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의 자헌(自獻)
즈카 2,14-17; 마태 12,46-50 /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2024.11.21.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입니다. 요아킴과 안나 부부는 늘그막에 얻은 마리아를 낳은 후 세 살 되던 해에 성전에서 하느님께 바쳤다고 전해옵니다. 어린 마리아는 부모의 이런 지향을 담은 깊은 신앙 안에서 자라났으며 자신의 신앙으로도 스스로 소명을 깨달을 무렵에 가브리엘 천사의 방문을 받고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리라는 전갈을 들음으로써 그 소명을 확신하였습니다. 우리는 마리아 가정의 모범을 통하여 신앙이 어떻게 시작되고 자라나는지, 그 뿌리에 대한 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낳으셨으며 기르시고, 또 장성하신 아드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십자가의 길을 걸으실 때에 그 누구보다도 그 십자가 속에 담긴 하느님의 섭리를 믿으셨고 따라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와 성령을 보내주셨을 때 그 누구보다도 기뻐하실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신앙의 결과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공생활 중에 믿음이 나약했기에 그분의 십자가 죽음 후에 빈 무덤 앞에서 흔들릴 때에도 성모 마리아의 흔들림없는 신앙을 통해서 다시 예수님께로 돌아올 수 있었고, 마침내 성령께서 내려오시던 날 성모 마리아를 중심으로 성령을 받고 교회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성모 마리아께서 걸으신 신앙의 길을 생각하면서, 하느님의 선택과 함께 그 부모의 봉헌이 그 신앙의 뿌리가 되었음을 아울러 생각하게 됩니다.
가톨릭교회의 공적 신심인 성모 신심은 아직도 죄를 극복해야 하고 성덕에로 자라나도록 노력해야 할 신자들로 하여금 교회 안에서 성덕의 모범으로 빛나고 계시는 성모 마리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교회의 원형이시며 신자들의 모범이시요 희망이시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순례하는 하느님 백성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로의 표지로서 빛나고 계시는 성모 마리아 자헌 기념일에 우리도 우리 자신의 신앙과 민족을 위한 성사로 나타나야 할 우리 한국 가톨릭 신자들의 신앙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럼으로써 성모 신심으로 인도되는 우리의 사도직 활동에서도 성령으로 잉태되시어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신 예수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신자들의 마음 속에도 태어나시고 자라날 수 있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현존과 부활 신앙 그리고 성령의 이끄심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성모 마리아와 함께 등장하는 예수님의 친척 형제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귀 들린 사람들에게서 마귀를 쫓아내신 기적을 본 바리사이들이 험담하기를, 마귀 두목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내는 것이라고 소문을 퍼뜨렸을 때, 하느님께 대한 신앙도 약했고 예수님께 대한 믿음도 시원치 않았던 친척 형제들은 성모님까지 부추켜 예수님을 말리려고 군중을 가르치시는 곳까지 쫓아왔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약한 신앙에다 귀까지 얇았던 자신의 친척 형제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으셔서 제자들의 전갈을 전해 듣고도 짐짓 모르는 척 반문하셨습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마태12,48) 그리고 당신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습니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 12,49ㄴ) 예수님의 이런 말씀과 처신은 당신의 어머니께서 그 누구보다도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분이시라는 자신감이 깔려 있는 태도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사람들 눈에 무례해 보일 수도 있는 이런 행동을 거침없이 하실 수 있으셨겠습니까?
혼인 성사로 맺어진 신자들의 가정에서도 성모 신심은 신앙교육의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을 성화시키기 위한 혼인성사의 은총은 부부의 신의만을 돈독히 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선물로 주신 자녀들에게 자신들의 신앙을 물려주는 임무를 포함합니다. 요아킴과 안나 부부처럼 하느님께서 베푸신 자비와 선택을 자녀들에게 알려주고, 그 자녀들의 삶을 하느님께 봉헌해 드리며, 그 자녀들이 장성해서도 자신들의 신앙으로 스스로 소명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도자가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받으신 소명은 구세주를 낳아 기르셨다는 점에서 탁월하고 고유한 것이면서도,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데 있어서는 보편적이며 영원한 것입니다.
부모들이 자기 자녀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신앙의 임무 속에는 개인적 소명뿐만 아니라 우리 겨레가 하느님께로부터 받고 있는 역사적 소명까지를 포함합니다. 오늘 독서에 나오는 즈카르야 예언자의 말씀대로, 요아킴과 안나 부부는 동족 이스라엘이 ‘시온의 딸’(즈카 2,14)이라는 애칭으로 불리울만큼 하느님께로부터 당신 백성이 되고 만민을 하느님께로 이끄는 빛이 되리라는 소명을 받았음을 확신하고 있었고, 이를 딸 마리아에게 전해주었습니다. 그러했기에 구세주를 잉태하리라는 천사의 전갈을 들은 처녀 마리아가 사촌 언니 엘리사벳을 찾아가 성령으로 충만한 대화를 나누었을 때 그 유명한 마리아 찬송을 부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자신을 구하신 하느님께 기뻐 뛰노는 마음으로, 하느님께서 큰일을 마리아 자신과 이스라엘에게 하실 것임을 확신하면서,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시고, 권세 있는 자를 자리에서 내치시며, 미천한 이를 끌어올리시고, 주리는 이를 은혜로 채워주시며, 부요한 자를 빈손으로 보내실 것”(루카51-53)임을 내다보셨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선택에서 비롯되어 민족의 파스카로 나아가는 신앙입니다.
교우 여러분!
하느님의 선택을 깨닫고 물려주는 것이 신앙의 뿌리요, 민족의 파스카를 위한 소명으로 나아가는 것이 신앙의 열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