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7일 주님 공현 대축일 복음 묵상 (마태 2,1-12) (이근상 신부)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마태2,7-12)
박사로 옮긴 '마고스'는 별자리를 보고 뭔가를 예언하는 이들로 신비한 앎을 가진 사람들로 여겨졌다. 복음에 이들과 별이 등장하니 낯설다. 그런데 이들의 역할이 재미있다. 보통 사람들이 모르는 무엇을 좀 아는 사람들이어야 하는데, 그들은 후일 아기들을 살해하는 살인자 헤롯의 정체를 알아채지 못한다. 게다가 별을 따라 왔다고 하는데, 복음에 따르면 그들이 베들레헴이라는 특정한 장소를 향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헤롯이 불러모은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의 가르침 때문이다. 뭔가 아는 사람들이라기보다 좀 순진한 사람들이란 인상이다.
그런데 그들이 가진 순진함이 순수한 면도 있다. 예수님을 경배하는 대목인데, 왕궁도 아니고 뭔가 그럴듯한 장소도 아닌데 그들은 보잘 것 없는 아기에게 거룩한(유향) 왕(황금)의 운명(몰약)을 봉헌한다. 역사적 사실로 여기기에 몹시 몹시 의심스럽지만 이야기는 전하려는 바가 있고, 의미심장하다. 오늘 주님공현대축일을 보내는 마음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다.
우리 역시 아득하게 멀고 먼 별을 따라 예수의 강생을 향하는 순례자다. 해서 사람들에게 묻고 또 물어가며 그가 있는 곳으로 향할 수 밖에 없다. 우리게 그의 위치를 알려주는 이들이 모두 거룩하고 거룩한 자들이 아니라는데 갑자기 우리 정신을 확 깨운다. 우리에게 진리를 알려주는 이들중에는 헤롯도 있고, 율법학자도 있다. 그들이 웃기는 이들이라서 그들의 가르침을 놓아버리면 베들레헴을 찾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여튼 그리 찾아가 만났을 때 마주하는 아기가 왕같지도, 거룩해보이지도, 또 사명을 수행할 낌새가 보일 것도 없는 핏덩어리 아기라는 사실. 주님 앞에 왔는데, 황금, 유향, 몰약을 바칠 제단이 없으리라는 예언.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마음의 별과 우리 삶의 부족하기 짝이 없는 스승들이 가르쳐준 주님의 자리에서 크고 크게 희망을 두는 마음이 오늘 주님공현대축일, 박사들의 마음이리라 복음이 알려주고 있다.
주님께서 우리 삶의 자리에서 우리의 봉헌을 받으시고, 참 긴 시간, 깊은 시간 우리 곁에서 성장하실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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