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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들 타로는 그림이 그리 아름답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너무 많은 것들이 뒤섞여 있어서 거부감이 들 수도 있습니다
특히 듣도 보도 못한 룬 문자와 히브리어가 메이저 카드에 나오고
마이너 카드는 형식이 옛날 마르세이유와 같이 되돌아갔는데
거기에 주역괘가 등장하고 궁정카드는 그 틀이 완전히 변경되었습니다
사용하기에 리더의 깊이가 중요한 타로 중의 하나입니다
점성학과 주역, 타로, 수비학, 카발라, 신화를 모두 알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부분 부분 뜯어 보아도 서로 백프로 일치하지도 않습니다
심지어는 서로 반대되는 의미도 있습니다
하인들 타로의 기반은 크로울리 덱입니다
의외로 점술로만 보더라도 대단히 정확하고 깊은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여성주의와 동서양의 화합, 영지주의가 베여있습니다
하인들 타로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당부하고 싶은 것은,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길 부탁드린다. 그리고 여기 이곳의 이 짧은 글들에서 답을 찾으려고 하지 않기를 당부드린다. 타로 카드는 특히 하인들 타로는 정해져있는 의미를 사용한 확률적인 퍼즐이 아니다. 이런 저런 가능성의 나열을 통해서 내가 필요한 것과 위안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모든 것이 마찬가지겠지만, 의미와 깊이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모든 것이 사랑으로 가득하고, 실연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이별 이야기이고 온 세상이 슬픔에 가득 차 있다. 영적인 사람은 세상의 모든 것을 신과 연결짓고 신의 목소리가 세상에 가득하다. 깊이는 타로 카드가 아닌 나의 삶의 경험에서, 순간의 직관을 읽는 눈과 저 깊은 무의식으로부터 온다. 물론 카드마다 정해진 키워드와 히브리어와 룬 문자의 뜻, 점성학적인 의미, 수비학적인 혹은 카발라적인 의미들을 사용해서 리딩한다 해도 전혀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다만 나의 앞에 드러난 무의식 혹은 신의 목소리와 언제나 존재하는 자유의지, 지금 현재 나에게 필요한 것들과 내가 원하는 것들을 수용할 수 있는 진실성을 가지고 있는지 먼저 살펴보기를 권한다. 성경 속에도 그리스 신화와 인도 신화들 속에도 수많은 사례들이 있다. 신들은 필요할 때마다 주저 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우리에게 드러낸다. 몸을 입고 직접 나타나거나 혹은 친구의 목소리로 혹은 특정 사물로 혹은 필요나 운명 혹은 감정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속삭인다. 먼저 그런 속삭임에 귀 기울이기를 부탁드린다.
지식적인 측면에서 혹은 나의 앎을 가로막고 있는 무언가를 치우는 의미에서 카발라나 주역 혹은 요가나 철학 혹은 기하학이나 그림, 향도 많은 도움이 된다. 감히 단언하건데 타로의 깊이는 지식 이외의 것으로부터 온다. 각종 신화들 속에 녹아있는 사랑과 자유, 번민, 고통, 해방은 우리에게 제 3의 눈과 다름없는 눈을 선사한다. 히브리어와 산스크리트어는 언어적인 측면과는 별개의 의미가 있다. 우주를 본 따서 만든 언어들이기 때문에 그것을 발성하고 공명하는 것 자체로 나름의 힘이 있다. 당연히 언어의 도움 없이도 우주와 공명하는 것은 가능하다. 구도의 길에서 만약 벽에 가로막혔다면 거기서 잠시 중단하고 다른 곳에서 답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사실 답은 이미 있고 준비되어 있되 바로 거기에 있지 않거나 내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뿐이다. 애초에 답이란 없고 어느 순간 우리의 수용성이 넓어지면서 답으로 인정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인들 타로는 기존의 클래식 카드들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다소 획기적인 사상과 그림 때문에 불편할 소지도 있다. 하인들이 인디언 정화 움막에서 느낀 영들의 체험과 전쟁에서 죽음의 공포, 곳곳에 빛과 함께 어둡고 암울한 느낌들...우리는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 아름다운 것에 본능적으로 끌리고 균형과 조화에 더 끌린다. 그런 측면에서 불협화음과 불균형은 우리에게 미묘한 의미가 있다. 하인들은 화가로서 아름다운 그림을 충분히 그릴 능력이 있다. 컵 Ace 카드와 소드 Ace 카드, 소드 3 카드, 별 카드, 전차 카드, 정의 카드 등 정말 아름다운 카드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는 의도적으로 추상적이거나 불편하게 보이거나 불균형하게 보이는 그림을 그렸다. 우리는 마법사에서 재능있는 젊은 마법사와 마법 테이블 위에 따로 따로 구분되어 있고 잘 정리된 4 원소를 기대한다. 또한 고위 여사제는 어두운 곳에서 물러나 아무 행동도 하지 않듯이 정적을 기대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인들의 타로에서 마법사의 괴기스러운 머리와 고위 여사제의 정열적인 빛의 빗방울과 역동적인 흐름과 마주하게 된다. 몇몇 카드들은 확실히 하인들의 부인 에리카가 말했듯이, 명상이나 아스트랄 체험에서 가이드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이 있다.
