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익진 康翊鎭(1921~2008)】 "1945년 한국광복군 제1지대 제3구대 에서 공작반장,”
1921년 2월 11일 함경남도 신흥군(新興郡) 영고면(永高面) 당복리(塘福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신천(信川)이다. 1944년 1월 일본 릿쇼대학(立正大學) 지력과(地歷科) 3학년 재학 중 학병으로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었다. 용산에 있는 일본군 제23부대에 배치되었다가 중지파견군 제64사단으로 전속되었다.
1944년 5월 중국 후난성(湖南省) 양전 전선(良田戰線)에서 고재옥(高在玉)·황갑수(黃甲秀)·김배길(金倍吉)·김상학(金相鶴)·이충렬(李忠烈) 등 동료와 함께 무기와 장비를 갖추고 일본군 병영을 탈출하였다. 오개산(五蓋山)을 넘어 여승 방향으로 이동하여 중국군 제9전구사령부 제4군 유격대에 편입하였다.
중국군 제9전구사령부 제4군 유격대에 머물던 중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에서 파견된 이병곤(李炳坤)·김경화(金慶華)와 접촉하였다. 중국군 내에서 특수 유격 및 정치공작 반장으로 활동하며 대적 선전 활동, 포로 심문, 한적 장병(韓籍將兵) 초모(招募) 활동, 적 정보 수집, 적 문서 번역과 분석 업무를 담당하였으며, 일본군과의 전투에 참전하여 철교 및 초소 폭파 활동을 벌였다.
1944년 말 각 전선에서 많은 한국인 출신 장병들이 일본군 부대로부터 탈출하자 이들을 교육하여 광복군으로 편성하고자 하였다. 제9전구 지역의 경우 사령관 쉐웨(薛岳) 장군의 명령으로 제9전구 지역에 산재한 한국인 출신 탈출 장병 전원을 사령부 소재지인 계동(桂東)과 전방 지휘소가 있는 장서성 이춘(宜春)에 집결토록 하였다. 제2진에 소속되어 계동 사령부로 이동·집결하였다.
1945년 5월 중국 제9전구 지역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출신 탈출 장병을 대상으로 한국광복군 제1지대 제3구대가 편성되자, 같은 해 7월 제3구대 제1분대에 소속되어 공작반장으로 활동을 전개하였다. 대원 20여 명을 지휘하며, 한국인 출신 탈출 장병 모집과 유격 활동을 벌였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자, 현지에서 일본군의 무장 해제 작업에 참여하였다. 이후 1945년 9월 장시성 풍성(豊城)에 집결하여 한커우(漢口), 난징(南京), 상하이(上海)를 거쳐 1946년 6월 인천으로 환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