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주일간 글쓰기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다. 감기가 걸리기 2주 전에 심한 독감에 걸렸지만, 병원에 갔다 오고도 낫지 않았다.
약이 동나버려 새로 지어야하나 고민했고, 가게 사람들에게 일렀다. 사장님은 괜찮냐며 걱정하셨다. 가게에서 같이 일하는 장미[가명]씨가 말하길 "이 약은 베트남에서 가져온 거"라며 휴대폰으로 검색한 약사진을 내보였다. 한국산 약은 너무 약하다며 자기네 나라 약이 잘 듣는다고도 덧붙였다. 이 말이 사기행각으로 생각되진 않았다. 그녀는 가까이서 본 사람 중 친절했고,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런 귀한 약이 있다면 달라고 부탁했다.
며칠 후 그녀는 약을 가져왔다. 그녀가 농으로 말하길, 우리 나라는 마약이 성행하지만, 약의 효능도 좋다고 했다.
아픈 기간동안 나는 고통으로부터 피어오르는 심오한 감정에 먹혀들어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투정을 부렸었다. 미안한 마음에 모두에게 스포츠 음료수를 돌렸다. 하지만 장미[가명]씨는 그보다 좋은 약을 건네주었다. 새롭게 받은 약이 잘 들 것만 같았다.
나는 매일 아침, 비타민 D와 감기약, 락토핏을 달고 달면서도 몸의 변화는 조용했다. 이열치열,
몸살과 두통이 동반한 감기만 오지 않으면 괜찮았다. 항상 챙겨먹어도 '기대하는 감정' 그 자체를 묵살했다.
간절히 바라던 기도를 셔틀콕 쳐내듯 감기가 다시 찾아왔다. 주사를 맞고, 약도 두어번 지어 먹었지만 딱히 이렇다 할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더 아파왔다. 잘 치고 올라가던 면역력이 상장폐지된 주식처럼 급락했다. 베트남 약 말곤 믿을 만한 약이 없었다. 애초에 잘 듣는 다던 유명한 '판콜'도 잘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미[가명]씨가 준 약을 먹자 몸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방 안에 앉아 있기만 해도 서늘했던 오싹한 한랭한 기운이 작은 창틈으로 스며든 햇볕에 빨려들어가기 시작했고, 점차 기분이 호전되었다. 감기 든 영혼이 육신에 손가락만 걸쳐 둔 채로 둥둥 떠다녔다.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이 강화되었고, 힒들었던 시간이 무색해질 만큼 강렬한 온기가 뿌리내렸다. 사람은 결국 타인의 도움을 통해 살아간다. 여기까지 오기가 험난한 여정이었고, 이대로 입원하는 건 아닐지. 가게사람들과 목사님과 글쓰기 모임학부님들, 친구들과 한뼘 더 멀어질 것 같아 보이지 않는 터널 벽을 짚으며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어떻게든 이 굴이서 서둘러 나와야 했다. 그래야 다음에 갈 길을 알 수 있으니까.
몸이 아프면 마음도 덩달아 아프다. 고통이 반겨와서 오히려 다행이었고, 이는 고통이 깨우쳐준 약이었던 것이다. 장미씨가 건네준 약처럼 나도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약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면역이 되기 위한 과정의 기반은 연결이 원천이었다.
나는 항상 혼자이길 바랬다. 그 누구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비신실한 종교인이 되었고, 어릴 땐 착하다고 불려져왔던 성격이 붕괴되었다. 의심을 통한 비관적인 태도로 타인이 주는 사랑에 추궁을 묻는 '사람모양새를 한 사람'으로 변모해갔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현실에서 사는 사람이 아닌, 판타지에 존재하는 타락한 캐릭터가 되었다. 그 캐릭터는 그 무엇도 아니었지만, 나는 신이라고 여기며 살아갔다. 오직 그만이 희망이라고 여기면서 말이다. 이는 '잘못된' 관찰로 생긴 명백한 오점이었다. 저번 주에 시도했던 짧은 명상과 경험했던 '감기약 에피소드'를 통해 자기관찰에 진입했다. 감기 든 영혼의 절반은 질병으로 곪아있었고, 나아짐을 기도하며 '아티스트 데이트'란 치유제를 발라줬다. 찬 물로 정신을 차리게 도와줬고, 몸이 뇌의 말을 듣지 않는 날에는 강제 필사와 글쓰기 등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게끔 설정했다. 코엔 돌돌 말은 휴지를 달았다. 가래가 락앤락 통의 절반 이상이 쏟아져 나왔다. 숨을 쉴 때마다 인후부근에 심한 통증이 느껴졌고, 폐포가 확장과 축소를 반복할 때마다 피맛 가래가 들끓었다. 아픈 기간이 늘어나다 보니 혼자이길 거부했다. 도움을 받길 원했다. 장미씨에게 받은 약은 새로운 생명력이 되었주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픔이 달아났다. 산책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걷는 일조차 힘들어지지 않았다. 아픔을 받아들이자 창조의 고통이 따랐다. 하지만 재활력에 속도가 붙었다. 궁극적으로 내가 나아질 수 있었던 큰 원인은 '타인과 함께'였기에 가능한 영광의 치유였다.
[미참수업; 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