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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를 비치던 심연의 달의 빛이 모습을 감추고 다가온, 인간들이 활동하고 인간들이 살아가는 시간. 하늘은 푸름을 머금고 대지는 환한 빛으로 감싸이는 시간.
어둠이 아닌, 빛의 태양이 존재하는 낮의 시간. 그리고 햇살이 따스하게 비치는 화창한 날씨의 도시.
때마침 도시에는 모든 사람들이 편안하게 일을 끝마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휴일이 겹쳐 시끌벅적했다.
시장에 나와 물건을 고르는 사람들,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꼬마 아이, 그 밖의 여러 사람들.
언제나 반복되고, 되풀이되는 ‘낮’이라는 일상의 한 조각. 그리고 그 조각의 파편 중, 하나의 시간을 보내며 그렇게 그들, 인간들은 있었다.
따스하게 몸을 감싸던 태양의 빛. 하지만 이제는 생명을 위협하는, 심장을 겨눈 칼날과 같은 것.
조금만 손을 뻗으면 닿았던 것. 하지만 이제는 손을 뻗을 수조차, 아니 손을 뻗어서는 안 되는 것.
밤의 일족인 그들에게 신이 내린 대가. 그것은 햇살이 비치는 태양의 광경 아래 서는 것조차, 햇살을 바라보는 것조차 할 수 없는 저주.
인간과는 다른,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된 후 처음으로 눈을 떴을 때 노엘은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것이 어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인지―.
태양의 빛을 피해, 태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완전히 흰 커튼으로 가려진 창문. 그리고 그 때문인지 낮인데도 마치 낮같지 않은 어둡고 으슥한 분위기.
“하아.”
바깥의 시끌벅적한 소리, 아니면 오랫동안의 숙면 때문에 반사적으로 눈이 떠진 것인지, 노엘은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내고 침대에서 일어섰다.
잠에서 덜 깨서인지 흐릿한 시야에 노엘은 눈을 비비고는 한 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시야가 밝아지자 그녀는 주변을 대충 훑어보았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낮인데도 어두운 분위기. 그리고 난생 처음 보는 낯익은 방과 낯익은 가구들. 자신이 늘 익숙하게 지내던 자신의 집의, 자신의 방이 아닌 다른 곳.
“아. 그랬었지.”
지난번 밤, 너무나도 짧았지만 모든 것을,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밤. 아버지와의 일, 그리고 카인과의 일.
그 모든 것을, 잠에서 깨어난 노엘은 기억해내고는 약간은 서글프면서도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윽고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뻗은 두 손을 바라보았다.
헌터들로부터 사형명령을 듣고 위기에 처한 순간 나타난 카인. 그리고 그 손을 잡은 자신.
“나 이제…… 인간이 아니야.”
송곳니가 목을 꿰뚫는 순간, 인간으로서의 삶은 끝났다. 그리고 그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한 것은 자신의 의지.
하지만 왠지 모르게 어둠속에, 인간이었으면 보이지 않았을, 느끼지 않았을 무언가에 노엘은 약간 주춤했다.
“결심했으면서…….”
그 망설임과 두려움을 이겨내려는 듯 노엘은 뻗은 두 손을 꽉 쥐었다.
함께 하기로 결심했기에. 언제나 자신 앞에서 슬픈 표정을 짓다가도 자신이 의식하면 언제니 쓸쓸하게 미소지어보이던, 지독한 고독과 어둠속에 살아온 그를 위해.
인간임을 포기하면서까지 그의 아픔과 고통을 달래주고 싶었기에.
두 손을 꽉 쥐어 아픔을 느끼며 노엘은 눈을 감았다. 자신의 약한 마음을 다 잡기라도 하려는 듯이.
“이건 내가 스스로 선택한 거야.”
눈을 뜨고 침대 옆에 놓은 펜던트를 보고는 노엘은 미소 지었다. 어둠 속에서도 아름답게 빛나는 붉은 장미를 보고, 노엘은 펜던트를 따스하게 손으로 감싸고 끌어안았다.
