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 / 박선민
까마귀를 미워한 날엔
검은 피가 혈관을 돌아다니는 것을 느낀다
꾸역꾸역 낙타를 수혈받고 온 날엔
발목이 묶인 피가 외발 의자처럼 넘어지는 것을 느낀다
열두 번 잠을 깬 얼굴이
다시 하품을 하듯
흰 붕대가 왜 흰색일까 생각한다
반대로 흰 피가 있고 빨간 붕대가 있다면 상처는 어떤 색일까
상자에 몸을 구겨 넣는 잠을 잔다
눈동자가 모이는 곳을 지나갈 때면
풍선을 터트리는 상상을 한다
격식을 입으면 종종 알 수 없는 답이 역류한다
검은 피가 흐를수록 검은색을 미워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흰색으로 바뀌는 피를 느낀다
발목이 묶인 피를 수혈받았을 뿐,
도망간 낙타들을 떠올리면 어지럼증이 느껴진다
늘 길이가 모자란다고 느꼈던 사람은
유독 긴 붕대 감기를 좋아했다
까만 잠을 자지 못하는 사람은 우물에 손금을 비춰보고는 했다
만년설이 만년도 넘은 시간을 동여매고 있다
깊은 상처와 맨몸의 상태 중
어느 것이 더 고통스러울까
군중에게 물어보자
까마귀는 한 가지 말만 알고 있어서 부럽다
어떤 질문을 받아도 까악,
깍깍
— 월간 《現代文學》 2023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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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선민 시인
1997년 경기 고양 출생, 명지대 문예창작과 졸업.
202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