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도 일이야!
 
안유정
 
  “얘들아, 아빠 왔는데 안 쳐다보냐?”
소파에 퍼질러 앉아 핸드폰 게임에 푹 빠진 두 아들을 내려보며 남편이 말했다. 그는 또 “아빠가 퇴근해서 집에 오면, ‘아빠 오셨어요?’하고 인사를 해야지!”라고 했지만, 대답 대신 게임 소리만 들려왔다. 나는 저녁을 차리다 말고 남편을 포옹해 줬다. 그의 등을 토닥일 때마다 땀에 젖은 셔츠에서 습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때 유튜브를 보던 딸이 질투심에 달려와 아빠 앞에서 엉덩이를 흔들며 애교를 부렸다. 남편은 딸을 번쩍 들어서 안더니 “딸 안 낳았음, 어쩔뻔했어” 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마치 대형 트로피를 들어 올린 복싱 챔피언 같았다.
  경쟁사회라는 사각의 링 위에서 하루 종일 치열하게 싸우고 퇴근한 남편은 우리 집 든든한 가장이다. 출산 전 맞벌이로 살 때는 남편에게 그렇게 의존적이지 않았다. 경력단절녀가 되고 외벌이로 살다 보니 남편이 무너지면 우리 집도 풍비박산 날 것 같아 점점 기대게 됐다. 결혼 전 각자의 월급으로 풍요롭게 살았던 우리는,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해로하겠다는 성혼 서약서를 읽은 지 13년 된 부부다. 그 세월 동안 세 아이를 낳고 기르며 남편의 검은 머리는 희끗희끗해졌고 그의 꿈도 희미해졌다. 아이들이 클수록 풍요 속의 빈곤을 느끼지만 그래도 남편은 꿈을 적어 날리는 풍등처럼 삼 남매가 새 희망으로 떠올랐다고 한다.
  새치 샴푸로 머리를 감고 드라이까지 하고 온 남편은 저녁 식사를 위해 식탁에 앉았다. 아들들도 밥 먹으라는 부름엔 소파 위에 핸드폰을 툭 던지고 왔다. 나는 남편에게 오늘 하루 어땠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직장의 한 남자 후배가 육아휴직을 1년 동안 떠난다고 했다. 그 후배는 최근에 득남했고 아내가 산후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사람이었다. 언젠가 그 후배는 남편에게 “오늘은 집에 가면 와이프가 또 어떤 모습으로 힘들어하고 있을지 두려워요.”라며 아이 하나도 키우기 힘든데 셋을 어떻게 키우냐며 선배가 존경스럽다고 했던 후배였다.
  그런데 그 후배가 육아휴직 전에 해외 출장을 간다고 했다. 나는 “그럼 부인이 또 혼자 아이를 봐야 하잖아”라며 걱정했다. 그러자 남편은 앞으로 육아하느라 힘들 테니 혼자만의 시간 좀 갖으라는 뜻에서, 팀장이 일부러 보내주는 출장이라고 했다. 나는 ‘가재는 게 편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주 중 하루는 늦게 들어오니 저녁을 먼저 먹으라고 했다. 왜냐고 묻자, 그 후배가 육아휴직을 떠나기 전에 환송회 겸 저녁을 사준다고 했다. 나는 “이럴 때일수록 일찍 퇴근시켜 줘야지, 여자가 힘들 거 아니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편은 검지를 세워 본인 입술 앞에 갖다 댔다. 그만 얘기하라는 제스처였다. 여자 입장은 눈곱만치도 생각 안 하는 남자들의 동족 보살핌에 ‘쉿!’ 하지 않아도 말문이 막혔다. 이럴 때 보면 남편은 믿음직스러운 가장이 아니라 철없는 큰아들 같았다. 그런 모습을 보니 남편의 철없는 행동으로 서운했던 날들이 고구마 줄기 캐듯 줄줄이 생각났다. 그때의 찐 고구마 먹은 듯한 답답한 감정도 함께 올라와 나는 밥맛이 사그라들었는데, 남편은 밥만 잘 먹었다.
 
