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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임금님의 고상한 취향 책가도(冊架圖)
‘어찌 경들이 진짜 책이라고 생각하겠는가? 책이 아니라 그림일 뿐이다. 예전에 정자(程子)가 이르기를, 비록 책은 읽을 수 없다 하더라도 서실에 들어가 책을 어루만지면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나는 이 말의 의미를 이 그림을 통해 알게 되었다. 책 끝의 표제는 모두 내가 평소 좋아하는 경사자집(經史子集)을 썼고 제자백가 중에서 오직 장자(莊子)만을 썼다.’ _홍재전서
정조가 어좌 뒤에 병풍으로 책가도를 두고 신하들에게 자랑한 일화긔.
하지만 제자백가 중에 장자만 선택한 거 보셨죠?
즉 정조는 책가도에 그려넣을 책의 종류와 제목까지 정해서 화가에게 주문한거긔.
취향 진짜 까다로운 인간이긔.

장한종 그림, 경기도박물관 소장
쌍 희(囍)자를 수놓은 휘장을 걷어보니 책이 이렇게 많긔.
잘 보면 오른쪽 하단에 슬쩍 문 열어놓은 부분 보이시긔?
책장 문 안에도 책이 가득 있다고 자랑하는 거라긔.
그리고 또 하나의 포인트는

빨간 네모 안에 글자 보이시긔?
'장한종인'이라고 그린 사람이 누군지 표시했긔.
조선시대 궁중에서 일하는 화가는 대놓고 인장을 찍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이랬다는데
화가 인장이 있으면 경매할 때 가격이 확 올라가긔.

정조가 주인공인 영화 ‘역린’에서 책가도
아무튼 정조가 얼마나 책가도를 사랑했냐면
정조는 녹취재(차비대령화원들이 보는 시험)에 과제를 내긔.
정조: 자유롭게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려라
하지만 여기서 두 명의 화원(신한평, 이종현)이 귀양을 가긔.

“화원 신한평(신윤복의 아버지)과 이종현 등은 각자 원하는 것을 그려 내라는 명이 있었으면 책거리(冊巨里)를 마땅히 그려내야 하거늘, 모두 되지도 않은 다른 그림을 그려내 실로 해괴하니 함께 먼 곳으로 귀양 보내라.” _내각일력
???: 임금님 아까 자유롭게 그리라고 하셨잖아요?

화가 여러분 귀양도 인생의 좋은 경험이긔.
사실 두 명은 사회생활을 못했는지 눈치가 없었긔.
다른 화가들은 정조가 좋아하는 책가도 그렸다긔.

표피장막책가도, 리움미술관 소장
이건 보는 사람의 상상력을 더욱 자극하긔.
보이지 않는 호피 장막 뒤에는 얼마나 더 많은 책과 물건들이 있을까요?
자세히 보니까 펼쳐진 책 위에 안경이 있긔.
한양대학교 정민 교수는 이 그림을 보다가 놀라운 발견을 했었긔.
그림 속 책에는 자하산인 / 다창=정약용의 호가 있었고
이건 그동안 공개된 적 없는 정약용의 시 두 수였긔!

흔들흔들 나무 집은 원래 속세 벗어났고
둥실둥실 뗏목 정자 내 몸을 부칠 만해
모두들 남방은 살기 좋다 말하더니
술 익고 생선 살져 또 서로를 부르누나
이 놀라운 발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기사 참고하시긔.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3/17/0200000000AKR20170317169600005.HTML?input=1195m

이응록 그림, 경산시립박물관
(이응록은 아까 귀양간 이종현의 손자)
근데 책가도에 책말고 자꾸 다른 물건들이 보이긔.
왜냐면 청나라에 다보각경 다보격경이라고 하는 장식장 문화가 있었긔.
보는 저도 갖고 싶은데 그당시의 사람들은 어땠을까요?


청나라 목가구, 경기도박물관 소장
영조-정조는 사치스러운 풍조를 지적하고 소박한 생활 방식을 지향했으므로
(완물상지: 물건을 갖고 놀기를 좋아하면 마음을 잃는다)
사람들은 갖고 싶어서 침만 꼴깍꼴깍 삼키다가 그림으로 한을 풀긔.
그래서 정조의 책가도는 '책'만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책가도에 꽃, 도자기, 장난감 등등 다양한 물건이 등장하긔.


책가도,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책가도의 수요는 많은데 하나 하나 그리기는 힘들었긔.
그래서 이렇게 밑그림을 그린 후 문양을 간단하게 그리고
각 부분마다 들어가야 할 색채명과 기법을 함께 적어놓고 화가들이 따라했긔.
엥? 이거 완전 요즘 하는 명화그리기DIY 아니냐? ㅋㅋㅋㅋㅋㅋㅋ
Q. 판화로 찍어내면 많이 만들 수 있지 않긔?
A. 당시 사람들은 판화는 싸구려라고 생각해서 청, 일본과 달리 상대안했긔.

위에서 제가 보여드린 6폭, 8폭 이런 병풍은 존나 잘 살아야 가질 수 있긔.
병풍 사이즈가 크다=집 사이즈도 크다
그래서 그냥저냥 사는 서민들은 주로 1폭짜리 책가도를 가졌는데
아래 보이는 돌잔치 사진을 보시긔.

책거리 병풍으로 장식한 평양지역의 돌잔치 사진
옴맴매? 저게 몇 폭이여?
쟤 금수저가 틀림없긔..
첫댓글 정조 그렇게 안 봤는데 사람이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