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강이 세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한다.
5천년 역사를 자랑한다는 우리나라가
한글의 독창성을 인정받고 있는 대한민국이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든다는 코리아가
이제 그에 걸맞은 나라가 되었다고나 할까..
늦은 감은 있으나 얼마나 기쁜 일인가.
몇 해 전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리뷰해 봤기에
그 글을 아래에 붙여보며 기뻐한다.
(프리다 칼로의 Broken Column / 깨져버린 기둥)
적육단 위의 무위진인
중국의 임제선사는 <임제록>에 무위진인(無位眞人) 이란 말을 남겼다.
고깃덩이(赤肉團, 신체)에 하나의 무위진인이 있어
항상 그대들의 얼굴을 통해 들랑거리는데,
이것을 아직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잘 살펴보라, 는 것이다.
그때 어떤 스님이 어떤 것이 무위진인이냐고 묻자
임제스님은, 이 무슨 똥딴지 같은 소리냐고 야단쳤다 한다.
선문답이 늘 그러하듯 알듯 모를 듯 하지만
살펴보지도 않고 물은 건 야단맞을 일이기도 했을 것이다.
무위진인(無位眞人)은 어느 것에도 속박되지 않은
자유인을 말한다.(국어사전)
걸림도 없고 얽매임도 없는 해탈의 경지라 하니
분별하려는 어리석음도 탐하려는 욕망도 내기 전의
순백의 마음상태라고나 할까..
그러나 마음은 쉼 없이 천만 갈래 색조로 바꿔가며
사방을 향해 날름거리고 있으니
무위진인을 어느 새에 본단 말인가.
유월도 잡다함 속에 다 지나가나 보다.
한국전쟁의 상흔을 되돌아보며 숙연히 보내고자 하나
보고 들리는 것 모두 그러질 못하니 어지럽기만 하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상을 받았다.
허나 마음은 편치 않고,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 부부의 유화전 앞에선
탐미의 미소를 짓기는커녕
찢어지는 아픔과 마주했을 뿐이다.
흑산도 벽지 어느 여교사의 수난을 듣고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으니
완력의 비대칭성에서 자행된 폭력이 말을 잊게 하고 말았다.
한강은 <채식주의자>에서 영혜를 내세워
육식을 탐닉하는 남성세계의 폭력에 가슴 앓는
여성의 절규를 쏟아내고 있다.
<몽고반점>에선 예술을 빙자하여 처제까지 농락하는
성폭력을 그리는가 하면
<나무불꽃>에선 폭력의 세계를 거꾸로 뒤집어
불태우면 새로워질까를 그리고 있다.
요즈음 갑 을의 불평등 관계가 자주 운위되고 있다.
채식에서 연상되는 동물성과 식물성이
포악성과 온유성으로 이어지고
남성과 여성이 성의 불평등으로 이어져
공세와 수세로 맞선다면
음양의 조화는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물론 작가의 의도야 다를 것이나
나의 눈에 비치는 건 그런 의문뿐이니
서로 수단시 말고
사랑의 목적으로만 대할 수는 없는 것일까?
남편 리베라가 숱한 여성편력에 더해 처제까지 탐하자
아내 칼로가 자신의 자화상에 칼 꽂고 못 박는 작품으로
아픈 내면을 드러냈으니 하는 말이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 역시 그런 생각을 보탠다.
문화재를 들춰 보며 예술을 즐긴다면서
재물이나 여색을 탐하는 남성세계의 속박에서 탈출한 두 여인이
결국 동성애나 즐기는 것으로 엔딩(Ending)하고 있으니
여성이 구원받을 게 그것 말고 없다면
인류가 파멸을 맞지 않을까 두렵다.
문학이나 예술은 한 가지로 풀이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허나 불가항력의 섬마을 여선생을
집단 성폭행한 건 리얼의 팩트였으니
아무리 심미안으로 아름답게 보려 해도 그럴 수 없겠다.
“고깃덩이(赤肉團)에 하나의 무위진인이 있어
항상 그대들의 얼굴을 통해 들랑거리는데,
이것을 아직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잘 살펴보라. “
이거야 선방에서 이뤄진 임제 선사의 일갈이지만
우리의 심장은 두 편 조각이라,
그중 어느 편이 행동에 이를지는 생각 뒤에 따르는 법이니
문득문득 얼굴에 들랑거리는
때 묻지 않은 심성도 바라보아야 하겠다.
선문답에서나 하는 무위진인의 경지는 아니더라도
생각하는 삶이어야 하겠기에 그리 생각해 보지만
그럼에도 마음이란 게 쉴 틈도 없이 천만 갈래 색조로 바꿔가며
지나가는 여인의 맨살 다리에도 두 눈이 내리깔리고 있으니
어느 틈에 무위진인을 본단 말이냐.
허나 청원유신 선사를 흉내 내어(山是山)
다리는 다리라 하다가
한 단계 그 부정을 거쳐 다리는 다리일 뿐이라 마음 잡으면
무위진인의 둥둥거리는 가슴소리는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2016. 6. 30.
첫댓글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며 석촌님의 독후감 잘 읽었습니다.
네에, 고마워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고맙습니다.
참 경사스러운 일이지요.
어제의 뉴스에서 보았지요.
소설가 한강이 한국최초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축하할 일이며,
맨부커 상을 받았다는 채식주의자는 읽었습니다만,
제 취향에는 좀 거부감이 왔지요.
무위진인, 도달해야 할 좋은 뜻이나
인간사회에서 그 참뜻을 이루는
참된 사람이 얼마나 될지요.
저마다 생각이 다 다르니까요.
물론 저도 말뿐이지만요..
작가의 작품이 관념에 치우치지 않고, 일반 독자들에게 숭늉 마시듯 술술 읽여지는 작품들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더 좋겠지요.
하지만 표현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서
소설에서도 운문젹 표현을 가미하자는 의견도 있긴 해요.
저는 프라다 칼로를 영화로 본적이 있는데요. 프라다 칼로와 채식주의자 비교 분석이
절묘하네요.
역시 선배님은 뭐가 달라도 다르세요.
대통령은 하늘에서 점지해준다고 하잖아요.
전업작가들에게 노벨문학상은 하늘이 점지해준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것같아서요.
운도 따라야 한다는 얘기예요.
스웨덴 한림원에서도 이제는 문학상에도
신선한 바람이 필요했나봐요.
페미니스트 소설에 민주화 운동에 희생된
소년 이야기까지 한강 작가의 다양한 글쓰기가 돋보였고 세계인들도 공감하는 내용들이라 그랬을거예요.
리얼리즘을 좋아하는 좋아하는 저는
채식주의자가 가슴에 와닿지 않지만
소년이 오다는 꼭 보고 싶어요.
(저는 채식주의자 리뷰를 예전에 보고
그런류의 소설 몇 편 보고나서는 아예 볼 생각도 않거든요)
그래서 소년이 온다같은 소설을 쓴 줄도 몰랐어요.
그나저나 한승원 작가가 얼마나 뿌듯했을 지는 세상을 다 얻은 것같았을 것 같아요.
한강 작가가 대한민국을 위해 큰일을 했어요. 감사한 일이예요 그~쵸^^
오랫만이네요 나무랑 님, 반갑네요..
문학도 그러하고 다른 것도 그러한데
마이너에 관심이 더 갑니다.
왜냐하면 매이저는 흔하고도 흔한 것들이거든요.
저는 그렇게 보지만 매이저가 편하기도 하지요.
흔히 밥먹고 흔히 뇌까리고 흔히 안정을 얻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