  첫째를 낳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침대에 비스듬히 앉았다. 병실 벽 곳곳에는 빨간 글씨로 ‘낙상 주의 (보호자와 동행하세요!)’라는 팻말이 붙어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안 보였다. 그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벅찬 숨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어디냐고 묻자 들려오는 대답에 헛숨이 터졌다. 병원 주변을 둘러볼 겸 조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조깅?’ 지금 부인은 부축이 필요한데 동네를 탐색 중이라니, 탐탁지 않은 대답에 어이가 없었다.
  약 10분 뒤, 내 오줌보가 터지기 직전 남편은 헐레벌떡 병실에 도착했다. 그리고 나는 눈살로 그를 헐뜯었다. 그래도 미안하다는 한마디만 들으면 풀릴 요량이었다. 그런데 그는 “운동한 게 뭐 잘못이야!”라고 요망하게도 되받았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였다. 나는 부축은커녕 그의 살갗도 닿기 싫었다. 차라리 링거 스탠드를 끌어오려는데 남편 손이 빨랐다. 그는 내 팔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나는 못 이기는 척 그에게 기댔다. 그리고 코끼리같이 부은 발을 운동화에 욱여넣고 엉거주춤 걸었다. 화장실에 가는 동안 남편은 본인이 건강해야 나를 지킬 것 같아 운동한 거라는 변을 늘어놓았고 나는 한 귀로 흘렸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후에야 아쉬운 쪽은 내 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화난 기분을 변기 물에 흘려보내고 나왔다.
 
  그 후로 2년 뒤, 둘째를 낳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눈을 떴는데 어디서 ‘우지끈!’하는 소리가 들렸다. 화장실 쪽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뭐 하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얼굴이 상기되어서 나온 그는 씩씩거리며 내 앞에 섰다. 그리고 샤워 커튼 봉을 철봉 삼아 턱걸이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남편의 턱없는 소리에 말 문이 턱 막혔다. 하마터면 커튼 봉이 무너져 배상금을 낼 뻔했다고 하자 그는 또 뻔뻔하게, 나를 간호하기 위해 기초체력을 기른 것이라며 해맑게 답했다. 나는 남편이 아니라 해맑은 큰아들을 하나 달고 온 기분이었다.
 
  그 후로 4년 뒤, 셋째를 낳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남편은 조깅도 턱걸이도 하지 않고 침대 앞 의자에 앉아 따듯한 미소를 내려줬다. 나는 이제야 제대로 된 부축을 받겠구나 싶어 안심했다. 그리고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남편은 벌떡 일어나 문밖으로 나갔다. 잠시 뒤, 공동 간병인을 대동해서 들어왔다. 간병인은 가지고 온 눈썰매 같은 빨간 플라스틱판을 침대 위에 올리더니 보호자는 밖에 나가 있으라고 했다. 그리고 병원 규칙이 바뀌었다며 누워서 소변을 보라고 했다. 결국 출산 다음 날 쓰려고 벼루던 ‘남편 찬스’는 그렇게 물 건너갔다.
  남편 찬스는 육아 해방을 위한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그의 회사에서 출산 후 조기 퇴근 시켜주는 문화도 없었고 출산휴가도 3일이었다. 그래서 그동안 남편의 도움을 바짝 받아야 한다는 보상 심리가 있었다. 직업 특성상 남편은 퇴근하는 중에도 다시 회사로 복귀한 적이 많았고, 주말은 한 달에 이틀 정도를 쉬며, 갑자기 해외 출장이 잡혀 그날 밤 다른 나라에 있는 남편과 영상통화를 한 적도 잦았다. 그러니 나는 독박육아를 넘어 독도 육아였다. 외딴섬에서 홀로 육아하다가 가끔 남편이라는 육지 배가 들어와 도움을 주고 또 떠나버리는 식이었다.
  어느날 외딴섬에 아이들과 남겨진 듯한 밤이었다. 첫째 둘째 모두 잠들지 않았고 나는 갓 백일 지난 둘째에게 수유 중이었다. 그때 ‘빽빽빽삑 띠리릭’ 현관문 소리가 났다. ‘드디어 나의 구세주가 왔구나’하고 반가웠다. 벽시계를 보니 2시 45분이었다. 현관 조명을 받으며 터벅터벅 걸어오는 남편에게 나는 “아니 애 보느라 힘든 거 뻔히 알면서 이렇게 늦게 오면 어떡해! 아내가 둘째 낳고 얼마 안 돼서 들어가 봐야 한다고 빠져나오면 되잖아! 나는 뭐 술 마실 줄 몰라서 못 마셔? 차라리 나도 밖에 나가서 일하는 게 훨씬 나!”라고 마음과 달리 쏘아붙였다.
  그래도 남편이 미안하다는 한마디만 하면 풀리려고 했다. 하지만 사시사철 일관된 그는 “회식도 일이야!”라고 으름장을 놓더니 “누군 있고 싶어서 있었나!”라고 한술 더 떴다. 그리고 휘청대며 양말을 벗어 바닥에 내던졌다. 자신을 조이고 있던 벨트도 풀더니, 강풍에 쓰러지는 소나무처럼 소파에 몸을 내동댕이쳤다. 기댈 곳 하나 없는 나는 젖을 물고 있는 둘째를 안은 채 벽에 기대어 무너지듯 스르르 주저앉아 통곡했다. 모유로 가야 할 수분이 눈물로 다 갔는지 아이는 징징거렸고, 나는 징글징글한 육아에 지쳐 빈 젖을 물린 채 잠들어 버렸다.
  
