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수사권 이어 국정원 조사권도 없애려는 ‘운동권 의원들’
중앙일보
입력 2024.07.05 00:51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인천시 남동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제70주년 기념식'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올바른 역사관, 책임 있는 국가관, 확고한 안보관을 바로 세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윤 대통령 뒷편에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한동훈, 원희룡, 나경원 후보가 보인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민주당 의원 17명, '국정원 무력화' 개정안 발의
북한의 대남 위협 고조에 대통령 거부권 검토를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을 경찰청에 넘긴 민주당이 이번엔 국정원의 안보 범죄 조사권까지 박탈하는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북한의 위협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나온 ‘국정원 무력화’ 시도다.
그제 민주당 이기헌 의원 등 17명은 인권침해를 막겠다며 국정원법 개정에 착수했다. 핵심은 국정원의 조사권 박탈과 수집 정보의 신원조회 활용 금지다. 국정원이 내란죄·외환죄·국보법위반죄·군사기밀보호법위반죄 등 안보 범죄에 관한 정보 업무 수행을 위해 다른 국가기관에 대해 사실의 조회·확인, 자료의 제출 등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법 5조 1항)을 삭제했다. 국정원이 현장 조사, 문서 열람, 시료 채취, 자료 제출 요구 및 진술 요청 등의 방식으로 조사할 수 있는 조사권(5조 2, 4항)도 없앴다.
특히 국정원이 수집한 정보를 신원조회를 위해 활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4조 5항)을 신설했다. 국가기밀 접근 권한이 있는 3급 이상 고위 공무원을 임용할 때 해 온 신원조회조차 막겠다는 것이다. 검증받지 않은 사람에게 국가기밀 자유 접근권을 주겠다는 괴이한 발상이다. 개정안 발의에 참여한 의원 17명 중 11명은 학생운동권 출신이다. 그중에는 국가보안법과 집시법을 위반해 처벌받은 전력들이 있다. 운동권 정치인들이 무리한 입법으로 한풀이하려는 게 아닌지 의구심을 감출 수 없다.
앞서 민주당은 여당 시절이던 2020년 12월 국정원법을 일방적으로 개정해 수사권을 경찰청으로 이관했다. 당시 3년의 유예기간을 뒀기에 지난 1월부터 개정법이 시행됐으나, 권한을 넘겨받은 경찰청의 간첩 수사는 개점휴업 상태라 할 정도로 성과가 없다. 국내외를 고도로 연계해야 하는 대공 수사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국정원이 아닌 경찰의 역량으론 한계가 있을 거란 우려가 현실이 된 셈이다.
북한은 지난 1월 남북관계를 ‘교전 중인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대남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핵미사일 고도화뿐 아니라 오물 풍선 살포, 사이버 해킹, 가짜뉴스 유포 등 북한의 회색지대 도발에 맞서 대공 기능을 강화해도 부족한 마당에 국정원의 힘을 빼는 ‘입법 역주행’은 극히 우려스럽다.
민주당이 2020년에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을 박탈한 것은 매우 무리한 입법이었다. 그런데 175석을 보유한 민주당이 여당의 반대에도 일사천리로 국정원법 개정안을 처리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이 시점에 누구를 위해 국정원법 개악을 밀어붙이려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어제 자유총연맹 창립 70주년 기념식에서 “올바른 역사관, 책임 있는 국가관, 확고한 안보관을 바로 세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한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원법 개정안의 심각성을 고려, 단호히 거부권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