“윽.”
하지만 별안간, 노엘은 손에서 펜던트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갑자기 머릿속에서 무언가 스위치가 켜진 것처럼 고통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깨져버릴 것만 같이 아파오는 머리, 타는 듯이 계속 되는 갈증, 심하게 고동치는 심장.
멈출 줄 모르는 고통에 노엘은 고통스러워하며 침대에 쓰러졌다. 그녀는 머리를 감싸 쥐고는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고통을 이겨내려는 듯이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하지만 고통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해질 뿐이었다.
“으윽.”
고통에 노엘은 몸부림쳤다. 그렇게 극한의 한계까지 이른 몸을 이끌고 노엘은 억지로 타는 듯 한 목마름에, 놓인 물 컵의 물을 마시려고 했다.
하지만 컵은 힘이 전혀 없는 노엘의 손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그렇게 컵은 바닥에 떨어진 충격으로 분해되어 깨져버렸다.
“아!”
힘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 억지로 컵을 향해 몸을 움직인 탓에 노엘은 시야가 흐릿해져가며 몸이 비틀거림을 느꼈다.
그렇게 앞으로 몸이 쏠리며 쓰러지려는 순간, 노엘은 겨우 마지막 남은 힘으로 쓰려지려는 몸을 침대를 붙잡고 바닥에 손을 짚어 몸을 지탱했다. 하지만 몸이 쏠리는 순간, 처음 바닥에 닿았던 손은 컵이 깨진 파편에 닿고 말았다.
피부 깊숙이 박힌 날카로운 파편. 그리고 파편이 박혀 바닥을 적시는 붉은 빛.
“읏!”
파편이 박힌 아픔에 노엘은 신음소리를 내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파편이 박힌 손을 보고 노엘은 상처를 어떻게 해보려 손을 들었다.
유리 파편은 피부를 관통해 깊숙이 박혀있었다. 그걸 빼려면 꽤나 상반된 고통이 따를 것만 같았다. 하지만 헌터로서 뱀파이어에게 당한 다친 동료들을 치료한 경험이 제법 있었기에 노엘은 이걸 그대로 두면 상처가 덧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노엘은 결국 파편을 빼내기로 하고 쭈그리고 앉아있는 상태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윽고 그렇게 그녀는 눈을 꼭 감은 채 파편을 한 손으로 쥔 채 서서히 힘을 주어서 파편을 빼나갔다.
“헉……헉…….”
파편을 빼면서 느낀 고통에 노엘은 식은땀을 비 오듯 흘리고, 안 그래도 안 좋은 몸 상태로 인해 무리한 탓에 심하게 거친 숨을 내쉬었다.
‘이제 치료를…….’
식은땀이 잦아들고 숨도 정상으로 돌아와 편히 쉬게 되고 노엘은 이제 치료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다친 손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또다시 흐려지는 시야에 노엘은 머리를 감싸 쥐어야만 했다.
“아, 정말 왜 이러는 거야?”
계속 되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상에 노엘은 조금 짜증이 난 듯 투덜거렸다.
거의 어릴 적을 제외하고는 아픈 적이 손을 꼽을 정도로 작았던 자신. 헌터로서 고된 훈련과정을 처음 겪고 나서 조금 아프고 난 후, 점점 몸이 훈련에 적응되어가고 그만큼 체력이 강해져서 아픈 적이 없었던 자신.
‘아, 좋은 향기.’
머리를 감싸 쥐고 있다가 풍겨오는 향기로운 냄새에 노엘은 기분이 좋은 듯 미소를 지었다. 그 향기를 맡고나서 이상하리만치 흐려졌던 시야와 고통이 덜 해졌기 때문이었다.
시야에 비치는 붉은 빛. 특유의 비릿한 냄새. 헌터라면 누구라도 항상 익숙한 냄새.
