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진 낯섦
2019년부터 시작되었던 코로나는 어느새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다. 우리는 코로나 이후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코로나가 생기고 만나게 된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모르고 지내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코로나 전부터 얼굴을 알고 지내던 사람들도 오랜 시간 마스크 쓴 모습에 익숙해져 원래의 얼굴을 보는 것을 어색해하는 모습도 자주 보인다. 마스크를 쓰게 되면서 얼굴의 일부만을 드러내게 되자 자신의 얼굴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친한 사이임에도 점점 얼굴을 드러내기를 꺼려했고, 동생의 말에 따르면 얼굴을 보이기 싫어 급식을 먹지 않는 학생들도 있다고 하였다. 나는 이 상황을 보며 코로나가 우리에게서 익숙하고 당연했던 것들을 앗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생각에 동감할 것이다. 코로나 이후 우리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닌 집에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었고, 당연히 학교 행사는 사라졌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선생님들이 코로나 때문에 우리 학교에서 하던 체육대회 전통이 사라지게 되었다고 슬퍼하시기도 했었다. 코로나로 인해 거리두기라는 것이 생겨나고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다. 코로나는 우리 모두에게 불안감을 안겨줬고, 한 번 생긴 불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은 야외 마스크가 해제되었는데, 오랜 시간 마스크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길거리에서 마스크를 벗고 있는 사람들이 어색했고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떨어져 걷기도 하였다. 코로나로 인한 상황이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해졌는데 반대로 너무나 당연했던 것들이 낯설어졌다. 그래서 이 상황이 익숙한 낯섦이라는 주제를 들었을 때 바로 생각났었다. 이번 축제 때 더 크게 느낄 수 있었다. 축제를 즐기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운동장에 모여 음식을 먹고 떼창을 하며 놀았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한 것이 오랜만이라 즐거우면서도 어색했었던 기억이 있다. 몇 년 만에 우리는 다시 예전에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마스크에서, 또 답답한 거리두기에서의 약간의 해방을 맛보고 있는데, 얼른 이 상황이 해결되어서 예전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첫댓글 낯설었던 것이 익숙하게 느껴지면, 그 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또 낯선 감정이 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기"는 모든 것이 변화해가는 과정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편안하게 제자리에 있는 익숙한 일상을 전제로 합니다. 이 익숙한 일상 때문에 모든 것이 내가 인식하는 대로, 기억하는 대로 있어서 관심을 두지 않게 된답니다. 그래서 아무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서 주변에 있는 것들을 모두 소외시키고, 왜곡시키는 문제가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철학하기의 첫 출발점이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기"라고 말하는 것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