵심들이 큰 돈을 떼어 먹고, 아래에서는 말단 직원들까지 잔 돈을 빼먹으려 눈에 불을 켜기 때문에, 납품조달 업체들은 제조 원가를 낮출 수 밖에 없고, 이러한 결과로 며칠전 제어케이블과 같은 불량품들이 원전을 가득 채우게 된다. 위 아래가 모두 썩었다.
4. 이제 우리는 며칠전 일어난 원전 사건을 좀 더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
지난 정권 말기에 원전 비리 수사가 벌어진 것은 사실 꼬리 자르기였다. 이 문제를 우리는 전면 재수사 하여 그 뿌리를 뽑아내야 한다. 이 부정부패 매커니즘에 속한 원전 마피아들과 권력 핵심과 업계 관련자들이 해 마다 챙겨가는 수조원의 돈, 이 돈은 모두 국민의 세금으로 원전 비리의 최종적인 피해자는 국민들이다. 따라서 정 총리는 내일 발표한다는 대국민 담화문을 조금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무슨 뜻이냐면, 국민 절전운동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원전 마피아를 비롯한 본 원전 비리의 근원을 뿌리 뽑기 위한 전면 재수사를 할 것이라고 정부의 의지를 먼저 밝힌 후, 올 여름 닥쳐올 전력난을 위해 국민적 양해를 구한다고 말해야 좀 더 이치에도 맞고 좀 더 높은 국민의 지지속에 절전운동도 벌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 오늘 검찰이 본 시험 성적서 위조 사건이 터진지 불과 이틀만에 관련 업체를 전격 압수수색 했다는 소식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작은 사건들이 발생함으로 그 대형 사고에 대한 전조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수 년 전부터 문제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 이 나라 원전 문제들을 우리는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함을 한 단어로 정확히 축약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문제는 돈 보다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이 관련된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