하인들은 타로의 틀이 깨뜨려진 오라클 카드로 가기 직전의 여성주의 카드에 가깝다. 고대에는 지금보다 평화로운 모계 사회였고 다시 그런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자는 것이 베이스에 깔린 이야기이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이 지구를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어머니 가이야 여신으로 생각하자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녀를 별카드에서 보게 될 것이다. 심지어 레이첼 폴락은 하인들 타로를 7 번 전차카드와 12 번 매달린 사람 카드 그리고 17 번 별 카드 이렇게 3 장의 카드만으로 표현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황제는 여황제가 창조한다. 과거 여황제를 떠났던 황제(오딘)가 다시 여황제(가이야)에게 돌아오는 것이 핵심적인 주제이다.
하인들 타로는 단순히 점술을 위한 카드가 아니다. 은밀히 말해서 고대의 영성을 회복해서 세상의 좀 더 영적인 면을 바라보도록 돕는다. 물론 그 속에 여성주의라는 좀 더 알맹이가 들어있다. 인도 신화들과 뉴에이지 무브먼트가 아니더라도 황금시대와 은의 시대, 청동 시대, 철의 시대처럼 인류가 여러 단계들을 거쳐서 반복되는 진화과정을 거친다고 이야기한다. 헤시오도스는 우리들이 철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힘과 전쟁, 가부장적인 제도에 길들여진 지금보다 훨씬 오래 전에는 모계사회가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비록 인디언 문화나 고대 문명의 발자취를 좇아가다 보면 지금의 관점에서 미신적이거나 비과학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보다는 훨씬 더 평화롭고 평등하고 아름답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특히 인디언들의 구전되는 설화들과 인도 신화들은 정말 아름답다. 물론 그리스 로마 신화도 아름답다. 하지만, 라다와 크리슈나의 이야기, 인도의 수많은 신들의 이야기, 씨애틀 추장의 온화함과 인내력, 그들의 나누는 친절함, 그가 보여준 땅에 대한 사랑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하인들 타로 속에는 다소간 샤머니즘적인 측면과 연금술 그리고 영지주의적인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레이첼 폴락이 카발라적인 해설서들을 썼기도 했지만 그것은 하인들이 크롤리 덱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 모든 것들이 영적인 본질들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과학이 발달하면서 무시하고 도외시했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우리의 영혼과 맞닿아 있다. 비록 늦은 지금이라도 우리가 과학과 종교에 의해 단죄하고 도외시했던 영혼의 자취들 속에서 영혼의 목소리를 찾았으면 좋겠다. 언뜻 카발라와 영지주의, 연금술과 점성학 그리고 타로와 주역이 어울리지 않고 생뚱맞게 느껴지겠지만 하인들 타로 안에서 모두 하나가 되어 있다. 우리는 그저 그 안에서 즐겁게 즐기면 될 뿐이다.
