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포의 새벽 편지-686
천자문272
동봉
0997어찌 언焉Question
0998느낄 재哉Exclamation
0999온 호乎Emotion
1000잇기 야也Termination
이엔짜이후이에焉哉乎也yanzaihuye
(어조라고 하는것은 말을돕는글)
-언재호야 네글자는 어조사일세-
0997어찌 언焉Question
어찌 언焉 자는 그림 문자며
오랑캐 이焉 자로 새기기도 합니다
연화발灬 부수에 획수는 총11획입니다
언焉은 본디 새의 이름이라서
새 조鳥 부수에 속해야 할 글자이지만
예로부터 내려온 관례에 따라
연화발灬 부수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소릿값을 빌어 의문의 말이나
어떤 숙어 끝에 어조사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에 담긴 뜻으로는
1. 어찌, 어떻게
2. 어디, 어디에
3. 보다, ~보다 더
4. 이에, 그래서
5. 이, 지시 대명사
6. ~느냐?
7. ~도다!
8. 그러하다, ~와 같다
9. 오랑캐 따위가 있습니다
소릿값을 빌어 의문의 말이 된다 했습니다
나는 강원도 횡성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시골 두메에서 보내면서
타지역에 나가 살아본 게 1974년 한 해
충북 제천에서 지낸 게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1975년 열반재일에 절에 갔다가
그게 인연이 되어 사흘 뒤 머리를 깎았지요
원주 치악산 구룡사에서였습니다
구룡사에서 처음 행자생활을 시작한 이래
다섯 달이 지나고 치악산을 떠나
경남 합천 해인사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반드시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영남 사찰에는 호남 출신 스님들이 많았고
호남 사찰에는 영남 출신 스님들이 많았습니다
자기가 태어나 자란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살려는 출가자의 습성이지요
따라서 4년간 해인사에 살면서도
경상도 언어에 익숙하지 않던 나에게
색다른 경험을 안겨준 곳이 바로 부산입니다
해인사를 떠나 1979년도 한 해를
나는 부산 괴정동 사리암에서 지냈습니다
요즘은 잘 모르겠으나
옛날에는 도시에 목욕탕이 참 많았습니다
같이 있는 스님에게 제안했습니다
"스님, 언제 목욕하러 같이 가실까요?"
강한 경상도 억양으로 그가 대답했습니다
"어데예?"
말 끝을 올렸는지 내렸는지 생각이 안 납니다
나는 절 아래 양지 목용탕을 떠올리며
"네 스님. 양지 목욕탕이오"
그런데 돌아온 답은 "네"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내게 되물었습니다
"언제예?"
당연히 앞에서는 장소를 물었으니
이번에는 날짜와 시간을 물어볼 거라 여겼지요
내가 그 스님에게 얘기했습니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난 다 좋은데"
그의 대답은 순환의 법칙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어데예?"
옆에서 지켜보던 주지 스님께서
내게 이해를 시켜주셨지요
"정휴 스님이 경상도 말을 잘 모르시는구나!"
내 법명이 정휴正休입니다
동봉東峰은 법호이자 필명筆名이고요
주지 백우白牛 도승스님께서 빙그레 웃으며
"정휴스님, 경상도 말로 '언제예' '어데예'는
시간과 장소가 아닙니다."라고요
나는 스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언제예' '어데예'가 부정사임을 알았습니다
그로부터《천자문》'언재호야'를 생각하면
늘 사리암에서의 에피소드가 떠오르고
'언제 어디서'라는 시간과 장소를 떠올리면
생각은 1979년 3월로 되돌아갑니다
언어라는 게 참 재미있다는 생각입니다
'어찌 언焉' 자와 '즈음 제際' 자가 둘이 만나면
시간을 물어보는 '언제焉際'가 됩니다
어쩌면 우리가 늘 쓰는 우리말의 '언제'가
바로 이 '언제焉際'에서 온 것은 아닐까요?
