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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 행복한 대화는 경주 동국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렸습니다.
무대에 오른 스님은 지진 피해로 놀랐을 경주 시민들의 마음을 살피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지난번 지진 때 많이 놀라셨죠?”
“네.”
“원래 경주가 우리나라 안에서는 신라시대부터 지진이 많은 지역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지진대에는 속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너무 걱정할 것 까진 없어요.
다만 불안정한 지층 위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가 혹시 사고 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있습니다. 후쿠시마는 반경 50km(직접피해범위)이내에 약 22만 명이 살고 있는데, 고리 원전은 후쿠시마보다 약 22배 많은 500만 명 이상 살고 있습니다. 사고가 나면 피해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경주 시민 여러분은 꼭 정부만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전북 부안군에서 핵 폐기장 유치를 거세게 반대해서 정부가 3천억 보상을 내걸자 몇 개 시, 군 중에서 경주가 주민투표율 1위로 핵 폐기장을 유치하게 되었죠.
경주 출신인 저로서는 문화유적도시에 핵 폐기장이 유치된다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지진이 일어나고 보니까 그래도 핵 폐기장 유치한 것이 잘했다 싶으세요?”
“아니요.”
“이런 걸 가지고도 인생을 배울 수 있습니다. 지금 좋은 게 나중에도 반드시 좋은 게 아니고, 반대로 지금 나쁜 게 나중에도 반드시 나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옛말에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고,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전화위복이라는 말도 있죠. 또 우리는 좋다고 다 할 수도 없고 싫다고 안 할 수도 없을 때가 많습니다.
[신심명]에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다만 좋아하고 싫어하지 않으면 된다.’ 고 했습니다. 우리는 좋아하면 다 해야 되고 싫어하면 무조건 안 하는 게 좋은 줄 아는데, 수행에서는 좋고 싫음에 끄달리지 않고 자유로우면 그게 해탈의 길이라고 해요. 수행이란 것은 거창한 지식이나 고행처럼 특별한 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순간 순간 잘 살피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어떤 걸 물어도 좋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도 좋습니다. 오늘은 대화의 시간이에요. 그럼 질문을 받겠습니다.”
경주에서는 현장에서 6명이 질문했고. 영상으로 1명 질문 했습니다.
그 중 좋은 아버지가 되는 방법을 물어보신 질문자와의 대화를 소개합니다.
“제 아내와 저는 자식 교육 방식이 차이가 많이 납니다. 저의 집사람은 많은 평범한 엄마들처럼 공부 잘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돈을 잘 벌면 행복하다는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는 엄마 말을 잘 듣지 않아서 충돌도 있는 편입니다.
그런데 저는 아이 스스로가 공부를 못한다고 생각을 굳힐까봐, 공부를 나중에 뭔가가 되기 위한 대가라는 인식을 가질까봐 우려합니다. 아내와 싸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개가 강아지를 낳아서 기를 때 암캐가 ‘어떻게 키워야 우리 강아지가 개다운 개가 될까?’하는 교육을 받고 키울까요, 그냥 낳아서 키울까요?” (청중 웃음)
“낳으면 그냥 키웁니다.”
“소가 송아지를 낳을 때는요?”
“그때도 그냥 키우겠죠.”
“그럼 사람이 아기를 낳아서 키울 때 무슨 교육을 받아서 키워야 될까요, 아님 그냥 키워도 될까요?”
(질문자 웃음) “그냥 키워도 될 것 같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하는지 유아교육에 대해서 대학교에서 공부를 해서 저를 키웠을까요. 시집가라고 해서 시집을 갔고, 아기가 생기니까 아기를 낳아서 그냥 키운 거예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생태계를 가만히 보면 개도 강아지를 키우는 모성애가 있고, 쥐도 쥐새끼를 키우는 모성애가 있어요. 이러한 모성애는 생태적으로,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생태계에서도 가끔 동물이 자기 새끼를 물어죽일 때가 있어요. 그러나 이것은 동물에게 정신적인 이상이 생겼을 때 일어난 경우입니다. 사람도 아기를 낳은 다음 아기를 버리거나 학대하는 경우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 정신적인 질환으로 인한 현상입니다. 보통 사람은 누구나 아기를 낳으면 키우게끔 되어있습니다. 자연적으로 키우도록 되어 있지 않았다면 인간이 인간의 종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동물들을 잘 보세요. 닭, 소, 개 등 동물들을 다 관찰해보면 수컷이 새끼를 키울 때 어떤 역할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래요, 그러니까 질문자는 아이에게 아무런 역할이 없어요. 그러니 질문자는 신경 쓰지 마세요. (청중 웃음)
생태계가 유지되는 원리를 살펴보면 두 가지 본능이 있습니다.