보통 타로를 느끼는 방식은, 이성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과 직관적인 방식 두 가지의 접근 방식이 있다. 누군가는 여신들이나 천사의 힘을 빌리고 때로는 단순히 자연의 힘을 또 누군가는 그저 자신을 무의식에게 열어젖힌다. 좌우지간 자신의 이성적인 자아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서 해설하는 것을 흔히 ‘신점’(神占)이라고도 말한다. 하인들 타로의 그림과 상징들은 대단히 매혹적이다. 그것들 중에서 다수는 우리의 무의식에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보통 타로 리딩에서 이성적인 방식으로 해설에 임하는 경우에 다소 어려움을 느낀다. 애초에 타로가 직관에 의한 리딩이고 무의식과 의식을 서로 소통하게 도와주는 도구라면 당연히 비논리적이고 불균형하고 단면적이지 않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머리는 논리적이고 말이 되고 앞뒤가 맞아서 이해가 되는 스토리를 항상 추구하기 쉽다. 타로 리딩에서 논리적이고 쉽고 명확한 답만을 찾기보다 단순히 이중적이고 다면적인 나의 마음을 살피기를 원하면 하인들은 대단히 적절하다. 나의 무의식의 이야기를 의식으로 가져오기 위한 장치가 이렇게 다양한 타로는 흔치 않다. 굳이 모든 것을 알지 못하고 또 조금만 준비하고 익히더라도 충분히 나의 무의식을 살필 수 있다. 무엇보다 자신만의 철학을 그리고 진실성을 갖추면 풍성하고 명확하게 해석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그 와중에 점성학 기호와 룬 문자, 히브리어, 마이너 카드들 속의 주역은 모호한 타로의 속성에 구체성을 더해준다.
처음 하인들 타로가 나에게로 왔을 때, 카드의 그림도 좀 이상한 것 같고 너무 많은 것들을 뒤섞어 놓아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것들을 부분 부분 뜯어서 살펴보았지만 무언가 조금씩 달랐다. 그러나 나중에 전체로서 하인들 타로를 살펴보았을 때 비로소 크게 만족하게 되었다. 한 번 생각해보라. 눈이 보는 세상과 귀가 듣는 세상, 혀가 맛보는 세상과 발이 딛고 사는 세상이 어떻게 같을 수가 있는가? 룬 문자의 이야기와 히브리어의 이야기, 마이너 카드 하단의 테마와 주역의 괘, 카발라의 이야기가 어떻게 같을 수가 있는가? 당연히 서로 다르게 느끼는 것이 옳다. 하지만 처음 마이너 카드들을 보았을 때 대단히 삭막하고 참혹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조금 더 아름답고 균형잡힌 웨이트 덱에 길들여져 있었던 나로서는 마르세이유와 크롤리 덱의 마이너 카드들의 형식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마냥 불편하다고만 할 수 없는 어떤 무엇이 있었다. 특히 메이저 카드들 전체를 통해서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심지어 몇몇 카드들에서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하인들 타로는 그저 소설 속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명암이 있고 비극을 내포하고 있는 진짜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 현실감이 오히려 나에게는 친근하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하인들 타로 속에 빠지게 된 것에는 인물 카드들도 한 몫을 했다. 개인적으로 인도 신화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나는 마냥 성스럽고 거룩한 신들의 이야기들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차라리 제우스처럼 헤라의 눈치를 보면서 온갖 난동을 부리기도 하고 거지 몰골의 시바처럼 혹은 실수와 아쉬움 가득한 삶들을 우리와 공유하는 그런 이야기들이 사랑스럽다. 물론 그 안에는 인간들의 사랑과 아픔, 아쉬움, 후회가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신화를 인간들의 집단 무의식과 정신의 발달사라고 설명하고 누구는 지어낸 이야기라고 말할 것이다. 좋다. 그것이 무엇이라도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단지 나의 개인적인 취향이 나를 하인들 타로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인도 신화 속의 크리슈나와 라다, 인디언의 소박한 이야기, 추장 시애틀의 일화, 이집트 신화 속의 슬픈 주인공 이시스와 오시리스, 누트 여신과 티아멧트 신화, 나를 강렬히 매혹시켰던 파괴의 칼리 여신과 시바 신, 겁에 질린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있는 파르시팔... 나는 늘 궁정 카드들(Court Cards)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하지만, 하인들 타로에서 나는 기뻤다. 나는 하인들 타로에서의 궁정 카드들을 더 이상 '궁정 카드'라고 부르지 않는다. 직관, 감정, 사고, 감각이라는 네 가지 정해져있는 성격적인 특성과 성숙도가 정해져있는 궁정카드를 벗어나서 그것은 신화속의 하나의 오르내림이 있는 인생사를 가진 '인물 카드'라고 부른다.
