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미사를 드리며 인천주보에서 감명있게 본 이 글이 공감되어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어 올립니다.
내 겉옷 오른쪽 주머니에는 묵주가 들어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내 20대에 신앙생활에 큰 영향을 주신 신부님의 은퇴 미사 때 선물로 받았던, 의미가 있는 묵주이다. 조금은 투박하지만 이젠 제법 내 손에 길들인, 나무로 만들어진 묵주가 바로 그것이다.
성당에서 주일학교 자모회로 활동하고 있는 내가 작년 11월 대입 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수험생들을 위한 9일 기도를 바치기 위해 매일 성당에 나오면서 깜박 잊고 못 챙겼을까 봐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만지작 만지작거렸던 묵주이기도 하다.
수험생들을 위한 9일 기도가 끝난 뒤 이제 묵주를 꺼내놓고 정리해 놓아야지 하며, 꺼냈던 묵주를 바뀌는 겉옷마다 다시 넣고 나오는 것이다. 우리 집 거실 한 켠에 있는 성모상 앞에 예쁘게 놓인 묵주 지갑을 볼 때면 "맞다. 묵주 넣어놔야 하는데 …. " 하면서도 매번 그냥 손에 들고 나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과 통화를 하면서 습관처럼 주머니에 손을 넣게 되었고, 주머니 속에 든 묵주를 만지작거리며 통화를 마친 뒤 나도 모르게 “주님, 우리 엄마 건강 지켜주세요." 하고 혼잣말을 하게 됐다. 아마 그 후부터였을 것이다.
손에 익은 묵주를 만지작거리며 출근할 때나 집 앞 마트에 갈 때, 또 아이들과 외출할 때
"주님 오늘도 좋은 하루 되게 해주세요.",
"주님 오늘도 애들한테 화를 내고 나왔어요. 어쩌죠?" 하고 주님께 이야기하게 되었다.
길을 지나다 출동하는 소방차나 구급차를 보면 "주님 별일 아니게 해주세요." 하고, 거리에서 만나는 상황마다 묵주를 만지작거리며 기도를 하게 된 것이다. 성호경을 긋지 않았으니, 기도라 할 수 있을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주님께 몇 마디 건네고 나면 그냥 마음이 좀 나아지고 걱정이 덜어지는 듯 느껴졌다.
그러다 장거리 출퇴근을 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묵주기도를 해 봐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부끄럽지만 기도서가 없이는 묵주기도를 제대로 할 줄 몰랐던지라 핸드폰으로 그날의 신비를 찾아보며 묵주기도를 시작했다.
주머니 속 묵주와 함께 출 퇴근 하면서 성모 찬송으로 마무리하며 하루에 묵주기도 5단을 바칠 수 있게 되었고, 그날 그날의 내 상황, 가정의 상황들을 돌봐달라고 성모님께 이야기하고 청할 수 있었다. 마치 어릴 적 아빠에게 직접하지 못한 말을 엄마의 힘을 빌려 대신 이야기를 전달하듯이, 성모님의 힘을 빌려 하느님께, 주님께 내 청을 들어달라고 기도했던 것 같다.
어느 날은 하루종일 일이 잘 안 풀려 몸도 마음도 지쳐서 퇴근하는 날이 있었다. 누구한테도 말하기조차 힘듦에 속상하던 찰나, 손끝에 만져지는 묵주 한 알 한 알이 어찌나 위로되었던지….
그렇게 버스 안에서 의자에 기대어 가만히 앉아 "주님, 나 힘들어요. 어쩌죠? 진짜 힘든데… 도와주세요." 하며 별다른 기도 없이 묵주를 만지작거리며 투정도 부리고 속상함을 이야기하고 나니 마음이 좀 풀리고, 조금은 마음이 단단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 후에 일의 어려움이 해결이 된 것은 아니지만,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주머니 속 묵주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주님, 제 곁에 계시죠? 저 보고 계시죠?" 하며 주문 같은 기도를 하고 나면 마치 뒷배가 생긴 것처럼 괜히 든든하고, 기운이 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계절이 지나 겉옷을 입지 않는 날에는 주머니 속 묵주를 잠시 내려놓고, 대신 손가락에 끼워진 묵주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주님께 기도한다. 힘든 날에는 주님께 투정을 부리기도 하며 지내다 이제 또한 계절이 지나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지금, 겉옷을 준비하며 처음 묵주를 주머니에 넣었던 그때의 그 마음을 다시금 꺼내 묵상해 본다.
"주님, 지금껏 이 마음을 놓지 않고 지내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오늘 하루도 제 뜻보다는 주님의 뜻대로 살게 해주시고,
어제 보다는 오늘 더 성숙한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아멘. ”
양미현 루시아 | 만수3동 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