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16,16)
높은 빌딩을 지으려면 그 높이만큼 깊고 튼튼한 기초가 필요합니다. 잠실 롯데월드타워 빌딩은 눈에 보이는 높이만큼 아주 깊은 지하에 상상할 수 없는 기초공사를 했으리라 생각됩니다. 더욱 땅속 깊은 곳에 넓은 암반이 있어서 그 암반을 기초 삼아 건물을 세웠겠죠. 그런데 제가 살았던 베트남 호치민의 첫 번째 수도원도 신축할 때 2층 건물을 올리면서도 시멘트 말뚝을 건물 높이와 비례해서 촘촘히 깊게 박고 나서 그 위에 건물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회원들이 늘어나면서 증축 공사를 하려고 했지만 증축할 수가 없었던 이유는 바로 지반이 너무 약해 침하 현상이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른 부지를 확보해서 4층 건물을 신축했었습니다. 이처럼 높은 건물일수록 튼튼한 암반 위에 집을 짓는 게 당연합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시몬을 게파, 베드로(=반석)라고 명명하고 그에게 교회의 열쇠를 맡깁니다. 베드로를 교회의 반석으로 선택하신 것은 베드로의 성격이나 성품이 다른 제자들보다 더 성숙하고 출중해서가 아니었잖아요. 다만 오늘 복음에 의하면, 베드로의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16,16)라고 했던 신앙고백이 그 결정적인 선택 이유임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이 고백은 단지 그만의 고백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고백해야 할 신앙고백입니다. 이 신앙고백이 바로 교회의 영원무궁한 반석이기 때문이며, 예수님께서는 그래서 그를 ‘시몬 바르요나’에서 새롭게 ‘베드로, 게파’ 라고 부른 것입니다. 물론 이 고백 이후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베드로 사도는 그 순간부터 현재까지 교회의 튼튼한 반석이 되었습니다.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자신의 정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16,13.15) 이 질문은, 이곳에 도달하기까지 당신과 3년 정도 함께 지낸 제자들에게 지금껏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한 졸업 시험 문제와 같습니다. 이 질문은 복음의 최절정의 순간이자 자리입니다. 저는 가끔 구약성서는 메시아가 누구이냐는 책이라면, 신약성서는 바로 메시아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라는 책이라고 강조합니다. 바로 복음은 바로 이 점을 증언하고 고백하는 책입니다. 제자들 가운데서 베드로의 답변 곧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는 고백을 듣고서, 예수님께서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16,17)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이렇게까지 칭찬하신 까닭이란 어떤 누구에게도 들을 수 없는 가장 완벽하고 가장 명백한 당신의 신원을 지칭하는 답변이었으며, 이 답변은 거의 만점에 가까운 놀라운 답변이었던 것입니다.
아픈 만큼 성장한다는 표현처럼 베드로는 자신의 의지와 달리 스승이신 예수님을 배반한 사람이었으며, 그로 인해 그의 마음속에는 늘 후회와 죄책감으로 마음 아파한, 나약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더욱 오늘 복음 후반부에서 예수님께서 “당신은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 날 것이다.”(16,21)라고 언급하자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면서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16,22)하고 격하게 반발한 것도 아직 자신이 누구이며 자기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소리조차도 제대로 듣지 못하는 미성숙한 사람이었음을 드러내 보이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는 졸업시험(=필기)에선 만점을 받은 사람이었으나, 실기(=삶의 체험을 통한 이해 부족)에서는 거의 영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은 분이었습니다. 베드로는 한 마디로 자신의 예수님을 통해 이루고 싶은 꿈을 버리지 못했기에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수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입으로는 심오한 신앙고백을 했지만, 정신과 의식으로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16,23)라고 베드로에게 돌직구를 던지신 것입니다. 이는 베드로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 계획보다 자기 일에 관심하고 집중하는 모든 사람을 향한 예리한 송곳과 같은 일침을 찌르신 것입니다. 불은 불로 꺼야 하듯이, 어불성설은 촌철살인의 경구로 다스려야 하는 것입니다. 두고두고 베드로는 그 순간만이 아니라 자기 삶의 여정에서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 일만 생각하는구나, 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면서 다시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이 말씀을 붙들고 살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의 삶만을 기대하고, 수난의 예수님보다 영광의 예수님만을 따르려는 우리를 대오각성하게 합니다.
하지만 베드로 사도의 인간적인 나약함이 더 이상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부활 이후 자신에 대한 예수님의 아낌없는 사랑과 한없이 자비하신 용서를 체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보내시기로 약속하신 성령께서 베드로의 나약한 인간성을 신적 본성으로 변화시켜 주시고, 신적 능력으로 더욱 단단히 붙들어주셨기 때문에 그는 교회의 확고한 반석이 되셨습니다. 이젠 베드로가 왜 그렇게 격한 반박을 하였는지 묻기보다는 그런 베드로가 어떻게 참으로 든든한 교회의 반석이 되고 기초가 되었는가를 우리가 답해야 할 차례입니다. 우리 일만 생각했던 우리의 삶의 의식과 행동에서 하느님의 일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우선적으로 실행하는 사람이 되도록 베드로 사도를 통해 배우고 깨달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도 베드로 사도처럼 주님의 용서와 사랑 안에 온전히 머물도록 합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저승의 세력도 교회를 이기지 못하리라.”(1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