클래식 타로들에서 ‘궁정 카드’란 시종, 기사, 여왕, 왕의 형태로 권력자 혹은 신의 구분되는 형태들로 생각한다. 궁정 카드를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개인 안의 성격적인 특성으로 살펴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것보다는 주변인의 영향력으로 옷을 입은 신의 손길로 보고 싶다. 과거의 궁정 카드에는 주변 사람들의 생사를 주관할 수 있는 권위와 힘이 내재되어 있었다. 왕과 여왕, 기사, 그들의 명령을 전하는 시종에게는 일반인들이 범접할 수 없는 강력한 영향력이 있었다. 그러나 타로 리딩에서 궁정 카드들은 해설이 어렵다. 보통은 궁정 카드들을 직관, 감정, 사고, 감각 등 인간의 삶속에서 주요한 네 가지 영역들의 특성이라고 간주하고 우리의 내면을 심리학적으로 살피고는 한다. 물론 이 방식도 문제될 것은 없다. 다만 우리가 신의 영향력을 언제부터인가 도외시하면서 거리감을 두게 되면서 신과 인간의 삶이, 성(聖)과 속(俗)이 별개가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고 싶다. 연금술과 신비주의 그리고 오컬트, 그것들을 차용했던 황금새벽회에 다음과 같은 격언이 있다. ‘셋’은 ‘넷’를 통해서 실현되고 완성된다. 세 개 한 세트(Trinity)는 결국 네 개 한 세트(Quanternity)에 의해서 완성되고 실현된다. 이것은 타로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아니 가장 중요한 원리이다. 특히 유대교의 신의 이름과 신의 속성에 대해서 말할 때 가장 중요하다. 무엇보다 사실 궁정 카드의 진정한 숨은 의미이기도 했다. 보헤미안 타로와 토트 타로, 카발라 타로를 비롯한 여러 비교(秘敎) 계통에서의 비밀 가르침이기도 하다.
왕(י)과 여왕(ה), 기사(ו)는 삼위일체인 한 몸이고 삼인조를 이루고 있다. 그것의 실현과 완성이 이뤄지는 곳은 현실의 문이자 두 번째 헤이인 시종(ה)에서 이다. 이것은 웨이트에 의해서 다소 인위적으로 왜곡되어 여성이 아닌 남성 시종으로 그려졌다. 원래 두 번째 헤이(ה)는 여성으로 사실은 여성의 몸 즉, 마리아이다. 기독교에서 마리아를 교회라고 상징적으로 그렸던 것은 깊은 의미가 담겨있다. 여성의 몸은 세 개 한 세트가 실현되는 장소이자 그것들을 단련하는 도가니이고 그 세 개 한 세트를 현실과 이어주는 가교이자 곧 실체이다. 하인들 타로의 궁정카드에는 어머니와 아버지 딸과 아들이라고 이름이 붙었다. 나는 인물 카드들이 너무 반갑고 그들을 사랑한다. 인물 카드들은 각자 나름의 삶의 굴곡과 아픔이 있고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책 한 권씩을 쓰고도 남음이 있다. 심지어 하인들 타로 해설서를 썼던 레이첼 폴락도 이 부분에 대해서 해설서를 누군가 꼭 다시 써달라고 말했다.
하인들 타로 속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또 다른 매력 하나는 균형과 공존이다. 기쁨과 슬픔이, 빛과 어둠이, 긍정과 부정이 어느 한 부분만 우리 삶속에 존재할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다. 주역의 원리와 같이, 양이 번창한 하지에 밑에서부터 음이 자라기 시작하듯이, 기쁜 와중에 슬픔이 함께 있어서 우리는 삶의 굴곡을 반드시 가지고 살아간다. 하인들 타로는 아름다운 그림을 통해 우리를 유혹하지 않는다. 많은 타로 덱들이 아름다운 그림 자체에 비중을 둔다면 하인들은 오히려 균형에 비중을 두고 있다. 메이저 카드에서 히브리어와 룬 문자를 함께 그렸고, 마이너 카드에서 주역을 사용한 것도, 인물 카드에 네 방향의 문화 속의 신화를 사용한 것도 모두가 일종의 균형이다. 심지어 주역도 카드의 의미에 가까운 것이 아니라 그 의미에 균형을 잡기 위해서 선택했다고 하인들은 이야기했다.