시간을 뜻하는 '즈음 제際' 자를 뼈대로 삼아
시간의 흐름 위에 타고 있는 순간을
우리는 '현재'의 우리말 '이제'라 이름합니다
지난 시간이나 다가올 시간을 '저제'라 하지요
'때'가 '제'로 바뀌어 '갈 때' '올 때' 따위가
'갈 제' '올 제'로 쓰이기도 합니다
이 때를 뜻하는 단어가 '제' 이듯이
공간을 뜻하는 단어는 다름 아닌 '승'입니다
살아가는 이 공간을 '이승'이라 하고
죽은 뒤 가는 공간을 '저승'이라 부릅니다
이제와 저제, 올제와 갈제가 시간개념이라면
이승과 저승은 분명히 공간개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공간의 분리개념입니다
이승이라는 공간에 시간은 없는 것일까요
저승이라는 공간은 공간 홀로 존재할까요
이승과 저승이라는 공간에
이제 저제라는 시간이 함께 하듯
이제나 저제 올제와 갈제라는 시간 속에
공간도 언제焉際나 함께한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언제예' '어데예'라는 부정사 중에
어느 하나만이 부정사이고
나머지 다른 하나가 부정사가 아니라 하면
이는 온전한 말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전라도의 지방어 '거시기' '머시기'처럼
경상도의 지방어 '언제예' '어데예'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완벽한 언어요 아름다운 말이라 여겨집니다
0998느낄 재哉Exclamation
느낄 재哉 자는 꼴소리 문자며
입 구口 부수에 획수는 총9획입니다
느낄 재㦲/느낄 재㢤의 본자며
먹다 말하다의 뜻을 나타내는 입 구口와
소릿값 재戈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에 담긴 뜻으로는
1. 느낌
2. 어조사
3. 처음
4. 재난
5. 재앙
6. 비롯하다 따위입니다
느낄 재哉 자와 관련된 한자로는
㢤 : 느낄 재와 통하는 자
㦲 : 느낄 재와 통하는 자
䢎 : 느낄 재/어조사 기와 같은 자
䢋 : 느낄 재/어조사 기와 같은 자 가 있습니다
앞의 그림씨에 붙여 느낌을 강조합니다
애재哀哉! 아, 슬프다!
쾌재快哉! 아, 통쾌하다!
선재善哉! 아, 좋아라!
장재壯哉! 아, 대단하다
태재태재殆哉殆哉! 몹시 위태로워라!
재哉는 시작을 뜻할 때 쓰는 말이기도 합니다
'재생명哉生明'은 음력 초사흘로서
처음으로 달에 빛이 생김을 표현함이고
'재생백哉生魄'은 음력 열엿샛날로서
달에 어두운 부분이 처음 생김을 표현합니다
이 '재생명' '재생백'에 대한 얘기를 하려면
50년 전으로 거슬러가야 하기에 생략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말이《論語》에 나옵니다
'천하언재天何言哉'라는 말씀인데
"하늘이 뭐라고 하더냐?"의 뜻입니다
유가에서 말하는 하늘은 신의 세계가 아니지요
물론 도가에서 말하는 하늘도 자연입니다
유가나 도가는 종교가 아니고
윤리며 철학이며 대자연의 철리입니다
자연은 말 없는 가운데서도 늘 순행합니다
특히 '선재선재善哉善哉!'를 좋아합니다
불교 경전 속에 나오는 말씀으로
"착하고 착하다"로 직역하기도 하지만
구어체로 "좋아 좋아!"라든가
"그래 그래!"로 풀이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이 매우 흡족하거나
미안할 때면 같은 말을 중복시키지요
'그래 그래!'
'좋아 좋아!'
'어서 어서!'
'미안 미안!'
'잘했어 잘했어!'
'고마워 고마워!'
성서에 따르면 구약 <창1:1~1:31> 내내
신이 하늘과 땅을 처음으로 만드시고
신들의 모습으로 사람을 만드시면서
"신이 보시기에 좋더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신이 보시기에 좋더라神看着是好的"는
불교 경전의 "좋아 좋아!"와 맥을 같이합니다
한역 성서가 아니라 중국어 성서이기에
문어체에 해당하는 '선재善哉'가
구어체 '씨하오더是好的'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착하고 착하다善哉善哉'라는 문어체보다
'좋아 좋아!' '그래 그래!'라는 구어체가
마음에 가까이 와서 닿는 것은
어쩌면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라 봅니다
아무튼 그림씨形容詞 뒤에 붙는 재哉는
느낌의 표현인만큼 구어체가 좋습니다
0999온 호乎Emotion
온 호乎 자는 일가리킴指事 문자며
삐침별丿부수에 획수는 총5획입니다
악센트가 올라가는 것을 뜻하는 삐침별丿과
어조사 혜兮 자를 합쳐 이루어졌습니다
목소리를 구성지고 길게 뽑아내어
생각한 것을 모두 표현한다는 뜻입니다
여기 '온 호乎'의 새김 '온'이 무슨 뜻일까요
'온'이 감탄사로 쓰이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온'의 원어는 '원'입니다
국어사전 '원2' 에 따르면
놀랍거나 언짢거나 뜻밖의 일을 당할 때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나 원, 별소리를 다 듣겠네"
"세상에 원! 그런 일이 있었어?"