‘정신이 혼미해져가는 거 같아. 저항할 수가 없어.’
아무런 생각도 감정도 들지 않고 멍해져가는 정신에 노엘은 자신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심지어 바닥의 피로 몸을 움직이고 있는 줄도 모른 채.
“노엘. 무슨 일……?”
때마침 몽롱해져있는 노엘의 방에 카인이 피 냄새를 느끼고 들이닥쳤다. 하지만 카인은 노엘을 본 순간, 말문을 잊지 못했다.
눈동자가 붉은 빛으로 서서히 짙게 변해가며 피로 물든 손바닥을 입가로 가져가고 있는 노엘. 그리고 입술 사이로 살짝 보이는 그것.
“노엘. 정신 차려. 이성을 잃으면 안 돼.”
이윽고 노엘에게로 다가가 몸을 숙이고는 카인은 노엘과 눈을 마주친 채 큰 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한동안 노엘은 여전히 손바닥을 입가로 가져가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자 카인은 좀 힘을 주어 노엘의 손을 낚아챘다. 그리고 노엘을 달래려는 듯 자신에게로 손을 잡아끌어 안았다.
“아? 카인? 네가 왜 여기에……?”
겨우 정신이 든 노엘은 갑자기 자신을 안고 있는 카인에 놀랐다. 그렇게 시야가 뚜렷해지고 정신이 들자 노엘의 시야에 무언가가 보였다.
“아악. 저……저건…… 나?”
거울에 비친, 붉은 눈동자의―. 짙은 붉은 눈동자의, 헌터로서 사냥을 하던 때 봐오던 이성을 잃은 그들. 그것은 피를 탐하는, 밤의 일족의 모습.
“진정해. 노엘.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도 잠시일 뿐일 테니까―.”
거울에 비치는 모습이 보이지 않게 몸으로 가리고는 카인은 노엘을 품에서 떼어놓았다. 그리고 담담한 표정으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혼혈, 상급의 뱀파이어가 인간을 물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는 알고 있겠지?”
“그 인간은……. 뱀파이어가 되고 말아. 그리고 결국 나중에는 이성을 잃고 피를 빠는 존재가…….”
차분하게 자신을 진정시키고는 무언가를 말해주려는 카인의 눈길에 노엘은 자신이 아는 것을 대답했다. 자신을 언제나 바라보던 그 눈빛, 그 쓸쓸한 눈빛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난 그들과는 달라. 인간의 피가 섞인 그들과는 달리, 난 완전한 뱀파이어야. 그렇기 때문에 네가 피를 마신 인간은 이성을 상실하지도 않고, 뱀파이어가 되고 말지. 아마도 충돌하고 있을 거야. 인간의 피와 나로 인해 생긴 뱀파이어의 그 무엇이…….”
“아…….”
약간은 한숨 섞인 소리를 내고는 노엘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카인이 다시 얘기를 계속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지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녀는 언제나 자신을 봐오던 연한 붉은 빛의 아름다운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괜찮으니까……. 각오했잖아.”
자연스럽게 미소를 짓도록 노력해서 미소를 짓고 아무렇지도 않은 채 노엘은 카인을 바라보았지만 카인은 여전히 슬픈 표정을, 쓸쓸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정말……너는……. 언제나 사실은 약해면서 네가 걱정하는 눈을 하면 웃어 보여. 조금은 솔직히 감정을 드러내도 좋을 텐데 말이야.”
그런 노엘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 짓고는 카인은 다시 굳어진 표정으로 돌아가 말문을 열었다.
“뱀파이어가 인간의 피를 마셨다 해도 바로 그 인간이 뱀파이어가 되진 않아. 아주 잠시 동안은 예전처럼 인간이랑 다를 바가 없어. 하지만 점점 충돌이 일어나면서 완전히 뱀파이어가 되어버리지. 그러는 시간동안은 몹시 극심한 고통과 갈증이 일어나. 인간이었던 모든 것을 뱀파이어의 무언가가 다 바꾸어 버리기 때문이야.”