하인들 타로는 일견 불균형한 듯이 보이고 심지어 무섭거나 흉한 것들도 있다. 아름답지 못한 그림들이 많다. 그렇지만 원래 우리 무의식이 우리가 생각하듯이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다. 우리의 무의식을 반영하는 도구가 타로라는 것을 안다. 만약 그것이 아름답고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만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위안을 주기 위한 가짜 약일 뿐이다. 그래서 하인들은 약간의 불균형을 그림에 넣었다. 파올로 코엘료는 우리가 자아를 완성하기 위한 자기만의 자아의 여행을 떠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책속의 연금술사처럼 용기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나마 팝콘 장수나 크리스탈 가게 사장처럼 우리 꿈을 잃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하인들 타로는 우리의 꿈을 떠올리게 만들고 움직이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다. 마치 너에게 빠진 것은 바로 이것이라고 보여주면서....우리를 불편하게 만들면서 안주하려는 우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다.
레이첼 폴락의 하인들 타로 해설서를 읽으면서 가장 큰 울림이 있었던 부분은 독일인이었던 하인들이 2 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이야기이다. 전쟁이 아니라도 군대라는 곳이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 하인들은 러시아 포로 수용소에서 긴 시간 고통을 겪었다. 전쟁은 참혹하다. 사실상 승자도 패자도 없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일방적으로 누군가는 가해자이고 다른 누군가는 피해자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피해자가 한 순간에 가해자로 돌변하는 경우도 많다. 무엇보다 너무 안타까운 것은 하인들이 전쟁에 참전했을 때 고작 20 대의 청춘이지 않았던가. 전쟁이 의미하는 것 중에는 개인의 힘이 무력한 상황이란 것도 있다. 하인들에게 어떤 선택권이 있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인들의 마이너 소드 10 카드에는 검의 끝이 모두 부러져있다. 가해자들도 사실 피해자다.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증후군은 이미 널리 알려져있다. 그들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고통과 죽음의 공포가 하인들의 타로 카드 곳곳에 숨어있다. 하인들의 달 카드와 연금술 카드, 마법사 카드는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음울하고 어두운 마법사에서 크롤리가 '영겁'(Aeon)이라고 이름붙인 심판 카드 그리고 마이너 카드들의 얽은 자국의 바위들을 통해 그의 아픔과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불을 뿜는 드래곤이 등장하는 우주 카드와 확고한 전차 카드에서 하인들의 정열과 그 의지를 본다. 특히 전차 카드와 별 카드는 너무나 아름답다. 그렇지만 전차 카드처럼 여전히 그의 뒤에서 뒤쫓아 오는 짐승과 파도는 남아있다.
그러나 하인들 타로는 무엇보다 따뜻하다. 그의 고통 속에서 전쟁의 가해자인 독일과 피해자인 유대인 사이의 화해를 소망하며 룬 문자와 히브리어를 메이저 카드의 상단부에 서로 마주보도록 그렸다. 그는 마이너 카드 곳곳에도 긍정적인 메시지가 가득하다. 완즈 4 카드에는 선물을 우리에게 주는 신의 손이 나타나고 컵스 5 카드에는 엎어져버린 다른 덱들과는 달리 아래의 한 컵 속으로 부어진다. 마이너 카드에서 다소 단순화된 이미지를 카드 하단의 주제와 주역이 점술가를 기쁘게 만든다. 메이저 카드 그림 속에도 많은 상징들이 들어 있지만 룬 문자와 히브리어 그리고 점성학과 물, 불, 공기, 흙의 속성까지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정보가 있다. 그에 비해서 마이너 카드는 단순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 또한 바람직하다.
