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허집(淸虛集) 3권- 청허 휴정 지음
박경훈 번역
<6언 절구>
•망향(望鄕)
흰 구름 천리 만리 저 멀리 사라지고
밝은 달만 앞뜰과 뒷뜰 밝히네.
고향에 못 가는 마음 설움만 사무쳐
낙양의 버들잎 여전히 푸르리.
白雲千里萬里 明月前庭後庭
惆悵鄕關不去 洛陽柳色靑靑
•만사[挽詞]
산 고요하고 아득히 펼쳐진 바다
부드러운 바람결에 짙은 안개 날린다.
외로운 영혼 어디에 깃드나?
햇살 미치지 않는 하늘 모퉁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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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寂寂海茫茫 風淡淡煙蒼蒼 孤魂何處在 日斷天之方
<7언절구> •경락1)으로 가는 이죽마를 보내며[送李竹馬之京洛] 술 권하며 관서(關西)로 이별하는 일 옛날에 들었노라. 비 지나간 위성(渭城)의 푸른 버드나무가에서 있었던 일2). 오늘 정든 벗 보내는 곳 해질 무렵에 방초(芳草)가 멀리 하늘에 닿아있네. 昔聞勸酒關西別 雨過渭城靑柳邊 今日故人相送處 夕陽芳草遠連天
•한강에 놀다[遊漢江] 버들 푸르른 아침에 비 지나가고 동풍(東風)이 살며시 불어와 물빛은 안개와 같이 일어나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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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漢)나라에서 장안(長安)을 서경(西京), 낙양(洛陽)을 동경(東京)이라 하면서 보통 서울을 가리킬 때는 경락(京洛)이라 하였다. 이를 본받아 조선(朝鮮) 시대의 시인들도 우리 서울을 경락이라 했다. 2) 당(唐)나라 시인 왕 유(王維)가, 원이(元二)가 안서(安西)에 사신으로 가는 것을 송별하는 시에서 ‘위성(渭城)에 아침 비 가벼운 티끌을 적셨는데/ 객사(客舍)에 푸르른 버들 빛 새롭네/ 그대에게 권하나니 한잔 술 다시 들게/ 서쪽으로 양관에 나가면 친구가 없으리 [渭城朝雨浥輕塵 客舍靑靑柳色新 勸君更進一盃酒 西出陽關無故人]’하였다. 여기서는 이러한 옛 시를 예전에 들었다고 하면서 그 일을 인용하고 있다. 따라서는 묘향산장판(妙香山藏板)의 ‘청허집(淸虛集)’에 관서(關西)로 되어 있는 것은 안서(安西)의 잘못이다. |
한 곡조의 옥피리 소리 배에서 들리나니 어부들이 가리켜 강 위의 신선이라 하네. 楊柳靑靑朝雨過 東風微動水如烟 一聲玉笛舟中出 漁子指云江上仙
•풍악산으로 가는 청련 선자를 보내며[送靑蓮禪子之楓嶽] 청련 선자 풍악산(楓嶽山)으로 가는 길 발아래 강과 산이 겹겹일세. 외로운 그림자 터덜터덜 어디로 가는고? 백운(白雲)은 만리창천(萬里蒼天)에 아득하여라. 靑蓮禪子向楓嶽 足下江山重復重 隻影飄飄何處去 白雲萬里蒼茫中
•화개동(花開洞) 꽃 피는 마을에 꽃이 지는데 청학(靑鶴)의 둥우리 가에 학은 아니 돌아오네. 잘 있거라, 홍류교(紅流橋)아래 흐르는 물이여 그대는 너른 바다로 돌아가소, 나는 산으로 돌아가려네. 花開洞裏花猶落 靑鶴巢邊鶴不還 珍重紅流橋下水 汝歸滄海我歸山
•금릉으로 가는 길에서[金陵途中]2수 1 진수(秦隋)의 제방 위에는 천 가닥으로 우거진 버들 뿐이요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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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초(漢楚)의 능(陵)가에는 온갖 풀 우거진 가을일세.4) 하늘이 말이 있다면 사람이 물을 만도 하건만 무정(無情)한 강물은 예나 지금이나 흐를 뿐이네. 秦隋堤上千條柳 漢楚陵邊百草秋 天若有言人可問 無情江水古今流
3) 수(隋)의 양제(煬帝)가 변수(汴水)에 운하를 만들고 그 양쪽 언덕에 버들을 심었다. 그것을 수제(隋堤)라 한다. 수 나라가 망할 때의 일이 진 나라가 망할 때와 비슷하므로 사가(史家)들이 그 흥망을 이야기할 때 진수(秦隋)를 함께 칭한다. 여기서 앞 두 구절은 나라 망한 뒤의 허무한 잔재를 읊었다.
