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도키, 뉴욕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이터널 선샤인]이나 혹은 그 이전 아카데미 각본상에 노미네이트되었던 [존 말코비치 되기] 혹은 [휴먼 네이쳐][컨페션][어댑테이션] 등의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이 독특한 이야기를 창조한 찰리 카우프만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시네도키, 뉴욕]은 간본만 썼던 찰리 카우프만의 감독 데뷔작이다. [주유소 습격사건][광복절 특사][신라의 달밤] 등의 시나리오 작가로 주가 상승 중이다가 [바람의 전설]로 감독 데뷔하면서 찬물을 뒤집어 쓴 박정우 작가 같은 경우도 있지만, 찰리 카우프만은 자신의 감독 데뷔작 [시네도키, 뉴욕]에서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탁월한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와 함께 관객들의 가슴을 헤집고 들어가 마음을 움직이는 진정성으로 깊은 감동을 안겨준다.
연극연출가 케이돈(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은 화가인 아내 아델(캐서린 키너)과 어린 딸 올리브와 살고 있다. 케이든은 아더 밀러의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신경을 집중하고, 부인인 아델은 지하 작업실에서 돋보기로나 볼 수 있는 아주 작고 섬세한 미세화를 그린다. 연극 개막일에도 전시를 준비하느라 극장을 찾지 못한 아델에게서 우리는 부부 사이의 흔들림을 엿볼 수 있다. 결국 아델은 전시회가 열리는 베를린으로 딸을 데리고 가면서 영원히 케이든 곁을 떠나버린다.
깊은 상실감에 젖은 케이든 곁에 두 여성이 등장한다. 한 명은 극장 매표원 헤이즐(사만다 모튼). 케이든을 존경하던 그녀는 자신의 집으로 그를 초대했다가 섹스를 하던 도중 케이든의 성기가 발기되지 않자 상처를 받는다. 케이든의 작품에서 여주인공을 맡은 클레어(미쉘 윌리암스)는 케이든과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되지만 케이든은 베를린으로 떠난 딸 올리브와 아델을 잊지 못한다.
[시네도키, 뉴욕]은 줄거리만으로 이야기가 전해지거나 설명되는 작품은 아니다. 찰리 카우프만은 상실, 죽음, 이별, 소외 등 철학적 주제에 관한 대중적 접근을 시도한다. 관념적 주제의 무게에 짓눌려서 비현실적으로 이야기가 그려지지 않도록 감독은 사실적으로 인물에 접근하고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육화시킨다. 이런 주제들이 관객들의 가슴 속에 체감도 있게 전달되게 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사실성과 진정성을 무기로 감독은 현대사회에서의 인간소외나 관계의 부재, 그리고 인간의 근원적 주제인 죽음과 이별 등에 관해 울림 있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케이든 주변에 등장하는 세 명의 여성 캐릭터들은, 케이든의 내면에 수시로 삼투하여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철학적인 성찰과 시적인 묘사로 가득찬 [시네도키, 뉴욕]은 삶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달해준다.실제의 삶과 혀구의 연극이 뒤섞이면서, 모든 불확실한 것들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그것들이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면서 만들어지는 삶 속의 환상, 환상 속의 삶을 우리는 보게 된다. 지금의 여자 속에서 그 이전의 여자들을, 예전의 여자 속에서 지금의 여자를 보는 케이든의 시선이 교란되는 것은, 개인적 흔들림 때문만은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삶은 항상 두부 자르듯 명쾌하지 않다. 무엇인가 확실하게 규정을 짓고 울타리를 만들고 싶어도 우리들 삶의 섬섬옥수는 울타리를 넘어 땅 밑으로 뿌리를 뻗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불확실한 세게를 통합하려고 한다. 삶의 모호함은 영역의 모호함이 아니라, 의식의 모호함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생존의 불확실함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