보통 22 장의 메이저 카드들은 주관적인 여행으로, 10 장씩 네 가지 슈트들인 마이너 카드들 40 장은 객관적인 신의 속성이라 한다. 이것은 카발라와 연계된 카드들에서의 개념이다. 클래식 카드들은 모두 카발라 전통을 따랐다. 10 장씩의 마이너 카드는 신의 속성을 상징하는 10 개의 세피로트에 대응시키고 히브리어 알파벳과 연계한 22 장의 메이저 카드는 그 세피로트 간의 경로와 대응시켰다. 보통은 22 장의 메이저 카드들을 마이너 카드들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간주하고 그 상황에서 더 크고 오래 영향을 미치는 신의 손길이자 객관적인 힘으로 본다. 두 가지 신의 속성 사이에서 자유의지의 표현이자 선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조금 달리 말하면 객관적인 두 가지 신의 특성들 사이에서 양쪽의 신의 손길이 미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우리 인생은 여행이고 곳곳에서 신의 표식이자 선물이 숨겨져있다. 바로 그 신의 선물이자 표식이 타로에서 마이너 카드들이다. 마이너 카드는 나의 의지에 부합하는 선물이고 내가 발견하고 의미를 부여할 때 비로소 가치를 얻기 때문에 원한다면 바꿀 수도 있고 빠르게 지나가기 마련이다. 메이저 카드들은 하나의 특성에서 다른 특성으로 여행하는 더 크고 긴 여정이자 도전이기 때문에 임팩트도 크고 더 긴 영향력을 갖는다. 그러나 마이너 카드들은 그렇지는 못하더라도 일상에는 더 가깝다. 웨이트 덱의 마이너 카드들은 그림이 더욱 현실적이고 세밀하게 묘사하게 되었다. 그런 변화 과정에서 메이저 카드의 의미나 중요성, 파급력 등을 간과하기가 쉽다. 그런 면에서 마이너 카드 그림의 단순화는 상대적인 중요도에 있어서 나름의 의미도 있다.
하인들 타로의 또 다른 장점은 다양한 여러 문화와 신화들을 소개하고 또한 그것들 사이의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클래식 카드들에서는 원소들을 통해서 신의 네 가지 측면이자 차원이고 삶의 배후에서 영향력을 주도하는 근원 원소들인 4 가지 원소들의 균형을 추구했다면, 하인들은 동양과 서양의 사상들 그리고 고대와 근대와 현대의 조화, 심지어 완즈 10에서는 사냥꾼과 그 대상의 역전을 통해서 보는 자와 보이는 대상이란 관점도 조화를 이룬다. 주역과 카발라 사이의 조화도 눈여겨서 볼만하다. 사실 카발라에는 마이너 카드들도 중요하다. 카발라에서 마이너 카드들은 네 차원의 세계들과 네 세계들 속의 신의 10 가지 속성들을 의미한다. 그 카발라와 주역이 조화 아닌 균형을 이룬다. 예를 들자면 완성과 실현, 완벽 그리고 창세기의 창조주에 해당하는 헤세드가 주역과 만나면 그 창조를 안정하는데 힘쓰라고 조언한다. 완즈 4에는 수화기제(완성, 안정)가 배정되어 있다. 기제에는 큰일은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에 작은 일에는 이롭지만 큰일은 흉한 순간이다. 이미 이룬 것을 안정시키지 못하면 결과적으로 이룬 것이 허물어지게 된다고 말하면서 주역은 조화를 이룬다.
또 한 가지 균형은 남녀 사이의 균형이다. 나는 하인들이 여성주의 타로라고 생각한다. 마더피스 못지않게 영적이면서도 여성주의 카드에 가깝다. 하인들의 인물 카드를 살펴보는 순서를 여왕을 가장 먼저 위치시키는 것을 권한다. 보통은 왕, 여왕, 기사, 시종 순서이겠지만 하인들 카드는 여왕, 왕, 공주, 왕자 순서로 보는 것이 좋다. 칼리 여신과 빌렌도르프 여신상, 누트 여신 그리고 거미 여인이 곧 우리의 어머니이다. 본래 남자는 여자에게 속한다. 레이첼 폴락도 여황제가 황제를 창조한다고 했듯이, 여자가 남자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봉사하기 위한 존재이고 그 남자에게 여자가 헌신할 뿐이다. 여기서 생뚱맞게도 주역은 여자는 포용하고 남자는 창조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곤위지, 건위천이 사실 카발라와 다르지 않은 사상이다. 카발라에서의 남성 원리인 자비의 기둥은 발산하고 여성 원리인 공의의 기둥은 제한한다. 다만 포용하고 제한하는 차이로 사실상은 같은 말이다. 주역에서 한 번 양(동)한 뒤에 음(정)한다는 이야기한다. 