우선 각자가 자기 생명을 보존하려는 본능, 즉 개체보존의 본능이 있어요. 가령, 닭이 여러 마리 있는데 그 중 한 마리를 잡으려고 하면 각자 자기 살려고만 하지 다른 닭을 보호하는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는 각자가 개체보존의 본능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상시에 닭에게 접근을 하면 닭이 도망을 가지만, 알을 품을 때나 병아리를 데리고 있을 때 가까이 가면 병아리를 깃털에 숨기고 사람에게 덤빕니다. 사람에게 덤비면 죽을 수도 있는데도 거기에는 이기고 지는 개념이 없습니다. 그저 ‘내 새끼를 보호해야 한다.’라는 종족보존의 본능만 있을 뿐이에요. 그 본능 때문에 종(種)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본능은 어미에게만 있어요. 수컷에게는 없습니다.
생태계의 모습은 이러하지만, 동물에게 있어 정신현상이 발달하면서 점차 수컷에게도, 암컷만큼은 아니지만, 새끼를 보호하려는 현상이 일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사람은 정신작용이 많이 발달하면서 수컷에게도 가정을 보호하려고 하는 선(善)의 본능이 나타나기 시작해요. 그래서 질문자도 이러한 질문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청중웃음)
특별히 질문자가 아이에게 해줄 건 없습니다. 질문자가 아이에게 어떻게 해주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오히려 아내가 아이를 잘 돌볼 수 있도록 아내를 잘 돌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훌륭한 아버지가 되는 길이에요. 다시 말해서, 내가 아이에게 어떻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내가 아이를 잘 돌보도록 아내에게 잘 해주어야 합니다.
아기는 엄마로부터 보호받기에 주변 다른 사람들은 아기의 엄마를 보호해야 합니다. 그러니 질문자는 아기의 엄마에게 잘 해주었는가를 우선 반성해보아야 합니다. (청중 웃음)
아기가 태어난 뒤 3년까지는 아기의 엄마에게 정말 잘 해주어야 해요. 아기는 태어나서 3년 동안은 전적으로 엄마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 기간에 자아가 형성됩니다. 이때 형성된 자아가 아기의 평생을 좌우합니다. 이것을 천성(天性)이라고 해요. 그것은 머리를 깎는다고 바뀌는 것도 아니고, 나이 든다고 바뀔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왜냐하면 이것은 어떤 주체가 외부의 것을 배운 것이 아니라, 마치 도장이 찍히듯이, 주체가 그렇게 형성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정신현상을 각인(刻印)작용이라고 합니다.
인도에서는 이것을 카르마(Karma)라고 했습니다. 인도나 힌두교에서는 카르마는 타고난 운명이니까 카르마는 우리가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그것이 바뀌기 어렵다는 것은 맞지만 태어나기 전에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닌, 형성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형성된 것은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흔히 천성이라고 하는 업(業)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혁명적인 깨달음입니다. 물론 우리들이 현실적으로 접하는 문제는, 업(業)을 바꿀 수는 있지만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어미가 중요시해야 하는 것은 아이의 자아가 형성될 때 지혜롭게 잘해야 하는 거예요. 교육을 받고 신경을 쓴다고 잘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미가 그저 새끼를 아끼는 마음만 내면 저절로 됩니다. 이 세상 다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목숨보다도 아기를 중요시해야 하는데 자기 명예, 지위, 출세가 더 중요하다면 아이의 가치는 우선순위에서 밀려서 두 번째나 세 번째에 위치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아이의 천성이라고 할 수 있는 자아에는 흠집이 생깁니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부부가 싸워서 엄마에게 불안한 심리가 생기면 아이에게는 천성적으로 불안한 심리가 생깁니다. 아이가 나중에 커서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높은 지위에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형성된 심리는 쉽게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질문자는 일찍 들어와서 아내와 대화도 나누고, 아내가 신경을 쓸 일이 생기더라도 남편이 대화를 나누어줌으로 해서 마음을 편안하게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해요. 동물은 대개 어미가 이 역할을 혼자서 해냅니다. 지금 질문자는 묻지 않았으면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데 (청중 웃음) 굳이 물으니까 ‘아이의 엄마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조금 더 이야기를 하면, 아기가 태어난 후 3년 동안은 자아가 형성이 되고, 자아가 형성된 다음 네 살부터는 학습기간이 시작됩니다. 첫 3년 동안 형성된 자아를 모체로 해서 배움이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도 질문자처럼 아빠는 아이를 데리고 특별히 무언가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유대인의 아버지 교육을 참고해서 좋은 점을 배운다면, 무언가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배우는 현장에 많이 데려가 주는 역할을 할 수 있어요. 강요하지 않고 그냥 손잡고 다니면서 아이가 재미를 붙일 수 있도록 해주는 거예요.
