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일기10
8월 27일
드디어 일자리가 생겼다.
피난처 제공 이외에 별루 도움을 못주던 그 백수녀석이
왠일로 일자리를 얻어다 같이 하자고 어제 전화가 왔었다.
무슨 일자리인지는 잘 몰랐지만 그녀석의 말대로라면
민첩한 다리와 뛰어난 판단력이 요구되는 일이라고 했다. 달리기야 틈틈히 연마를 했지만 판단력은 솔직히 최근들어
머리 쓴일이 없어서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일당 4만원이면 상당한거 아닌가..
설레는 마음으로 일을 받으러 갔다.
그녀석도 올것이다.
이제 그가 추리닝을 입고 오든 개념치 않기로 했다.
100파센트 그걸 입고 올것이기에..일의 설명을 들었다.
이 일의 브로커중 행동책인거 같은 녀석이 설명을 한다.
뭐 잡히면 자기들은 책임을 못진댄다..
그리고 마스크하나씩을 돌린다.
무슨 범죄조직인가 싶다.
순간 발을 잘못 넣은거 같다는 불안감이 음습했다.
백수새끼 지가 그러면 그렇지..
하여간 뭐 안좋은 일에는 꼭 같이 걸고 넘어 질려고 한단 말이야..
자기별로 돌아갈때 반드시 날 데리고 갈 것 같은 불안감도 밀려왔다.
그러나 일의 전모를 들은 나는 그렇게 위험한 일은 아님을 알았다.
도난방지작동중 이 스티커를 돈이 없거나 우리같이 백수될 처지로 보이는 사람의 차에다 붙이는,,
그녀석 말대로 판단력이 요구되는 일이었다.
순경이나 공근(공익요원)들에게 걸릴 경우 뭐빠지게
도망을 가야함으로 민첩한 다리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패쇄회로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마스크도 요긴하게 쓰인다.
도난방지작동중은 이중스티커다 다른면에는 차대출
서류대출 전화 564-9900 이라고 적혀 있다.
차 맡기고 돈쓸사람들은 여기로 전화해보세요..
투철한 직업정신임에 틀림없다.
하여간 이백수녀석하고 같이 일한다는 게 찜찜했지만
오늘 4만원 받아서 술먹을 생각을 하니 뻗는게 용기요..
솟는게 희망이다..
할당된것은 한 오백개 가량 되지만 다 붙이라는건 아니다. 친구들 컴에도 몇개 붙여주고 이쁜 아가씨 엉덩이에도
몇개 붙여 주어야 겠다.
그녀석이 제일 먼저 붙인곳은 말할 것도 없이 지 피시에스이다.
추리닝에나 붙여놓지..
판단력을 살려서 삐까번쩍한 차는 구경만 하고.
아니지 좋은 차도 주차장 아닌 이상한데 공짜 주차
시킨차에는 죄다 붙였다.
돈이 없다는 증거니까..
좀 차주인이 억울하게 생겼다 싶은 차는 다붙히고 다녔다. 그리고 비싼 요리집 앞에 세워놓은 차는 지나치고 짱께
집이나 만화방앞에 세워둔차..
차안에 이부자리나 식기도구가 있는차등에는 착실히 붙혔다.
백수 이놈은 달리기도 잘 못하면서 뻔히 운전사가 있는차에도 붙혔다.
안들키고 잘 붙힌다.
천직인거 같다.
근데 유리에만 붙여야 되는데 막 붙힌다.
불법주차 딱지 붙여놓은 그위에다가도 붙인다.
저걸 보고 지구인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기가 수퍼맨인지 의심해봐야 한다.
오전은 무사히 한 200여개 붙였다.
오후에는 학생들 차가 많은 학교 근처 골목을 돌아다녔다. 백수될 기질이 보이는 놈들이 많이 보였다.
뿌듯했다..
골목골목 불법 주차시켜 놓은 학생들차에다 열심히 붙였다.
저기 골목 끝에서 이상한 옷을 입은 사람둘이 열심히 무언가 차에다 붙이는 것을 보았다.
아마 우리같은 일의 종사자 였으리라..
묘한 경쟁심이 들었다.
더욱 분발하여 빠른 속도로 붙여 나갔다.
골목 거의 중간지점 차 한대를 사이에 두고 그들과 만났다.
이상한 눈으로 우릴 쳐다본다.
영역 싸움이었을까..?
반사적으로 마지막 남아있던 차에다 먼저 스티커를 붙였다.
그리고 승리의 미소를 그들에게 지어 보였다.
멀뚱멀뚱 우릴쳐다본다.
이것이 생존의 법칙이야 쨔샤..
근데 갑자기 호주머니에서 뭔가 꺼내더니 입에 문다.
옆에 있던 백수새끼가 갑자기 왔던길로 도망을 친다.