시작하면 끝이 반드시 있듯이 발산하면 그것을 제한하는 것이자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시간이고 토성이고 무서운 어머니인 비나이다. 그것을 주역의 용어로 한 번 양하면 한 번 음한다고 달리 말했을 뿐이다. 봉사와 헌신은 일견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다른 뜻이다. 아더왕의 전설에서도 기사는 여인을 위해서 봉사를 맹세하고 목숨을 걸고 헌신한다. 어머니인 여성이 아들인 남성을 낳기 때문에 여성은 생명을 주는 자이다. 인간은 여성을 통해서 이 세상 속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여성의 헌신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인물 카드에서 왕자는 공주의 헌신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파르시팔도 시애틀도 심지어 오시리스도 크리슈나도 헌신하는 이시스와 라다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하인들 타로의 전체적인 틀은, 크롤리가 ‘토트의 서’라고 이름붙인 크롤리 덱의 기본 틀과 제목형식을 따랐다. 그래서 웨이트 덱과는 상당 부분 형식이 다르다. 크롤리는 상당히 오만하고 고리타분했던 웨이트를 노골적으로 여러 번 조롱했다. 웨이트는 황금새벽회가 해체되자 먼저 자신만의 타로 덱을 만들었고 훨씬 뒤에 크롤리가 자신만의 타로 덱을 만들었다. 사실 엽기적인 행각을 벌였던 크롤리는 젊었을 때 카발리스트로서 혹은 의식마법사로서는 의외로 유능했었다. 웨이트는 황금새벽회의 상징을 빼거나 변형해서 출판을 했는데, 카드에서 점성학 기호들은 모두 빼버렸고, 그 대신에 그 의미들을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크롤리는 카드 하단에 제목으로 표시했고 점성학 기호들은 남겨두었다. 무엇보다 크롤리는 마이너 카드를 메이저 카드처럼 일상적인 그림으로 표현해서 대중화에 성공했던 웨이트와 달리 마이너 카드들을 추상적인 그림으로 표현했다. 화가인 하인들은 아마 그 그림들에 매료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교(秘敎)에서는 ‘신은 섹스다’에 못지않게 ‘신은 추상이다’, ‘신은 기하학이다’는 격언도 유명하다. 실제로 피타고라스, 데카르트, 뉴턴 등 수많은 서양 철학자들과 신비주의자들은 음악과 수학, 기하학과 철학을 신성과 별개의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하인들의 메이저 카드는 크롤리와 마찬가지로 카발라와 히브리어를 타로 속에 연계시켰다. 22 개의 히브리어 알파벳은 타로 메이저 카드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히브리어 글자와 점성학의 연결은 전통이 되어왔다. 황금새벽회에서는 7 행성과 3 원소를 사용해서 12 개의 별자리에 위치시켰다. 그러나 현대의 점성학자들은 근원 원소 대신 10 행성과 12 별자리로 묘사한다. 공기, 물, 불이었던 원소들은 현대에 발견된 외곽행성들로 대체되었다. 마법사는 천왕성으로, 매달린 사람은 해왕성으로, 심판은 명왕성으로 대체되었다. 카드를 둘러싼 테두리의 색깔들은 물, 불, 공기, 흙 등 4 가지 고전적인 원소들을 의미한다. 이 속성들은 별자리의 특성들과 관련이 있다. 개인적으로 과거의 7 행성 체계가 지금의 10 행성 체계보다 더 오묘한 깊이가 있다. 7 행성이 12 별자리를 지배하면, 해와 달을 남녀로 간주하고 5 개의 행성이 10 개의 별자리를 지배하게 되면서 남녀의 성질을 띠는 별자리를 하나씩 갖게 된다. 따라서 4 가지 원소들과 3 가지의 활동성, 고정성, 변통성이라는 성질로 별자리를 구분하는 것에 남녀라는 성별의 맛을 부가한다. 그리고 세페르 예치라에서는 요드(י), 헤이(ה), 바브(ו)만 등장하고 두 번째의 헤이 즉, 흙이자 지구인 말쿠트는 등장하지 않는다. 당연하게 지혜의 32 경로에서도 흙 원소는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현실이면서 연금술의 도가니이기 때문에 언급되지 않는다. 그래서 4 가지 원소가 아닌 3 가지 원소가 경로에 배정된다.
