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 경기의 패배를 가지고 설왕설래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은 것은 알지만, 한일전이 주는 무게감이나 결과가 준 충격파를 생각하면 이 한 경기로 냄비가 된다고 해도 그리 탓할 것은 못되는 듯 합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쓰나미 피해, 한 선수의 죽음, 여자월드컵 우승 등 동기부여 요소가 강했던 일본에 비해, 승리에 대한 욕구가 그리 크지 못한 우리나라가 패할 가능성이 높았던 것은 어쩔 수 없었던 듯 합니다. 더구나, 조광래 감독은 여러가지 전술적 실험을 하며, 이 경기는 평가전에 불과하다는 태도를 명확히 했습니다.
2. 일본은 이 경기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욕구는 곳곳에서 드러냈습니다. 훈련장 배정부터 원정팀을 확실히 '배려'했지요. 여기에 덧붙여 자케로니 감독은 자신의 철학인 3백을 포기하고, 이전 일본팀에 익숙한 4-2-3-1을 채택하였습니다. 자케로니 감독은 기린컵을 3백으로 나섰다가 2전 2무 무득점, 무실점의 결과를 낳았습니다. 만일, 이 경기를 단순한 하나의 평가전으로 의도하였다면, 기린컵에서 보여준대로 3백을 뿌리내리기 위한 노력을 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케로니의 선택은 4백이었고, 이것은 승리를 위해서는 괜찮은 선택이었습니다.
3. 한편, 조광래 감독은 이 경기에서도 전술적인 실험 혹은 모험을 계속했습니다.
(1)이재성 선수의 선발은 영건에게 기회를 주려는 의도와 승부조작의 여파가 맞물린 결과라고 해석됩니다. 개인적인 견해로, 승리를 위한 최적의 조합은 이정수-곽태휘의 센터백 조합일 것입니다. 하지만, 조광래 감독은 그동안 영건 센터백을 꾸준히 소집, 기용해 왔습니다. 홍정호 선수가 우선적으로 기용되었고, 역시 젊은 수비수인 이상덕을 계속 소집하여 왔습니다. 이재성 선수는 여기에 이은 3순위 영건입니다만, 승부조작 여파를 비껴간 결과 이번 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기량 면에서는 괜찮은 모습을 보였다고는 하더라도, 수비는 호흡이라는 명제를 고려할 때는 확실히 안정감보다는 경험축적에 더 의미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은 선택이었습니다.
(2)5명의 중앙 지향형 선수가 2선에 몰려있으면 미드필드를 장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도 실험대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구자철-기성용-김정우-이용래, 이 4명의 미드필더들은 누구를 넣고 누구를 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어떤 포메이션을 쓴다고 하더라도 저 4명의 선수, 윤빛가람 선수를 포함하면 총 5명의 중앙 미드필더 중 한 경기에 쓸 수 있는 인원은 많아야 3명입니다. 때문에, 다른 포지션에 비해 재능이 넘치는 이 선수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조광래 감독의 가장 큰 숙제 중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강력한 일본의 미드필더진, 그리고 지동원, 이청용 선수의 불참 등으로 인해 조광래 감독은 이들을 모두 기용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결과가 좋은 건 아니었지만, 그것은 선수들 간의 호흡 문제 외에도 체력 등 다른 변수가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좋은 실험기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덧붙이자면, 최근 경기 내용을 보지 못해 확실히 말씀드릴 수 없지만 측면 자원으로서의 이근호 선수가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점은 허정무 감독 시절 이미 입증되었다고 봅니다. 이근호 선수의 '돌격 앞으로' 스타일이 측면과 어울릴 것이라 예상도 했습니다만, 이상하게도 안정환-이동국 조합만큼이나 기대 이하였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결국, 이 경기에서 이근호 선수의 측면 기용은 최선의 선택이라고 볼 수 없었습니다. 이근호 선수의 기용은 박주영 원톱-박주영 이근호 투톱 등 전술의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긴 합니다만, 경기감각이 떨어진 원톱, 측면에 어울리지 않는 포워드의 조합은 그런 실험을 할 경황이 없어 보였습니다.