2 진(秦)․수(隋)․양(梁)․당(唐), 모두가 적막한데 천리만리(千里萬里)에 빈 성곽(城郭)만 남았네. 앞사람 가고 나면 뒷사람 오기마련 솔밭 사이의 천년학도 우습기만 하구나. 秦隋梁唐皆寂寞 千里萬里空城郭 前人去去後人來 笑殺松間千歲鶴
•최고운의 비석에 쓰다[題崔孤雲石] 동천(洞天)에 구름 흩어지니 산악(山嶽)은 고요하고 지는 꽃, 흐르는 물은 유유(悠悠)히 가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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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시(漢詩)에서는 흔히 ‘장안(長安)’과 ‘낙양(洛陽)’을 들먹이며 흥망성쇠의 덧없음을 노래하며 과거의 영화로움을 한탄하는 시에서 시인들은 흔히 ‘한(漢)나라의 왕릉(王陵)’을 인용한다. 그것은 한(漢) 나라의 영화도 결국 사라지고 결국은 무덤만 남아 시인들에게 허망함에 대한 이미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진․수․한․초의 옛일을 인용하여 가락(駕洛)의 옛 도읍인 김해의 왕릉과 그 지역에서 일어났던 과거 왕국의 흥망성쇠의 허망함을 읊고 있다. 또 한초(漢楚)라고 한 것은 사가(史家)의 숙어(熟語) 초한(楚漢)을 바꾸어 인용한 것이다. |
뉘라서 알리, 8척(尺)의 장부 삼한(三韓)의 나그네 그의 명성(名聲)이 중화의 400주(州) 흔든 것을. 雲散洞天山嶽靜 落花流水去悠悠 誰知八尺三韓客 聲動中華四百州
•풍악산 만경대에 올라[登楓岳萬景臺] 만경대여, 만경대여 만 가지 사연을 만 사람이 전하네. 스님 하나 날아올라 고개 돌리니 한켠에 푸른 바다 두른 하늘 한 모퉁이 있어라. 萬景臺萬景臺 萬人傳說萬人傳 一僧飛上一回首 一帶滄溟一片天
•강릉진에서 자다[宿江陵鎭] 우물에 뜬 오동(梧桐)한 잎, 가을이로구나. 달빛에 들리는 이웃집의 피리소리에 시름하는 이 그 몇이런고? 남으로 가는 기러기를 서풍(西風)은 좇지 마라. 만리(萬里)떠나 부역간 사나이 수루(戍樓)5)에 있나니. 井上梧桐一葉秋 鄰家月笛幾人愁 西風莫遣南飛鴈 萬里征夫在戍樓
•솔과 국화를 심다[栽松菊] 지난해 봄에는 뜰 앞에 국화를 심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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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적군의 동정을 살피기 위하여 높게 세운 누각이다. |
금년에는 난간 밖에 솔도 심었다. 산승(山僧)6)이 화초(花草)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사람에게 색(色)이 바로 공(空)7)임을 알리기 위해서네. 去年初種庭前菊 今年又栽檻外松 山僧不是愛花草 要使人知色是空
•설악산 화암사[雪嶽山花嵒寺] 푸른 바다 먼 하늘 밖으로 새는 날고 사람은 푸른 산 낙조(落照) 속에 누웠네. 앞 시내의 흰 물결은 석치(石齒)를 울리고 뒷동산에 붉은 비8)는 봄바람을 따르네. 鳥飛碧海長天外 人臥靑山落照中 前澗雪波鳴石齒 後園紅雨逐春風
•꿈에 이백의 무덤을 지나다[夢過李白墓] 지나는 나그네, 유유(悠悠)한 천고(千古)의 한 되니 산은 푸르고 구름은 희어 속절없이 고개 돌리누나. 그 때 술잔 잡던 그 사람 어디 갔는고? 어둡고 아득한 하늘에 달이 스스로 돋아오누나. 過客悠悠千古恨 山靑雲白首空回 當年把酒人何去 杳杳長天月自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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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서산 대사 자신을 가리킴. 흔히 승려들은 자신을 산승이라 겸허하게 자칭한다. 7) ꡔ반야심경(般若心經)ꡕ에 나오는 ‘색즉시공(色卽是空)’임. 즉 모든 물질적인 현상과 정신적인 현상에는 자성(自性)이 없어서 공(空)하다는 의미이다 . 8) 꽃이 많이 지는 모양을 표현한 것이다. |
호선에게 부침[寄湖仙] 산이별과 죽은 이별의 정이 어찌 다르랴? 동(東)으로 삼산(三山) 바라보느라 눈이 뚫어지겠네. 꿈에 흰 갈매기 되어 빙빙 나는 곳 푸른 하늘 물에 닿고 물은 하늘에 이어졌네. 生離死別情何異 東望三山眼欲穿 夢作白鷗飛繞處 碧天連水水連天
•유자를 보내며[別柳子] 꽃 그림자 창에 비치는데 나뭇가지에 새 지저귀니 녹음이 우거진 곳에 나그네의 맑은 이야기일레. 한 곡조 이란(籬蘭)9)은 내일의 한인데 꽃다운 풀 우거진 강남(江南)으로 그대를 보내네. 花影當窓枝鳥語 綠沉沉處客淸談 一曲籬蘭明日恨 送君芳草越江南
