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피지법(相避之法)
相 : 서로 상
避 : 피할 피
之 : 의조사 지
法 : 법 법
관직에서 가까운 친척은 서로 피하는 법이다.
1548년 음력 1월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이
충청도 단양군수(丹陽郡守)로 나갔다.
임기를 채우기도 전인 10월에 갑자기
경상도 풍기군수(豊基郡守)로 옮겼다.
왜? 자기 형님인 온계(溫溪) 이해(李瀣)가
충청도 관찰사에 임명됐기 때문이다.
형이 관찰사로 있는 도에 그 아우가 고을원으로
재직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기 때문이다.
퇴계 선생만 그런 것이 아니고,
모든 관원들 사이에 서로
이해관계가 발생할 수 있는 관계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제도가 있었다.
바로 '상피법(相避法)'이다.
형제뿐만 아니라 친족 4촌까지 외가,
처가까지도 다 고려해, 같은 부서나
영향을 줄 수 있는 부서에 같이 근무할 수 없게 했다.
관직만 그런 것이 아니라,
과거시험의 응시자 가운데
자기 아들이나 조카 등 가까운 친척이 응시하면
시험관이 될 수 없었다.
만약 사전에 신고해 피하지 않으면 나중에 처벌 받는다.
인재 추천도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은 할 수 없게 돼 있다.
재판도 피고와 관계있는 사람은 담당할 수 없었다.
이 모두가 이해관계와 권력의 편중을 막으려는 것으로
정치를 공정하게 합리적으로 하려는 노력이었다.
이 상피제도는 고려시대부터 있었고
조선왕조에서는 더욱 강화해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상세하게 그 규정을 명시했다.
"조선 말기에 가면,
안동김씨(安東金氏) 등등의
집안에서는 형제가 동시대에 정승을 맡고
한 집안 사람들이 조정에 가득했는데,
상피제도가 정말 시행됐다고 할 수 있습니까?"라고
반문하는 분이 있을 것이다.
상피제도가 너무 엄격하자 꼭 쓰일 만한 인재인데도
쓰이지 못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정조(正祖) 임금 때부터
상피제도를 상당히 완화시켰다.
순조(純祖) 임금 때부터는 이 제도가 점점 허물어져
세도정치(勢道政治)가 등장하게 됐고 나라를 망치게 됐다.
가까운 친척끼리 뭉치면 권력과 이익을 독점하게 되고
공정한 평가와 비판이 있을 수 없게 된다.
역대 대통령들이 동향 사람, 측근, 친인척 등을
요직에 앉힌 경우가 많았다.
인재 선발에는 그 사람의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해
가장 적절한 자리에 앉히는 것이 중요한데,
이런 식으로 하면 공정하게 인사가 될 수 없다.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