이처럼 감탄사 '원' 이
경상도 방언으로 옮기면서 '온'이 된 것입니다
경상도 지방어는 모음의 변형이 있지요
경상도를 '겡상도'라 하고
현미玄米를 '헨미'라 발음하곤 하듯이
감탄사 '원' 이 '온'으로 바뀌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새김 온 호乎는
'원 호乎'로 새김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분명 국어학자가 되지 못합니다
어쩌면 그래서일지도 모릅니다
대부분의 요즘 자전에서는
호乎 자를 '온 호乎' 자로 새기지 않고
'어조사 호乎' 자로 새기고 있습니다
'어조사'로 새길 경우에는 시비가 끊어집니다
옛 새김에 따르면 분명 '온 호乎' 자인데
'온'에 대한 질문을 피해갈 수 있는 까닭입니다
이에 담긴 뜻으로는
1. 어조사
2. 그런가
3. 아!, 감탄사
4. 부름呼 따위입니다
온 호乎 자와 관련된 한자로는
虖 : 울부짖을 호/온 호의 본자
呼 : 부를 호 자 등이 있습니다
1000잇기 야也Termination
잇기 야也 자는 그림 문자입니다
어조사 야/잇달을 이也로도 새기는데
새을乙 부수에 획수는 총3획입니다
또아리를 튼 뱀의 모양을 본떴으며
고개를 빳빳하게 든 코브라의 모습입니다
뱀을 보고 놀라는 '이크!' 의 소릿값을 가져와
의성어로 표현하여 이끼 야也가 되었고
의성어이기에 어조사로 쓰이고 있습니다
담긴 뜻으로는
잇기야也 자로 새길 경우
1. 잇기
2. 한곳에 대어 잇거나 한곳에 닿아서 붙는 일
3. 발어사
4. 어조사
5. 또한, 역시, 딴, 다른 따위며
잇달을 이也 자로 새길 경우
1. 잇달다, 다른 사물에 이어서 달다
2. 대야, 둥글넓적한 그릇 등이 있습니다
잇기 야也 자와 관련된 한자로는
乛 : 구결자 야를 비롯하여
焉 : 잇기 언/어찌 언/언조焉鳥 언/어조사 언
哉 : 잇기 재/느낄 재/어조사 재
乎 : 잇기 호/온 호/어조사 호
也 : 잇기 야/뱀 야/어조사 야 등이 있습니다
'잇기 야也' 자를 대개의《천자문》이나
자전에서는 '이끼 야也' 자로 새깁니다
그런데 나는 잇기 야也로 새기고 싶습니다
영어로 터미네이션Termination이라 푼 것도
바로 '잇기'라는 말과 같기 때문입니다
어려서《천자문》을 훈독訓讀할 때
늘 "이끼언 이끼재 온호 이끼야"였습니다
'선태류蘚苔類' 이끼가 아니었습니다
만일 이끼가 아니라면
뱀을 보고 놀라는 의성어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끼 야也 자는 뱀 그림 문자에
의성어가 어울릴 수 있겠지만
이끼 언焉 이끼 재哉는 꼴소리 문자입니다
그리고 이끼 호乎는 일가리킴 문자지요
그러므로 '이끼'는 '잇기'가 맞습니다
'언재호야焉哉乎也'에서 잇기 언焉은
문장이 앞에 오는 경우가 많지만
나머지 3글자는 거의 문장 끝에 놓입니다
문장 끝에 놓이는 어조사 잇기 야也 따위는
문장의 종결임과 동시에 새로운 시작입니다
터미네이션이 무엇입니까
터미널이 종점이듯이 종결입니다
터미널에 도착한 차량과 사람은
터미널에서 영원히 머물러있지 않습니다
저우씽스周興嗣가《千字文》끝자락에서
종결Termination의 뜻을 담은
어조사 4글자를 나란히 놓고 있습니다
비록 그의 책《천자문》은 여기서 끝나지만
그의 삶은 끝나지 않고 새롭게 이어집니다
2016년 1월 16일《천자문강의》를 시작한 뒤
오늘 11월 24일까지 315일이 걸렸습니다
오늘로 나의《천자문 강의》는 끝납니다
그러나 내 삶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다시 다른 길을 걸을 것입니다
터미널에 도착한 버스가
점검을 끝내고
기름을 넣고 다시 출발하듯이
그리고 터미널에 내린 승객들이
각기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다시 떠나듯이
나도 나의 다른 길을 걸을 것입니다
잇기 야也 자가 뱀의 모습이라면
이는 우로보로스의 법칙일 것입니다
이는 무한대Infinity의 기호일 것입니다
천자문 터미널에서 내려 갈 길을 가지 않으면
이는 터미네이션의 법칙을 어김이고
무한대의 법칙을 어기는 것입니다
아직《천자문》을 둘러보지 않으셨다고요
그렇다면 어서 관광버스에 오르십시오
나의 이《천자문》관광안내 책자가
당신을 증강현실AR의 세계로 이끌 것입니다
그동안 천자문 강의에
함께 해주신 SMS 독자 여러분!
이 글은 곧 여러분의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터미널은 목적지이며
동시에 출발지입니다
11/24/2016
곤지암 우리절선창에서
![](https://t1.daumcdn.net/cfile/cafe/2436B93758360B792D)
![](https://t1.daumcdn.net/cfile/cafe/243C313C58360B7D2E)
첫댓글 스님!
오늘은 정말 강추위입니다.
지난밤 당직을 서고 아직 밖으로 나가지 않았는데 나가면 추울 것 같습니다.
산사에서 감기 걸리지 않으시도록 건강 잘 챙기십시요!
이갑수 거사님, 그동안 큰 힘이셨습니다. 고맙습니다 힘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