순간 그 이상한 옷이 무척이나 낯에 익은 옷이란걸 알았다.
짙은 남색바지에 푸른셔츠.. 휘리릭..!
호각소리를 듣자마자 나도 그새끼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저녀석 앞지르는건 문제도 아니다..
딸따리 신고도 그처럼 달렸는데 하물며 운동화신고 나왔는데..
근데 문제가 생겼다.
이백수새끼 추리닝이 점점 내려간다..
얼마나 피시에스를 끼고 다녔던지 고무줄이 상당이 늘어나 있었던 것이다.
뛰는 속도도 느려 질수 밖에 없다.
얼마 안가 잡힐것 같다.
이녀석을 버리고 도망을 가느냐?.
뒤돌아 봐 그녀석을 보니 평생 본적이 없는 불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떠나가는 임을 보내는 아낙의 야속한 마음을 그대로 담은
듯 멀어져 가는 날 애처로이 바라다보고 있었다.
이미 추리닝 고무줄부분은 그의 허벅지에 걸려 있다.
도저히 그를 버릴수 없었다.
내가 사다준 호떡을 맛있게 먹는 그의 얼굴이 페이드 인
(fade in) 되었다.
그래서 같이 잡혔다...
경범죄 뭐뭐에 해당된다고 그러던데 뭔지 잘 기억은 못하겠다.
인근 파출소로 끌려 갔다.
혹시 카메라가 들이 닥칠까봐 고개를 푹숙이고 마스크를 꼈다.
출석부 같은걸루 한대 맞고 도로 벗었다.
이런거 하면 안된다면서 취조하는 녀석이 존나 갈군다..
주민등록번호를 댔다.
당연히 깨끗하지 난 법없이도 살 사람이니까..
잘하면 그냥 풀려 나겠다 했는데..
보호자 전화번호를 대란다..
옆 백수녀석을 쿡 찔렀다.
이녀석이 순순히 전화번호를 분다..
019-******* 어디서 많이 들어본 번호다.
그 순경이 전화를 했다.. 몇초후..
따다 따다다 따다 따다다(밀양아리랑).
맙소사..
자기가 들고 있는 피시에스 전화번호를 갈쳐 준것이다.
아무죄없이 나까지 장난치냐며 한대 맞았다.
이녀석이 다른 전화번호를 대었다.
41-**** 순경이 전화를 했다.
또 이유없이 맞았다.
나까지.. 결번이랜다.
그녀석이 그제서야 앞에 05** 지역번호 붙여야 되는디..
그런다.
또 맞았다..
순경이 나를 째려본다.
나보고 대라 이소리다.
나 집에 이일 알려지면 재떨이에 맞아 죽어요 그렇게 애원했지만 소용이 없다..
순간 작은딸 학교 교무실 전화번호가 생각이 났다..
535-**** 이현주샘 찾으세요. 울 누나에요..
대기석에서 한 두시간 졸았다.
문이 열리더니 우리 작은딸이 왔다..
아까 날 출석부 같은걸루 팬 녀석한테 뭐라 듣고 한동안 망설인다.
아마 그 순경이 내가 지동생이 맞는가를 물어본거 같다. 우쒸... 한참만에야 죄송합니다 그러더니 우리한테로 왔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그 무시무시했던 파출소에서 나왔다. 누나는 우리한테 안말도 안했다..
옆에 백수녀석이 나를 쿡 찌르더니..
"야 니 누나 이쁘다...!"
그런다. 전혀 분위기 파악이 안되는 놈이다.
파출소 옆에 세워져 있던 경찰 오또바이 앞유리에다 도난경
보작동중 그 스티커를 붙이고 온다.
저걸 낳고 자기 어머니는 그래도 기뻐했겠지..미스테리다.
하여간 누나가 그래도 의리가 있었는지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였는지 안말 없이 넘어갔다.
고마움에 작은 누나방에 가서 어깨나 주물러 줘야지 하는 맘에 갔더니.. 내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문을 열자 갑자기 앙앙 운다.
"내일부터 쪽팔려서 어떻게 학교에 나가... 앙.."
'아 내가 그렇게 쟤한테 짐이 되는 존재란 말인가..!'
내가 다시 저거 보고 고마움이니 의리니 이쁘다느니 그러면 성을 간다.
가출을 하든지..
확 백수한테 시집이나 가버려라..
오늘 못받은 일당 내일 받을 수 있다고 하니 기쁜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수 있어따..
그리고 오늘 집에 오면서 탄 버스에서 자동경보작동중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는 차가 지나가는걸 몇대 보았다.
직업의 보람을 느끼며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은 평소보다 더 빠르게 더 많이 뛰었기 때문에 동네도는걸 접어둔다.
요즘들어 부쩍 딸딸이 싣는 횟수가 줄고 있다.
반성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