하인들 덱에서 무엇보다 혁신적인 것은 룬 문자의 병행 사용에 있다. 하인들은 타로 카드가 얼마나 다양한 전통들을 표현할 수가 있는지 보여주고 싶어 했다. 룬 문자에 의한 가르침이 다른 것들과 서로 모순되지 않으면서 서로 협력하도록 배치했다. 비슷한 충동이 인물 카드에 각각 다른 문화들을 위치하게 만들었다. 또한 룬 문자는 독일 고유의 비교(秘敎) 전통이기도 했다. 룬 문자와 히브리어를 서로 마주보게 위치시켜서 독일인과 유대인 간의 화해를 소망한 것이기도 했다. 룬 문자는 단일한 알파벳 형태를 가지고 않고 여러 가지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북부 유럽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 퍼지면서 사용되었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의 형태가 발생하게 되었다. 룬 문자는 통상적인 다른 언어들과 같이 특정한 문장을 만들어서 사용할 수도 있지만, 각각의 문자가 그 자체로 특정 의미를 담고 있다. 소, 예언, 남자, 여자, 방어, 축복 등 상당히 구체적인 문자적인 뜻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에는 다소 숨겨진 의미나 비교(秘敎)적인 의미를 암시하기도 했다. 이런 측면은 히브리어 글자와도 유사하다. 그러나 룬 문자들은 주로 전통적으로 점을 치는데 사용되었다. 마치 타로 카드처럼, 나무나 돌에 새겨진 룬 문자들을 던져서 점을 쳤었다. 각각의 룬들은 마법적인 특성들을 가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랑의 매력, 힘, 보호, 풍요와 같은 원하는 마법을 담은 부적으로 사용되었다. 중세 사람들은 검이나 보트, 집의 기둥에 룬 문자들을 새기곤 했다.
룬 문자는 고대 서사시 Havamal에서는 오딘이 룬 문자를 전해주었다고 한다. 오딘은 세계수나무 뿌리에 위치하고 있는 암흑 우물로부터 룬 문자를 가져왔다. 그는 자신의 눈 하나를 제물로 바치고 9 일 밤낮을 세계수나무에 목을 매달아서 마침내 룬 문자를 가져왔다. 숫자 ‘9’는 임신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딘은 세계 자궁으로부터 룬 문자를 출산한 것이다. 룬 문자가 과거에 북유럽 전반에 걸쳐서 사용되었지만 점점 퇴색되었다가 20 세기 초에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나치에 의해서 게르만 우월주의가 확산되면서 타로를 비롯한 마법과 오컬트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 룬 문자들을 왜곡시키고 오염시켰다. 그렇게 왜곡된 상태로 1930 년까지 상당히 대중화되었다. 하인들은 타로 카드에 룬 문자를 사용함으로써 오염된 룬 문자들을 정화하기를 소원했다. 전쟁 이후에 하인들은 Karl Spiesberger와 Zoltan Szabo의 도움을 받아서 숨겨진 의도들을 제거하고 von List의 18개 알파벳을 사용해서 룬 문자를 복원하려고 노력했다. 주로 ‘futhark’라고 불리는 18 개 알파벳을 사용했다.
하인들은 1 번 마법사에서 18 번 달 카드까지 룬 문자를 순서대로 배정했다. 바보와 태양, 영겁, 세계 카드 등 4 개의 카드들은 Spiesberger의 룬 문자 체계에서 가져왔다. 하인들은 Szabo의 순서를 따르면, 룬 문자의 의미와 타로 카드의 의미 사이에 깊은 상응 관계가 있음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 8 번 카드와 11 번 카드는 순서를 바꾸었다. 8 번 룬 문자는 11 번 카드에 배정했고, 11 번 룬 문자는 8 번 카드에 배정했다. 그 카드에 배정된 히브리어의 의미 때문이다. 카발라에 의하면 힘 카드는 8 번 카드에 적합하고, 정의는 11 번 카드인 반면에 룬 문자에 의하면 힘 카드는 11 번 카드에, 정의는 8 번 카드에 더욱 적합하다. 리딩을 할 때 선택된 카드를 설명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써, 점술적인 의미들을 각각 카드마다 룬 문자를 사용해서 함축적으로 표시되어져 있다.
첫댓글 좋은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