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스무 살 꽃처녀가 된 칠순 할매의 빛나는 전성기가 시작된다.
아들 자랑이 유일한 낙인 욕쟁이 칠순 할매 오말순은 어느 날, 가족들이 자신을 요양원으로 독립(?)시키려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알게 된다. 뒤숭숭한 마음을 안고 밤길을 방황하던 할매 말순은 오묘한 불빛에 이끌려 ‘청춘 사진관’으로 들어간다. 난생처음 곱게 꽃단장을 하고 영정사진을 찍고 나오는 길, 그녀는 버스 차창 밖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오드리 헵번처럼 뽀얀 피부, 날렵한 몸매… 주름진 할매에서 탱탱한 꽃처녀의 몸으로 돌아간 것.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자신의 젊은 모습에 그녀는 스무 살 ‘오두리’가 되어 빛나는 전성기를 즐겨 보기로 마음을 먹는다.
<느낀 점>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엔 너무 아깝다."
아일랜드의 극작가 겸 소설가이자 비평가, 사회주의자로 192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이다. 젊을 땐 젊음이 귀중한 줄 모른다는 뜻으로 늙어서야 젊음이 중요한 줄 알게 된다는 젊음의 훌륭한 가치를 역설한 문장이다. 학생 때는 어른이 되고 싶고 어른들은 학생이었던 때를 그리워한다. 참 모순적이다. 많은 사람들은 늙음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모두는 늙는다. 영화 초반에 반현철 역의 성동일이 학생들을 앞에 두고 강의하는 장면이 나온다. 성동일이 노인에 대해 떠오르는 단어를 말해보라고 하자 학생들의 입에서는 주름, 검버섯, 탑골공원 등 대부분 부정적인 단어들이 나온다.
늙음은 부정적인가. 영화 은교의 명대사 중 하나인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처럼 늙음은 젊은이들에게 두렵고 갖기 싫은 것, 잘못으로 받아들여진다. 늙음은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늙음으로 얻는 경험과 지혜는 젊은이들은 결코 가질 수 없는 값진 것이다. 어찌 보면 젊음과 늙음은 반의어가 아니다. 젊음과 늙음은 상호적이다. 젊음이 있기에 늙음이 있고 늙음이 있기에 젊음이 소중하다. 그렇기에 늙음을 두려워하는데 시간을 쓰는 것은 아깝다. 무엇이 젊음이고 무엇이 늙음인가. 나이는 상대적이라 십 대와 있으면 흔히 청춘이라 불리는 이삼십 대도 늙음이고 지천명이라 불리는 오십 대도 환갑인 육십 대 앞에서는 젊음이다.
결국 젊음과 늙음을 따지는 것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현재를 잘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후회 없는 지금을 보내는 것, 후회되는 일은 되돌릴 수 없으니 적당히 후회할 것, 과거의 내 모습에서 개선점을 찾아 미래의 나에게 적용할 것, 후회를 발판으로 더 성장하는 것. 늙음을 두려워하고 젊음을 그리워하는데 많은 시간을 쓰기엔 우리의 삶은 짧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고 현재를 잘 살아내야겠다는 생각을 더욱더 하게 되었다.
첫댓글 "젊음"은 문화, 예술, 철학의 오랜 주제였습니다. 그런데 "젊음과 늙음을 따지는 것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현재를 잘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다소 교훈적인 결론에 이르렀네요. 젊은 시절 형편이 어려워서 삶에 찌들어 살았던 노인에게 꽃다운 이팔 청춘으로 돌아가는 기적이 생겼을 때, 바라던 것을 하게 되고 인기를 얻습니다. 하지만 손자가 사고를 당하면서 자신의 새로운 젊음과 손자의 생명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자신을 어머니로 알아차린 아들은 엄마에게 자신의 삶을 살라고 호소하지만, 어머니는 자식의 어머니, 손자의 할머니로 돌아가겠다고 말합니다. 이 영화의 가장 애틋하면서 철학적인 선택은 바로 이 장면에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것이 다소 교훈적이라고 할 지라도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