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핑 돌았다.
도대체 이 머리로 내일 학교에 어떻게 가라고...
분명히 스포츠머리로 깎아 달라고 말했었다.
이발사 아저씨가 바리깡을 들고 올 때도 뒷머리를 깎으시려나 보다 했었다.
바리깡을 앞머리에 댈 때도 설마 했는데...
스캉스캉~ 앞머리 중간에 고속도로가 생긴 후에야 놀란 내 눈이 튀어나왔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벌어진 아저씨의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아뿔싸!
머리카락은 이미 잘려나간 다음이고...
난처한 아저씨는 오히려 내 속을 뒤집었다.
"말을 하지. 이 일을 우짜냐..."
".........."
기가 막힌 내야 눈물만 핑 돌고,
"할 수 없다. 미안한데... 그냥 이부로 깎자. 내 반값만 받으께."
국민학교 6학년. 사춘기가 일찍 온 나에게 이런 시련이 닥치다니...
아저씨는 나이에 비해 숙성해 보였던 나를 중학생으로 착각하셨던가 보았다.
이발소를 나올 때 슬쩍 거울에 비쳐본 내 모습.
'아... 괜히 봤네.' 머리를 쥐어박았다.
집에 오니 저녁 두리상 앞에 둘러앉은 식구들이 빡빡머리가 되어 돌아온 나를 보곤 내 상처받은 속도 모르고 한바탕 크게 웃으며 교양 없는 말들로 날 놀려댔다.
"어! 중님이 우리 집엔 무슨 일로 오셨는고... ㅎㅎㅎ"
내 가슴 미어지고,
"야~ 익이는 빡빡머리라도 이뿌네... ㅎㅎㅎ"
더욱 미어지고,
"스님 배고플 낀데 얼른 와서 식사하이소... ㅎㅎㅎ"
가슴 찢어지고,
"그놈이 미쳤나~ 아 인물을 배리 놨네... ㅎㅎㅎ" 눈물 나는데, 내 머리를 만져보던 큰형
"아 맨들맨들하다~ ㅎㅎㅎ"
뒤통수를 한대 딱 치며,
"마수다! ㅎㅎㅎ"
나는 방바닥에 쓰러져서 식구들 밥 다 먹을 때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날 학교를 가니 반 아이들이 뒤집어졌다.
나로 인해 행복해하는 거야 반가운 일이지만 내 속은 많이 쓰라렸다.
친구들이 '중대가리~ 빡빡머리~' 노래를 지어 불렀다.
으... 웬수들.
"야~ 참 시원해 보인다. 얼마 주고 깎았노?"
구세주 같은 한 친구 다가왔다.
"나도 그래 깎을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보기 좋네."
그다음 날 그 친구는 정말 빡빡머리가 되어 나타났고, 중학생이 되기 전에 예행연습한다고 드문드문 빡빡머리 친구들이 늘어났다. 그 일로 우린 아주 친한 빡빡머리 친구들이 되었지만, 본의 아닌 개척자였던 나는 중학생이 될 때까지 빡빡머리 트리우마에 시달리며 살았다.
앞선 글에서 수길이란 친구의 빡빡머리를 떠올리다가 내 빡빡머리 추억이 떠올라 옛 추억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그땐 그 일로 두상이 이쁘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었는데... ㅎㅎ
첫댓글 108계단을 올라 해방촌 아래 숭실고등학교 옆 공터에 판자로 된 작은 집이 있었고
그 안에는 인자 하신 코 빨간 아저씨가 머리를 깎아주고 계셨습니다.
한 달에 한 번은 아닌듯하고 그저 스포츠머리가 보기 싫어질 즈음에 그 곳에 가서
머리를 깎던 기억이 납니다.^^
두상이 예쁘시다니 그 것도 부럽습니다. ㅎ
예전엔 집 마당에서 깎아주시는 분들도 계셨고, 이발소 싸인 빙빙 돌아가는 곳에서는 신성일 남궁원 최무룡 사진 걸어놓고 이발해주던 기억이 납니다. ㅎ
그 땐 웬만하면 짧은 머리였죠.