카인의 얘기에 노엘은 모든 것이 납득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모르던 사실. 자신이 전혀 뱀파이어에 대해 모르고 있던 사실의 일면을 본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말문을 이어가던 카인이 갑작스럽게 화제를 돌린 순간, 카인이 자신의 귀에 속삭이는 것에 노엘은 살짝 놀라고 말았다. 그대로 그녀는 표정이 굳어져버리고 말았다.
「내 피를 마셔.」
“괜찮으니까……. 그 갈증을 없애려면 방법은 이것밖에 없어.”
정말로 괜찮다고 웃어 보이는 카인의 모습에 노엘은 진심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피를 마시라고 말하며 손톱으로 목에 상처를 깊게 내는 카인의 손을 붙잡았다.
붉게 목을 타고 흐르는 피. 밤의 일족이라면 누구나 탐내는 최상급의 피.
카인의 손을 붙잡은 노엘은 망설이지 않았다. 붉은 빛이 자신의 짙게 변해가는 붉은 눈동자에 비친 순간, 그녀는 카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약간은 망설이듯이 뜸을 들였다가 카인의 목덜미에 자신의 송곳니를 박아 넣었다.
“함께 하자. 길고 긴 어둠 속에서…….”
자신의 피를 마시는 노엘을 안고는 카인은 말했다. 그러자 노엘은 그에 응답하기라도 하듯이 입가에 묻은 피를 손으로 훔치고는 카인의 손을 붙잡았다.
‘언제까지나 함께…….’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는다고 해도 둘은 서로 지탱해가면서 함께 하기로 했다. 어린 시절, 붉은 장미 펜던트에 건 맹세를 다시 되새기며―.
안녕하세요? 은빛카린입니다.
이번 화는 Feel을 받은 관계로 빨리 써졌습니다.
그래서 4페이지 반 분량으로 찾아뵙습니다.
이번 화는 노엘 카를리아 외전편 후 시점입니다. 그리고 다음 화는 드디어
이번 Two Night의 제목이기도 한 붉은 장미의 도시, 크로스가 나오게 됩니다.
이제는 인간의 영역에서 벗어나 뱀파이어들의 세계에서 모든 이야기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글자가 너무 작기도 한 것같아 한 포인트 크게 늘여보았습니다.
지난화 글씨가 나으시면 말씀해주세요. 다시 바꿔드릴테니...
ps. 그럼 오타나 지적할 사항 남겨주시고 감상한 후 덧글 달아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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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
쿨럭. 어머나 무진장 빠르시군요~♪
잘 읽었습니다! 쟤네 둘은 편마다 항상 서로 안고 있는 장면이.....,<
그리고보니 그러네요...-_-;; 이유인즉 흡혈하기 좋은 자세라는 것이 작가의 부연설명...
가면 갈 수록 분홍색이 되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건 저 뿐입니까... 음, 잘 보고 갑니다. 언제나 전투신을 기대하고 있는 1인.
그러게요... 가끔 쓰고나서 수정작업을 위해 보고는 저또한 움찔하니 말입니다...-_- 그런데...어쩌죠...? 한동안은 전투신이 없을 텐데...쿨럭. 뭐, 닭살 행각은 조금 없을 겁니다.
정말.. 러브씬이 흡혈씬이로군요...< 서로의 피를 주며 갈증을 달래야만 하는....퍽<
뭐, 이제 뱀파이어 영역에 들어왔으니... 갈증 걱정은 없겠어요.[...]
에헤헤.. 잘읽고가요오~
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이번편도 매우 재미있었습니다 !! 역시 카린씨의 소설에서만 볼수있는 자세한 심리묘사 ! 그것이 소설을 읽을때 긴장감을 더해주는것 같습니다 !! 다음편도 기대할게요 ^^
심리묘사가 저에게는 오히려 표현하기가 쉽죠...전투묘사보다는요. 전투묘사는 힘들어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