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라도를 만났다. 미국에서 바다 건너 온 쉐보레의 기대주다. 이런 신차는 늘 설렌다. 쌍용이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우리나라 픽업 시장에 새로운 선택지를 내놨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 게다가 이 녀석은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북미 스테디 셀러다. 쉐보레의 공식 판매 결정이 반가운 이유다.
쉐보레가 콜로라도 국내 출시를 가늠한 건 오래됐다. 처음 만난 건 2018 부산모터쇼에서다. 당시 전시된 차는 고성능 버전인 콜로라도 ZR2였다. 실제로 출시된 건 2019 서울모터쇼에 등장한 모델에 가깝다. 특유의 투박함과 다부진 인상이 매력적이다. 외관 패키징도 괜찮다. 미국형 콜로라도와는 달리 프로젝션 타입의 할로젠 헤드램프를 기본화 하고 라디에이터 그릴, 사이드 미러 등 차체 곳곳에 크롬을 발라 디테일을 끌어올렸다.
측면에서는 사다리꼴로 다듬은 휠하우스가 돋보인다. 비포장길 주행을 염두한 듯 펜더의 갭도 상당히 크다. 휠은 17인치 한 가지다. 타이어는 굿이어제 랭글러. 포장 및 비포장도로 겸용인 올 터레인 타이어를 신었다. 편평비는 65시리즈, 단면폭은 225mm다.
시승 차량은 익스트림-X다. 이 등급에만 제공되는 디자인 요소도 눈 여겨볼 필요가 있다. 일단 우선 앞뒤 쉐보레 보타이 엠블럼이 까맣게 바뀐다. 전면부 엠블럼은 여기에 LED 광원까지 입혔다. 또한 머플러에는 크롬을 바르고 방수 재질의 바닥 매트와 사이드 도어 플레이트, 사이드 스텝을 제공해 기본형과 차별화했다. 다른 건 몰라도 사이드 스텝은 필수 아이템이다. 바닥이 높은 탓에 타고 내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다행히 익스트림-X가 아닐지라도 액세서리 품목으로 사이드 스텝을 설치할 수 있다. 가격은 77만 원.
인테리어는 꾸밈 없다. 레이아웃이 평범하고 소재에 신경 쓰지 않은 탓에 상용차 느낌도 난다. 하지만 사용성 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예를 들어 트래버스와 공유하는 스티어링 휠은 버튼을 빈틈없이 채웠다. 공조장치나 오디오 컨트롤 역시 직관적이어서 사용하기 편하다.
상품 구성도 마음에 든다. 쉐보레 모델로서는 드물게 천연가죽 시트가 기본이다. 운전대와 기어 노브도 가죽으로 둘렀고 앞좌석 열선, 앞좌석 부분 전동 조절 기능, 운전대 열선, 오토 에어컨, 자동 감광 룸미러, 오토라이트 같은 것들도 갖췄다. 특히 기본 제공되는 8인치 디스플레이는 애플 카플레이와 구글 안드로이드 오토를 지원한다.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쓰는 데 익숙하다면 굳이 80만 원 더 내고 내비게이션 패키지 안 넣어도 되겠다.
뒷좌석은 기대 이상이다. 물론 기대치가 워낙 낮아서 일 수도 있다. 175cm의 성인 남자 기준 뒷자리 공간감은 무난하다. 시트 각도가 직각에 가깝게 서 있고 방석 길이는 짤막한 탓에 묘하게 불편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가까운 거리라면 충분히 참고 견딜 만하다. 보태어 뒷자리를 위한 12V 아웃렛, USB 충전포트, 센터 암레스트, 원터치 파워 윈도도 빼먹지 않았다. 라이벌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편의장비도 어느정도 갖췄다.
콜로라도의 하이라이트는 적재함이다. 적재함 크기는 쌍용 렉스턴 스포츠와 칸 중간쯤이다. 공간만 놓고 보면 가로폭은 1,540mm, 세로 길이는 1,460mm다. 제원 상 트렁크 용량은 1,170L.