  다음 날 아침, 간밤에 돌풍이 모든 걸 휩쓸어 간 듯 거실 바닥은 깨끗했다. 남편은 집어던졌던 옷가지들을 싹 정리하고 다시 출근했다. 새벽에 퇴근해도 동트기 전 출근하는 그가 딱하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남편은 사계절 푸르러야만 하는 소나무 같았다. 솔잎처럼 뾰족하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가장으로서 늘 긴장을 놓지 않는 사람, 가을 단풍처럼 붉고 노랗게 멋 부릴 여유도 없는 사람, 겨울나무처럼 한 짐 같은 이파리들을 모두 떨구고 홀가분히 홀로 지낼 수도 없는 사람, 소나무 등처럼 허리가 굽어가면서도 대한민국의 허리를 지탱하며 주요 생산층으로 일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나의 남편이자 이 나라의 아빠들 같았다.
  그런 아빠가 퇴근해서 집에 와도 게임과 유튜브에 아이들을 뺏겨 반겨주는 자식이 없지만, 대신 내가 주인 기다리던 강아지처럼 현관 앞으로 달려가 그를 반긴다. 그러면 환하게 웃는 남편 얼굴에 소나무 표면처럼 주름이 짝짝 갈라진다. 남편의 잦은 회식과 야근으로 여전히 내 미간에 주름이 잡히고, 큰아들 같은 행동을 해 답답하기도 하다. 그래도 이제는 나무랄 곳 없는 나의 구세주이자 우리 집의 물주이다. 그런 그가 장수하는 소나무처럼 오래 내 곁에 있어 줬으면 하는 게 나의 바람이다. <끝> 21.9매
	 					
	
	 
첫댓글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수필을 올립니다.^^ 어제 출간기념식 및 문학기행을 하면서 노수현 시인님께서 게시판에 자주 글을 올리라고 하셨어요. 저는 출간 할 책에 실을거라 아껴두었다고 했더니, 그러지 말고 게시판에 올리고 그걸 퇴고하고 엮어서 책으로 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그 약속 지키고자 우선 한 편 올렸습니다^^ 이렇게 올리니 미리 점검 받는 기분도 들고 마음이 한결 가볍네요 ㅎㅎ 귀한 시간 내시어 잘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한민국 아빠님들 모두 화이팅! 브라보입니다~
작가님의 바람은 꼭 이루어질 것입니다. 화이팅!!!
잘 읽었습니다.
이 땅에 사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요?
저도 젊을 때 육아는 아내가 다 하고
술도 못 마시면서 회식자리는 빠지지 않고 따라다녔죠.
'회식도 업무의 연속이야' 상사들의 한결같은 얘기였죠.
그렇게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삼남매 육아 대단하십니다.
화이팅!
작가님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이제는 남편한테 짜증 안내고 술 적당히 마시라고만 해요. ㅎㅎ 저 그리고 작가님 시집 회사에 가져가서 동료들 마음까지 촉촉히 적셔줬답니다 다들 감동했어요 ㅎㅎ
@안유정 와우!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남편들은 절대 잘못한 적 없는 시절의 이야기죠.
마치 남자는 모이면 군대 얘기하듯 여자는 애낳았을 때 남편의 무심에 대해 간직한 사연이 무용담처럼 가슴속에 남아있죠. 회식도 일 맞습니다.우리집 남자도 술도 못먹는 탓에 회식날이면 귀가도우미까지 마치고 새벽에 들어왔답니다.
ㅎㅎㅎㅎ 저희 남편도 현관문 비밀번호도 다섯번이나 틀려서 경고음이 울릴정도로 고주망태가 돼서 온적이 있어여 ㅎㅎ 아들들이 도둑 들어왔다고 저를 깨워서 알았답니다 ㅋㅋ
혼자서 육아 하는 아내의 애환이 잘 느껴지는 글입니다.
이제 차차 남편에게도 시간 여유가 더 생기고 아이들 양육에 많은 도움을 주겠지요.
맞아여 ㅎㅎ 그래서 남편 회사 근처로 아예 이사갑니다! ㅎㅎ 하루 왕복 두 시간 절약되도 육아에 큰 도움이 될것 같아서여~ ㅎㅎ
남자들이 뭐 그러하지유. 그래도 물주이니 봐주세요.
아이가 셋이네요. 일도 하시고 글도 쓰시고. 힘내세요.
따님도 이뻐요.
맞아여. 물주에 구세주 ㅎㅎㅎ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삼남매 육아 대단하십니다. 👍 화이팅입니다.
아하하 작가님도 대단하세요~ 저도 아이들이 고3 되면 제가 늙어있겟죠? ㅋㅋㅋㅋ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이 글은 단독저서에 실을 한 편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