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직선 하나 그으려 했을 뿐인데
내 안에 펼쳐지는 생게망게 이상한 숲
"언제부터인지 이상한 숲이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어요.
그 숲으로 가는 길은 지도에 없어 내비 대신 나비를 따라가야 한대요. (……)
이제 배낭 속에 서른여섯 가지 크레파스와 스케치북,
자물쇠 달린 빨간 일기장을 챙겨 그곳으로 떠날 거예요.“
- 시인의 말 중에서
“세상의 경이로움과 경이로운 표현”을 궁리하며 발칙한 상상과 공상을 멈추지 않는 강기원 시인이 츄파춥스처럼 달콤한 동시집을 들고 찾아왔다. 강기원 시인은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 『바다로 가득 찬 책』으로 김수영문학상을 받았으며 『토마토 개구리』로 출판놀이 ‘주머니 속 동시집’ 공모전에 당선된 이력이 있다. 이번 책은 25년간 시와 동시를 부단히 넘나들며 독특한 미적 세계를 구축해 온 그가 4년 만에 선보이는 동시집이다. 전작 『지느러미 달린 책』에서 천진한 목소리로 존재들의 경계를 부드럽게 허물었다면, 이번 동시집에서는 그의 미적 세계에 뿌리내리면서도 한층 더 깊고 지극해진 시선까지 담아냈다. 제목 “우리 여우 꿈을 꾼 거니?”는 질문의 모습을 한 초대의 문장이다. 배낭 속에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을 챙겨 넣었다면, 내비 대신 나비를 따라 재미난 소문이 무성하다는 숲으로 함께 떠나 보자.
목차
1부 옹송망송 흐릿한 눈을 썩썩 비벼 보는데
빨간 정말 10
네 잎 클로버 키우기 12
손가락 츄파춥스 14
누가 물어봤나? 16
틀니가 웃는다 17
비몽사몽 18
빨간 망토의 골목 20
누워서 별 따기 22
잠들기는 어려워 24
2부 바람과 파랑에 몸을 실어
콩의 노래 28
초당 두부 30
브로콜리 32
별박이자나방 애벌레 34
월식 36
드림캐처 38
오늘 나는 론섬 조지 40
돌 속의 새 42
설레는 양파 44
불가사리 46
3부 생게망게 이상한 숲이 내 안에 있어
글꼴의 역사 50
나도 그렸지 52
나비와 비를 긋다 54
눈치와 뱁새 56
모기의 경고 58
먼지 카드 59
할머니 가방 60
배꼽의 길 62
잘 들린다 64
4부 너랑 나랑 삭의 어둠을 밝히면
조마조마 첫걸음마 68
바다 손은 약손 70
멸치의 자존심 71
여름, 풋 72
여우콩 여우팥 74
토끼 속의 달 76
가을검은밤나방 78
노래하는 돌 80
달 데이트 81
5부 직선을 그을 땐 조심해야 해
고양이 두부 먹기 84
달을 조금 샀어 86
토마토개구리의 빨간 겨울잠 88
캐나다 회색곰 이야기 90
드라큘라의 다이어트 92
일식 93
이유 있는 변명 94
직선 긋기 96
해설 | 우경숙 99
저자 소개
글: 강기원
발랄, 발칙, 깜찍, 생경한 동시를 꿈꾸며 공상, 상상, 망상 속에 곧잘 빠져 있곤 한다. 아이들의 귀여운 거짓말에 귀 기울이기를 좋아한다. 1997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 시집 『고양이 힘줄로 만든 하프』 『바다로 가득 찬 책』 『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밤』 『지중해의 피』 『다만 보라를 듣다』, 시화집 『내 안의 붉은 사막』, 시선집 『그곳에서 만나, 눈부시게 캄캄한 정오에』, 동시집 『토마토 개구리』 『눈치 보는 넙치』 『지느러미 달린 책』 등이 있다. 2006년 김수영문학상 수상, 2014년 출판놀이 ‘주머니 속 동시집’ 공모에 당선되었다.
그림: 류은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며 고스트북스 서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그것을 종이 위에 그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쓰고 그린 책으로는 『은지의 하루만화』 『Rhythm and Drawing』 등이 있습니다.
출판사 리뷰
직선 하나 그으려 했을 뿐인데
내 안에 펼쳐지는 생게망게 이상한 숲
직선을 그린다는 게
손이 흔들려 물결이 되었어
물결은 물결을 낳아
곧 바다가 되었지
--- 「직선 긋기」 중에서
모험의 시작과 끝은 ‘선 그리기’이다. 한번 그린 선이 절로 다음 이야기를 펼치는 과정은 우리가 꿈속 세계로 진입하는 과정과 닮았다. ‘꿈’이란 잠자는 동안 깨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물과 현상을 인식하는 것, 밖으로 내보이지 않으면 내 안에서 생겨나 내 안에서 사라지고 마는 것. 시인은 그 “옹송망송”하고 “생게망게”한 꿈의 시공간을 단단히 붙잡는다. 어항을 그리고 물풀을 그리고 금붕어를 그리고 물결을 그렸더니 빨간 지느러미가 살랑살랑 헤엄치기 시작하고(「빨간 정말」), 어젯밤 도화지에 그려 놓았던 잡채와 아이스크림은 다음 날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다(「비몽사몽」). 내가 그린 그림에서 촉발되는 이상한 현상, 현실의 논리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상들이 능청스레 펼쳐지니 이 꿈들은 더 이상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너와 나의 공유 경험이 되고, 그렇게 환(幻)의 영역으로 나아가고, 어느새 여러 존재들이 어우러져 놀고 있는 환상의 숲 공간에 이른다.