공간뿐만 아니라 디테일도 상당히 괜찮다. 예를 들어 바닥과 벽면에는 미끄럼 방지 재질을 넉넉하게 둘렀다. 트렁크에 타고 내리기 쉽게 손잡이와 발판도 마련되어 있다. 또한 이지리프트가 적용돼 테일게이트 도어 열다가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다. 이렇듯 소소한 디테일이 콜로라도의 경쟁력이다.
콜로라도는 자연흡기 방식의 V6 3.6L 가솔린 엔진을 얹었다. 디젤 엔진 쓰는 라이벌과 가장 대비되는 요소다. 배기량이 3,600cc에 달하지만 괜찮다. 비영업용이라면 어차피 자동차세는 2만8,500원에 불과하다. 8단 자동변속기와 기통 휴지 시스템(액티브 퓨얼 매니지먼트)을 적용해 나름대로 효율성도 갖췄다. 물론 유류비는 경유 먹는 렉스턴 스포츠보다 많이 들겠지만 정숙성 면에서는 콜로라도의 압승이다.
제원 상 엔진 스펙은 최고출력 312마력, 최대토크 38.0kg·m. 수치만 봐도 짐작할 수 있듯이 가속력이 출중하다. 2톤 넘는 덩치를 자랑하지만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7초대에 끊는다. 올 터레인 타이어를 미끄러트리면서도 말이다. 최고속도는 시속 160km에서 제한된다. 다만 이때에도 힘이 충분히 남아있다.
달리기 실력뿐만 아니라 사운드도 매력적이다. 소리의 크기 자체가 큰 건 아니지만 칼칼한 음색이 매력적이다. 2열 뒷편에 마련된 슬라이딩 윈도를 열고 주행하면 자연흡기 V6 엔진의 사운드를 더욱 적극적으로 느낄 수 있다.
주행성도 합격이다. 큰 차체를 품고도 코너를 선형적으로 돌아나가는 게 인상적이다. 운전대를 통해 전달되는 노면 피드백이 흐릿할지라도 조향감은 체급 대비 괜찮은 편에 든다. 무엇보다 칭찬할 만한 포인트는 승차감이다. 콜로라도의 차체 구조를 생각하면 의외다. 뼈대 위에 차체가 올라가는 프레임 보디는 특성 상 승차감이 뻣뻣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콜로라도는 뒷바퀴 차축에 흔히 판 스프링으로 부르는 리프 스프링을 달았다. 승차감 나쁘기 딱 좋은 조합이다. 그런데 콜로라도는 기대 이상으로 부드럽고 유연하게 반응한다. 과장 보태 웬만한 도심형 SUV와 견줄 수 있을 정도다.
물론 불편한 점도 몇 가지 꼽을 수 있다. 예컨대 코너에서 몸이 따로 논다. 풋레스트가 없고 시트가 몸을 제대로 지탱해주지 못 하는 탓이다. 브레이크 제동감이 어색한 것도 아쉽다. 제동력 자체는 준수하지만 초반 답력이 흐릿하다.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주행 환경이라면 꽤나 스트레스 받겠다. 첨단 안전장비라고는 차선 이탈 경고, 전방 충돌 경고가 전부다. 이마저도 기본형인 익스트림은 빠진다.
서울 도심과 자유로 일대 200여km를 주행했다. 시승을 마치고 확인한 트립 컴퓨터 상 연비는 8.0km/L. 공인 복합 연비와 비슷하게 나왔다(8.1km/L). 자유로에서는 L당 12km 가까이 기록하기도 했다.
쉐보레 콜로라도의 시작가는 3,855만 원. 필자가 시승한 모델은 익스트림-X 등급으로 4,265만 원을 받는다. 여기에 내비게이션 패키지와 트레일러 패키지를 더하면 값은 4,398만 원으로 오른다. 라이벌에 비하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콜로라도는 그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 100년 노하우를 기반으로 완성도를 끌어올렸고 상품 구성도 미국형에 비하면 탄탄하게 꾸렸다. 빠듯한 시승 일정 상 비포장도로를 달리진 못했다. 이 때문에 이 차의 모든 걸 느꼈다고는 확신할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기대감을 갖게 한다는 것. 미처 경험하지 못한 콜로라도의 매력을 찾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