(3)박주영 선수와 기성용 선수는 사실 선발로 뛰어서는 안 됐습니다. 조광래 감독이 밝혔 듯 박주영 선수는 경기감각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황이었고, 기성용 선수는 자신이 인터뷰에서 밝힌 바와 같이 체력과 시차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광래 감독은 이들을 기용하였는데, 박주영 선수에게는 경기 감각을 되살려준다는 의미가, 기성용 선수에게는 위에서 이야기한 4명의 중앙 미들 실험의 의미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기성용 선수는 왼쪽 풀백의 예상치 못한 연이은 교체로 인해 부득이 풀타임을 뛰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4)김신욱을 원톱으로 올리고 박주영 선수를 측면으로 돌리는 전술은, 뒤지고 있는 경기에서 후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괜찮은 선택으로 보입니다만, 조광래 감독은 이것을 후반 초중반에 실행하였습니다. 경기 양상을 충분히 지켜보겠다는 의미로 저는 파악을 했습니다만, 경기의 승부를 가리는 측면에서 보자면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일본은 경기를 잠글 생각이 없었고, 박주영 선수는 수비 부담만 크게 안게 되었습니다. 결국, 2번째 실점은 이런 전술적인 변화가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4. 왼쪽 풀백의 잇단 부상은 틀림없이 악재였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왼쪽의 김영권 선수는 조광래 수비의 핵심입니다. 센터백이 왼쪽에서 경기함으로써 팀은 4백에서 3백으로의 수비전술적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됩니다. 원래대로라면, 4백에서 차두리 선수의 전진 및 이정수-이재성-김영권의 3백 전환이 수비 변화의 기본인데, 왼쪽에서 잇달아 부상을 당하면서 이것이 무너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오히려 차두리-이정수-이재성이 최후방에 위치하면서, 박주호 선수가 전진하는 형태로 3백이 이루어졌는데, 박주호 선수의 수비 복귀가 늦어지면서 공간을 허용하게 되었고, 결국 3번째 실점의 빌미를 제공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김영권 선수의 부상은 차치하더라도 박원재 선수만이라도 정상 페이스를 유지하였다면 수비라인이 그와 같이 불안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5. 조광래 감독의 입장에서, 어느 정도 열세는 있다고 하더라도 이와 같이 참패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던 듯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동안 일본에 대해 우위를 점하던 정신력이나 체력에서까지 열세인 이상, 패배는 충분히 예상이 가능한 결과인 듯 합니다.
다만, 이 한 경기로 일본이 우리보다 우위에 섰다거나, 우리의 경기력이 떨어졌다거나 하는 의견에는 동의하기가 힘듭니다.
조광래 감독은 작년 이란과의 경기에서도 승부 결과와 전술적인 유연성을 버리고 3백을 고집하여, 홈에서 패배한 적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설왕설래가 있었습니다만, 상대의 원톱에 끝까지 3백으로 맞대응하며 수의 효율을 버린 이유는 3백의 훈련 외에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만화 축구를 한다며 수만가지 전술을 연구한 감독이 상대의 원톱에 대응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폐가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아시안컵에서 이란을 경기 내용 면에서 속된 말로 '발라버렸습니다'.
그간의 조광래 호의 여정을 보면, 이번 경기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듯도 합니다. 아시아의 라이벌을 상대로 한 전술 훈련 또는 전술 실험, 그리고 다른 대륙의 강호를 상대로 한 실전 경기. 그렇다면, 이번 일본전도 그러한 전술 훈련과 실험의 일환으로 파악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다만, 지나치게 결과가 좋지 않았을 뿐입니다.
6. 자케로니에게는 선택의 기로가 되었을 공산이 큽니다. 3백은 결과를 내지 못했고, 4백은 강력했습니다. 자신의 철학을 뿌리내릴지 아니면 기존의 길을 밟을지 결정해야 될 시기입니다. 가장 좋은 길은 3백과 4백을 경기 중 혼용할 수 있을 정도로 전술적인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이겠지만, 지금 우리와 같은 실패와 시련을 겪지 않는 한 그것이 가능할지는 의문입니다.
7. 조만간, 월드컵 예선이 벌어집니다. 공교롭게도 2번 시드를 배정받았다고 하니, 다시 일본과 맞붙을 수 있는 가능성도 충분히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때에는 우리가 이란을 잠재웠듯이, 적진 한 복판에서 다시 후지산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것도 박지성도, 이영표도 없이, 하나의 팀으로 말이지요.
첫댓글 굿
좋은글이네요~ 잘봤습니다
잘 봤습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글 고압습니다.
눈팅 유저로서 이런 글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정말 속시원하게 잘 봤습니다
잘보고 갑니다..^^
사실 이번 일본전을 일개 평가전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중요한 경기였습니다. 하여튼 글쓴이의 주관적인 글은 잘읽었습니다. (우리는 일본에게 경기 내용 면에서 속된 말로 '발려버렸습니다')
추천 쾅!!!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