요즘 우리 학교교육은 서양 선진국을 따라 배우는 모방의 교육입니다. 서양에서 발달된 것을 베끼듯이 따라 배우는 단계였기 때문에 독려하고 독촉하면 성취가 가능한 교육이었습니다. 마치 말을 훈련시키듯 아이들 종아리를 때리면서 억지로 배우게 하거나 과외를 시키면 단기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억지로 배우면 창조성이 마비되게 됩니다. 창조성은 자기가 좋아서 집중이 되어야 생겨날 수 있어요.
따라 배우기 학습 방법의 효과가 지난 몇 십 년 동안 우리 사회에 전반적으로 빠른 발전을 가지고 왔지만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현재 우리나라의 발전 정도에서 볼 때 그 수명을 다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한국 사회가 정체되어 있는 것입니다. 최첨단이라고 하는 삼성마저도 더 이상 갈 길이 없습니다. 창조성이 없기 때문이에요. 다른 사람이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을 베끼는 것은 최첨단인데 세상에 없는 것을 새로 만들어내는 것을 해내지 못합니다.
창조성을 가지고 기존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정답이 없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아이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아, 그렇게 생각하니? 그것도 일리가 있구나.’하고 받아주어야지 자기 생각이나 기존에 알고 있던 것과 맞지 않는다고 ‘그건 틀렸어’라고 대답하면 아이의 사고 능력은 자라지 않습니다. 그런데 기성세대가 받은 교육이 따라 배우기 교육이다 보니, 우리 부모 세대와 선생님들도 여전히 그 방식으로 가르칩니다.
조선시대처럼 500년 동안 농업사회가 지속되고 변하지 않을 때 혹은 중세 봉건시대처럼 사회 변화가 없거나 느릴 때에는 기성세대를 따라 배우는 것이 효과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변화가 빠른 시대에는 부모가 아는 것, 기성세대가 살면서 필요했던 것을 아이가 따라 배우면, 이미 그들이 살아갈 시대의 요구는 달라져 있기 때문에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이렇게 농업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변화를 겪은 뒤에 이제는 정보화 사회로의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스님이 가지고 있는 재능 중 하나가 길 찾는 것이에요.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에 나가도 지도만 주면 길을 빨리 파악하고, 미국에 가서는 ‘이렇게 가라, 저렇게 가라’고 말을 해 줄 정도입니다. 그런데 내비게이션이 나오면서 이 능력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렸어요. (청중 웃음)
내비게이션이 없었다면 스님만큼 길에 대한 감각을 가지려면 몇 년을 고생하면서 익혀야 할 텐데, 내비게이션의 등장으로 이 재능은 아무런 쓸모가 없어져 버렸어요. 예전에는 해외여행을 가려고 하면 지도를 한 뭉치씩 들고 다녔는데, 요즘에는 아이패드를 가지고 지도 검색을 하면 히말라야에 가도 길이 다 나옵니다. 화면 확대까지 할 수 있어서 세세한 길까지 다 가르쳐줘요.