•환향(還鄕)2수 [내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열 살에 집을 떠났다가 서른 다섯에 고향에 돌아오니, 옛날 남쪽에 있던 이웃집과 북쪽의 거리가 모두 밭이 되어 뽕나무와 보리만이 푸르고 봄바람에 하늘거릴 뿐이었다. 나는 가슴 아픈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허물어진 옛집의 벽에 옛일을 회상하는 시를 써 붙이고 하룻밤을 자고 산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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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이(籬)는 잡목으로 두른 울타리. 난(蘭)은 난초. 「초사(楚辭)」에 이별할 때 잡목 울타리의 가지와 난초를 뽑아 가는 이에게 주어 이별의 회포를 담은 노래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의 풍속이다. |
1 30년 만에 고향에 돌아오니 사람은 죽고 집은 허물어졌으며 마을마저 황폐하였네. 청산(靑山)은 말이 없고 봄 하늘은 저무는데 두견[杜宇]10)의 한 소리 아득히 들려오네. 三十年來返故鄕 人亡宅廢又村荒 靑山不語春天暮 杜宇一聲來杳茫
2 한 또래의 계집아이들이 창구멍으로 엿보고 머리 흰 이웃 첨지가 성명(姓名)을 묻네. 젖먹이 적의 이름이 통해 서로 눈물 흘리는데 푸른 하늘은 바다와 같고 달은 삼경(三更)일세. 一行兒女窺窓紙 鶴髮鄰翁問姓名 乳號方通相泣下 碧天如海月三更
•머리 깍은 날 마음을 적다[斷髮日書懷]2수
1 붓끝에 맛이 들려서 20년 동안 헛공부만 했도다. 이 몸이 꿈과 같음을 깨닫고 보니 세상에 공하지 않은 것 없도다. 之乎取味管城公 二十年前錯用工 一覺此身同幻夢 世間無物不爲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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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촉(蜀) 나라 망제(望帝)의 이름. 죽은 후에 그의 영혼이 두견새가 되었다는 전설에 기인하여 두견의 별칭이 되었다. |
2 명예와 이익에 마음 빼앗겨 몸 막 굴리다 20년 전 고통의 바다로 흘러들어 왔도다. 어느 날 밤 참선하는 이들의 말을 듣고 생각 돌아서 아침으로 번뜩이는 칼날로 검푸른 머리칼 날리도다. 愛名愛利身輕薄 二十年前苦海漂 一夜細聽禪話了 朝將靑髮就銀刀
•봉래산의 초당[蓬萊草堂] 곳곳마다 꽃이 피어 원근(遠近)을 알 수 없는데 얼마나 많은 꽃비 시냇가에 떨어지는고? 황정경(黃庭經)11)다 읽고서 고개 돌리니 8만(萬)의 봉우리 끝에 달이 지려 하네. 處處開花遠近迷 幾多紅雨落前溪 黃庭讀罷一回首 八萬峯頭月欲低
•봉래로 떠나는 천우를 배웅하며[送天雨之蓬萊] 푸른 바다 흰 모래밭에 새 살림 꾸리니 높은 봉우리 굽이진 골짜기는 지난 인연되었구려. 그대 떠나보내는 남쪽 하늘 구름마저 끊어진 곳 이 노부, 고개 돌려 눈물 뿌리도다. 靑海白沙新活計 千嵒萬壑舊因緣 送爾南天雲斷處 老夫回首一潸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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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신선술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도가(道家)의 주요 경전이다. |
•송아지 부르는 새[呼犢鳥]
전생(前生)의 목동이 금생(今生)에 새 되어
해 갈수록 그 옛날의 봄바람 그리누나.
산 깊고 나무 울창하여 찾을 곳 없는데
송아지 부르는 한 소리, 부옇게 내리는 빗속에 들리네.
前是牧童今是鳥 年年猶愛舊春風
山深樹密無尋處 呼犢一聲烟雨中
•병회(病懷)
봄은 깊고 절은 퇴락했는데 나그네에게 병이 많아
비 지난 연못에 시름으로 문을 닫았네.
동자(童子) 뛰어와 물 위에 연꽃잎 나왔다 이르고
늙은 승은 와서 대나무 순 돋아났다 일러주네.
春深院落客多病 雨過池塘愁閉門
童子走云蓮出水 老僧來報竹生孫
•낙산의 동헌에 씀[題洛山東軒]
수레바퀴와 말발굽 일으키는 먼지 속을 바삐 달리듯이
주색(酒色)에 마음이 미쳐 밤이슬 맞으며 쏘다니는 것이
어찌 해진 누더기를 머리에 비고 누워서
동창(東窓)에 바다의 해 돋도록 자는 것 헤아리리.
塵漲輪蹄忙裏走 心狂酒色夜中行
豈知破衲蒙頭臥 直至東窓海日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