저도 긴 머리 단발로 자르라고 하는 엄마 피해 도망 다닌 기억 있어요.
요즘은 까까머리 볼 수가 없죠.
오빠나 동생 머리 만지며 중대가리~~로 놀린적 있죠. ㅎㅎ
늘 추억을 재밌게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ㅎㅎ 그 머리 보면 누구나 놀려먹고 싶어지는가 봅니다. ㅎㅎ
두상이 동그랗고 예쁘신것 같습니다
우리 어린시절엔 초등학교때도 빡빡깍는 애들이 있었고
도장밥이라하여 머리 여기저기 바리깡으로 뜯긴채 다니는
애들도 있었지요
초등때는 상고머리를 하다가 중학교때는 빡빡
고등학교때는 스포츠로 바뀌었습니다
그때는 뒷머리가 평평해야 이쁘다 했습니다. ㅎㅎ 요즘은 낙제 두상이지요.
그시절엔 남학생이면,
누구나 빡빡 머리였던 것 같습니다.
여학생들은 단발머리, 갈래머리,
학교마다 다르긴 해도 머리길이에 대해선,
엄격하였답니다.
여학교 졸업한지 60여년이 되어가지만,
양갈래머리, 그때 그시절이 그리운 시절이지요.
오늘은 재경 총동창회에서 즐기고 왔지만,
뭐니 뭐니해도 부모님 슬하에서 교복 입던 시절이
순수하고 꿈많던 시절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빡빡머리의 기억이 교복입던 시절이라,
그만 엉뚱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일년에 한 번, 교가를 불러보는 날이지요.^^
제 큰누나도 고교시절 양갈래 머리 했을 때가 가장 예뻤습니다.
그때의 누나 사진이 하나 있어 가끔 큰누나 보고싶을 때 써내 봅니다. ㅎ
애~궁 얼마나 열받았음 식구들 밥 다먹을
때까지 방바닥에 쓰러져있었을까요^^
근데말예요 까까머리 소년이 삐져서
방바닥에 쓰러져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넘나 귀여워요.ㅎ
귀염둥이 막둥이한테 이발소 사장님
넘 했어요.
ㅎㅎ 저도 그 모습이 더 웃겼을 거 같습니다. 어머니도 저만큼이나 속상해 해주셨어요. ㅎ
미리 중학생 예비생이 되었으니 잘 된 셈 아닌가요?ㅎㅎ
훗날 돌아보니 그런데...
그때는 심각했습니다요. ㅎㅎ
@마음자리 그 억울함 나도 경험해봐서 알아요. 다시 붙일 수도 없고ㅠㅠ
@푸른비3 여성분들은 더 심각한 일인데요... ㅎㅎ
마음 따뜻한 글.
새벽 기온이 많이 내려갔는데
마음자리 님의 글이 마음을
덥혀주네요.
두리상에 모여 앉아 식사하는
가족들.
빡뻑머리하고 나타 난 막내에게
한 마디씩 하는 맨트도
따뜻하고 정겹습니다.
그저께
사위가 손자 머리에 바리깡을 대고
웽하는데 수식간에 머리카락이
많이 잘려 나갔더군요.
더 이상 잘랐다면
어린이집에도 못 갈 뻔 했답니다.ㅎ
마음자리 님, 글 잘 읽었습니다.
고운 댓글에 제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ㅎ
바리깡 아마추어가 어슬프게 손대면
큰일 납니다. ㅎ
스님하는 친구놈 평소 왈, 성공하는 스님의 조건이
빡빡 민 두상의 뒷모습이 이뻐야하고 초성이 좋아야
한다고 우스개를 하는데 만약에 마음자리님이 먹물옷
을 입었다면 세상에 마음 몹시 상한 중생들을 위로
하는 귀한 글과 삶의 저 깊은 본성을 일깨우는 말씀
으로 큰 스님이 되셨을 걸로 이 변방노부 감히 단언
하옵는 바..
심히 공감이 가는 말씀입니다. ㅎ
먹물옷 한번 입어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길 떠돌며 사는 것이 저는
더 좋습니다. ㅎ
이제 가을이니 구봉님 글도 자주
읽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