이를 비추어서 20년 뒤에는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직업들 중 절반이 없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합니다. 대신 생각하지도 못한 직업들이 생겨나겠죠. 예를 들어, 미국에 가면 네일아트라고 해서 손톱 정리하고 꾸며주는 가게들이 많이 보이던데, 50년 전만 해도 그 일이 직업이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이런 시대에 질문자가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어떻게 알고 아이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겠어요? (청중 웃음)
질문자의 아내가 아이 교육을 시킨다면 뭘 좀 아니까 시키겠지요. (청중 웃음) 그러니까 아내가 아이를 교육한다고 하면 그 부분은 아내에게 맡겨두세요. 아이의 교육을 두고 부부가 갈등하면, 교육이 아니라 부부 사이의 갈등이 오히려 아이에게 정신적 고통을 줍니다. 아내가 주관이 뚜렷해서 교육을 한다고 하면 그대로 두세요.
아이가 너무 힘들어해서 아빠를 찾아올 때 “엄마가 이렇게 해서 너무 힘들지?”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아이가 아빠를 좋아하고 엄마를 미워하게 돼요. 요즘 남북처럼 편 가르기 하려고 하면 아이에게 그렇게 말해도 됩니다. (청중 웃음) 야단을 치지는 않되 엄마에 대해서도 “엄마도 너를 위해서 그러는 거니까 엄마를 너무 미워하지 마라” 정도로만 이야기하지, 아이 편을 들면 안 됩니다. 아이들은 눈치가 빨라서 그렇게 하면 ‘아빠한테 줄 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그런 인식을 심어주면 안 됩니다.
대신 아이 방학 때, 아이들을 데리고 경주남산에 들러서 옛날이야기도 들려주고, 관련된 다른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아빠가 들려주기에는 역사이야기가 좋아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려면 아빠도 어느 정도 소양이 있어야 하잖아요? (청중 웃음) 그러니까 질문자도 공부도 하면서 아이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면 돼요. 그것도 너무 강요하듯이 하면 안 돼요. 아이가 재미있어하도록, 스스로 좋아하도록 기회를 마련해 주는 거예요. 재미가 있어야 창조성이 나옵니다.
질문자 아내가 아이를 반듯하게 가르치는 걸 보니까 아무래도 기계 부속품으로 만드시려는 것 같네요. (청중 웃음) 아까 말했듯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떠한 것이 더 좋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현재 질문자도 모르고 아내도 모르니까, 즉 질문자도 아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이래라 저래라’하지는 말고 아내는 아내 방식대로 교육을 하도록 놔두세요.
반면 그런 교육에서는 자발성을 길러주는 부분 등의 사각지대가 생깁니다. 그런 부분에서 질문자가 아이를 도와주는 틈새전략으로 나가면 돼요. 질문자도 모르는 상황이니까 아내에게 ‘당신은 모르니까 내가 가르칠게’라고 말하면 안돼요. 자신도 모르니까 그것을 인정하고, 아내의 교육 방식을 부정하기 보다는 그것도 그것대로 인정을 하고, 아내와 마찰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그것을 보완해주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좋아요. 그렇게 하면 아빠의 역할을 잘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 감사합니다.”
마지막 영상질문에서는 지진 후 불안한데다가 보상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관광객이 떨어져 매출은 떨어지고, 경주 경제 전체가 어려워져 살기가 무척 힘들다는 경주 시민들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첫째, 사회적인 차원의 대책으로는 경주시에서 경주가 안전하다는 것을 언론매체를 통해 널리 알려야 한다.” 고 하면서 “어려운 시기일수록 여러분들이 일부러 재래시장을 이용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고 고통을 함께 분담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또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마음 자세를 강조했습니다. “피해를 입어 힘들겠지만 상황을 긍정적으로 봐야한다” 고 하면서 “앞으로 몇 달간은 어려움을 감수하고 지낼 수밖에 없다" 고 다독여 주었습니다.
또 스님도 강의 때마다 경주 여행 많이 오라고 하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위기를 잘 극복하자“고 시민들을 격려했습니다.
엄마와 함께 온 아이가 오늘 강연을 들으면서 본인이 직접 그린 그림을 보여주었습니다. 스님을 그렸다고 합니다. 연단에 ‘내가 희망’이라는 글자까지 집어넣었네요.
이 예쁜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안전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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