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왕국 유다에 있어서 가장 악한 왕을 꼽으라면 아하스(Ahaz) 왕을 들 것입니다. 아하스는 남왕국 유다의 제12대 왕인데, 아하스의 정식 이름은 여호아하스(Jehoahaz)입니다. 아하스에 대하여 2절과 3절에서는 다윗과 같지 않아서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지 않았고, 이스라엘 왕들이 행했던 악한 길로 행하였으며, 이방 사람들이 자기들의 신에게 그렇게 하는 것처럼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악행을 저질렀다고 기록합니다.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했다는 말은 암몬 족속이 섬기는 신 밀곰(Milcom)에게 아들을 불태워 제사로 드리는 악행을 행했다는 말입니다. 밀곰은 말감(Malcam, Malcham)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가나안 족속은 몰렉(Molek, Molech)이라고도 부르는 우상입니다. 하나님 백성이며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은 언약으로 다윗의 가계(家系)를 통해 유다 왕국의 왕위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아하스는 이방의 우상을 섬기는 악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산당들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고 분향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4절). 이러한 표현은 이방인들이 우상을 섬기는 것을 의미하는 표현들입니다. 하나님을 완전히 저버리지는 않았겠지만, 우상을 섬기는 것도 함께 행했다는 것입니다.
아람의 왕 르신(Rezin)과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인 베가(Pekah)는 연합군을 형성하여 남왕국 유다를 쳤는데, 그 연합군은 남왕국의 아하스를 이기지 못했습니다(5절). 아람과 북왕국 이스라엘은 그 당시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앗수르를 함께 대항하려고 연합군을 형성하였는데, 남왕국 유다는 오히려 앗수르를 의지하고 화친하려고 하였습니다(7절, 8절). 그렇기에 아람 왕 르신이 남왕국 유다의 엘랏(Elath)을 침공하여 점령하고, 북왕국 이스라엘과 합하여 남왕국 유다를 위협하자(6절) 남왕국 유다의 아하사는 앗수르에게 손을 내밀고, 앗수르를 섬기기로 하면서 하나님의 성전과 왕궁 창고에 잇는 은금을 앗수르에게 예물로 보내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앗수르 왕인 디글랏 빌레셀 3세가(Tiglath-Pileser Ⅲ)가 아람과 북왕국 이스라엘을 쳤고, 아람 족속의 수도인 다메섹(Damascus)을 점령하고, 아람의 왕인 르신을 죽입니다(9절).
그런데 더 가관(可觀)인 것은 남왕국 유다의 왕인 아하스는 다메섹에 있는 앗수르의 왕 디글랏 빌레셀을 만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서 다메섹에 있는 제단을 보고 그 제단의 구조와 제도의 양식을 보고 그대로 그려 유다 왕국의 제사장인 우리야(Uriah)에게 보내어 예루살렘에서 그대로 만들게 하였고, 제사장인 우리야는 아하스의 지시대로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10절, 11절). 그 당시 국가와 국가의 전쟁에 있어서 각 나라들의 왕들과 백성은 그들이 섬기는 신들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나라들 사이에 전쟁이 있을 때 그 전쟁의 승리나 패배는 각 나라가 섬기는 신들 중 어느 신이 더 강력한지에 따라 갈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니 아하스 왕이 볼 땐 강력한 힘을 가진 앗수르가 섬기는 신이 강력하다고 볼 수 있었고, 그러한 앗수르 신을 섬기는 제단을 더 좋게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앗수르 신을 섬기는 제단을 다메섹에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 그대로 예루살렘 성전에도 만들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12절부터 16절을 보면 아하스 왕은 다메섹에서 돌아와 예루살렘의 성전에 있던 제단을 다메섹에서 본 대로 만든 새로운 제단으로 바꾸게 하였고, 그 새로운 제단에서 제사를 드리게 하였고, 자신도 그 새로운 제단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12절, 13절). 그리고 원래 있었던 놋제단은 아하스 자신이 하나님께 여쭐 일이 있을 때만 사용하도록 하였습니다(15절). 13절에 나오는 수은제(酬恩祭, Peace offering)는 화목제(和睦祭)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종종 발생합니다. 세상적이거나, 이교적(異敎的)인, 그리고 성경적이지 않은 요소들이 버젓이 교회 안으로, 기독교 안으로 은근슬쩍 들어오기도 합니다. 이미 그렇게 들어와 있는 요소들도 있습니다. 물론 어떤 것은 성경의 진리와 본질에 관계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부분은 분명히 성경적인 진리와 본질에 위배(違背)되는 것인데도 교회와 기독교 안에 들어와 있는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하스는 성전에 있던 물두멍 받침의 옆판을 떼어내고 물두멍을 있던 자리에서 옮기에 합니다(17절).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성전의 구조와 각 제단이나 성물(聖物)의 모양과 크기, 놓을 자리 등을 모두 세세하게 말씀하셨었는데, 그렇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무시한 채 다메섹에서 본 앗수르의 우상을 섬기는 제단의 모습을 본떠 새롭게 만들어 원래의 것을 대체한 것입니다. 그리고 왕이 성전으로 들어가기 위해 만든 낭실(廊室, Colonnade)을 없앴는데, 그 낭실을 없앤 이유는 앗수르 왕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18절). 이 구절의 의미는 유다의 왕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성전으로 들어가는 낭실(출입구)은 유다의 왕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게 되기에, 앗수르 왕이 이것을 싫어할까 하여 그 낭실(출입구)을 없앴다는 말입니다.
아하스는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앗수르를 더욱 의지하였다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보다는 앗수르의 신을 더 위대하게 여겼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아하스가 하나님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15절에 아하스 왕 자신이 하나님께 여쭐 일이 있을 땐 놋제단을 사용하겠다고 말한 것을 볼 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지만, 하나님보다는 앗수르를 따르고, 앗수르의 신을 더 귀하게 여겼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남왕국 유다의 왕인 아하스는 매우 세속적인 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남왕국 유다였지만, 하나님은 이미 한쪽 구석으로 밀어낸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의 정세(政勢)를 살펴 강력한 제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앗수르에게 달라붙어 앗수르를 의지하였고, 앗수르를 따르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유다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변의 정황을 보면 하나님보다는 더 의지할 만한 것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것들을 의지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긴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보다는 세상의 것들을 더 의지하는 모습이 우리에게 있지는 않은지요? 세상의 것들이 더 강력해 보이고, 더 내게 도움이 되고 유익이 될 것 같아서 그것들을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혹은 제사장 우리야처럼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야 할 제사장이 하나님의 말씀과는 다른 것을 요구하는 왕의 지시에 거부하면서 바른말을 해주기보다 권력 앞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주님, 철저하게 하나님만 의지하며, 내 유익이나 내 생각에 따라 믿음을 변질시키지 않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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