이처럼 시인의 모험은 지극히 사적인 ‘꿈’의 이미지에서 출발하지만 혼자만의 공상으로 빠지지 않고 ‘우리’라는 주체를 너그럽게 껴안는다. 하늘의 별 대신 바닷속 별을 꿈꾸는 별난 돌멩이(「불가사리」), 한 뼘 한 뼘 하늘을 나는 연습 중인 별박이자나방 애벌레(「별박이자나방 애벌레」), 돌 속에서 제 있던 곳을 향해 날아가는 흰 새(「돌 속의 새」) 모두 ‘꿈꾸는 존재’로서 하나가 된다. 특유의 “막힘없는 연금술”(유강희)로 서로 이질적으로 분류되던 개체들이 온전히 연결되는 것이다. 이는 합일에의 지향이기보다 “공생의 실현”(우경숙)에 가깝다.
개구리는 생각했어. 온통 빨강이잖아. 난 토마토개구리가 아니라 크리스마스개구리였군. 애써 졸음을 참은 보람을 느끼며 토마토개구리 아니, 크리스마스개구리는 눈 이불을 덮고 비로소 다디단 빨간 잠에 빠져들었지.
--- 「토마토개구리의 빨간 겨울 잠」 중에서
‘물 거야, 물 거야’
경고했는데도 피하지 못했으니
물려도 할 말 없다
--- 「모기의 경고」 중에서
시인은 개별성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꿈의 세계를 그려 냈다. 그러니 꿈으로의 전환을 지연시키는 ‘모기’(「모기의 경고」)와 ‘고등어’(「잠들기는 어려워」)의 존재감도 특별하다. 방해꾼이 아니라 잠이 지연되는 동안 공존하는 개체가 되면서 어느 존재도 다른 존재에 의해 지워지지 않는다. 이 안온한 세계에서 조그마한 것들은 “적잖은 위로”를 받는 꿈의 공간으로 부드럽게 나아간다. 강기원의 동시집을 함께 읽으며 우리는 어떤 모양의 잠을 잤으며 어떤 색깔의 꿈을 꾸었는지, 도란도란 말해 보고 쫑긋 들어 보고 살랑살랑 그려 보는 놀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환상적이야
침대가 출렁출렁 흔들리더니
밍크고래처럼 방 안을 떠다녀
밍크고래 위에 누워
고등어들의 떼춤에 맞춰 흥얼거리며
난 생각해
오늘 밤도 잠자긴 틀렸군
--- 「잠들기는 어려워」 중에서
말의 틈에서 뻗어 나오는 이야기
너도 나도 한 뼘 자라나게 하는 지극한 사랑의 힘
공생은 말의 봉합과 해체를 통해서도 일어난다. 「여우콩 여우팥」 속 여우콩과 여우팥, 「나비와 비를 긋다」 속 물결나비, 「가을검은밤나방」 속 가을검은밤나방은 벌써 제 이름 안에 흥미로운 이야기를 품고 있다. 생소해 보이는 것도 그 이름으로부터 털실처럼 풀려 나오는 이야기를 걸음걸음 짚어 나가다 보면 어느새 친근하다. 한편 멸치에서 광활한 바다를 느끼고(「멸치의 자존심」), 어둠 속 콩나물들의 노래를 듣는 마음 안에는 자연물에 대한 호기심을 넘어서는 존중심이 있다. 친근하지 않았던 대상이라면 친근하게, 친근했던 대상이라면 지극하게 볼 것을 제안하는 시인의 마음이 여기저기 다정함을 퍼뜨린다. 이를 “사랑의 힘”이라 명명할 수 있겠다.
“처음에는 호기심을 갖고 대상을 응시하다가, 그가 살아가는 방식을 헤아리며 깊이 공감한다. 내 속에 그의 공간이 점점 울창해지다 보면 다른 이들은 알지 못하는 그의 전부를 상상하게 된다. 이렇게 상상은 나와 다른 세계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세부적으로 확장된 상상은 지극히 사랑하는 상태와 비슷하다. 그렇기에 강기원이 그리는 상상 세계도 사랑의 힘에서 온다.” _우경숙(아동문학평론가)
바람과 파랑에 몸을 싣고 몽환의 숲을 유영하는 시간
조금 더 오래 놀고 싶은 안온한 환상 세계
강기원의 숲은 일러스트레이터 류은지의 부드러운 터치로 한층 더 몽환적이고 아름답게 형상화되었다. 그 속에서 물기둥 솟는 소리가 다 들릴 것같이 싱그러운 조팝나무와 모란의 곁을 지나면 깡충 뛰노는 빨간 고양이와 초록 여우와 눈 맞출 수 있는 곳. 이 몽환의 숲에 놀러온 이라면 누구라도 조금 더 오래 머물고 싶을 것이다. 그렇게 형형색색 반가운 존재들과 한바탕 숲의 유영을 즐기고 나면, 돌아온 현실에서 키가 한 뼘이나 자라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배낭 속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꺼내 ‘그리기’와 ‘바라보기’의 잠재력을 가득 머금은 그림들을 하나하나 따라 그려 보아도 좋겠다. 명심해야 할 사실 하나, 선을 그리기 전에 단단히 심호흡을 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