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고도 낯선 “당신에게”
낯선 철학하기 중간고사 대체 과제 – 우리는 왜 편지를 쓸까
생활환경복지학부
2020107182 김은수
I. 서론 및 주제 선정 동기
나의 취미 가운데 가장 특별한 것은 바로 ‘편지 쓰기’이다. 나는 기쁜 일이 있을 때도 편지를 쓰고 일이 잘 안 풀리는 날에도 쓴다. 특별한 하루에는 누군가가 특별히 보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그리운 대상은 종종 고정되어 있기도 하고, 그 때마다 다르기도 하며, 인간이 아닐 때도 있다. 최근에도 서울에 사는 펜팔 친구에게 손편지를 쓰다가, 습관처럼 적은 “OO에게” 라는 첫 문장이 문득 낯설게 느껴졌다. 메신저와 이메일 등 편리한 연락수단이 존재하는 이 사회에서, 나는 굳이 손편지를 쓰고 있다. 나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편지 쓰는 취미를 즐기며, 문구 잡화점에만 가도 다양한 디자인의 편지지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주제로 선정하기로 하였다. 과연 “우리는 왜 손편지를 쓸까?”
II. 현대 사회와 손편지
우리는 카카오톡으로 조별과제 및 팀 회의를 진행하고, 이메일로 영수증을 수신하며, 블로그에 일기를 쓰는 시대에 살고 있다. 특히 1980년~2000년대에 태어난 세대는 ‘태어나면서부터 혹은 어린 시절부터 디지털 기기에 둘러싸여 성장한 세대’ 라는 의미의 “디지털 네이티브”로 특징되기도 한다. 휴대폰의 통화와 문자 기능, 전자메일, 인터넷 메신저 등의 발달로 하고 싶은 말들을 바로 전달할 수 있으며, 이제는 없으면 안 될 만큼 중요한 존재들이다.
이는 최근 카카오 기업의 데이터 센터 화재 사건을 통해 여실히 느껴졌다. 카카오와 관련된 모든 사이트, 어플, 데이터가 중지되며 일순간 삶의 질이 하락하는 것을 느꼈다. 카카오기업이, 인터넷이, 과학기술이 인류에 가져온 변화 또한 익숙하고도 낯설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삶을 더 신속하고 편리하게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빠르게 달리고 휩쓸려가야만 하는 일상에 지쳐버린 걸까. 많은 사람들이 레트로와 아날로그를 그리워한다. 이렇게 발전한 사회에서, 속도와 편이를 스스로 내려놓는 사람들의 심리란 참 복잡하다.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을 촬영하고 바로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진 인화가 한참이나 걸리는 필름 카메라가 유행한다. 더불어 카카오톡으로 바로 용건을 전송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정사업본부 통계상의 우편 발송량은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편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III. 우리가 여전히 편지를 쓰는 이유
여태껏 주고 받은 편지들을 돌이켜보며 편지의 장단점을 떠올려보았다. 그러나 편지의 장점과 단점은 경계가 매우 불분명하여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우선, 편지는 “기록물”이다. 한자어 그대로 풀이하자면 기록된 물건을 의미한다. 즉, 빠르게 지나가는 순간순간들을 기록함으로써 ‘물질화’할 수 있다는 것이 편지의 장점이다. 기억해야할 것, 동시에 사라져버리는 것이 많은 시대에 두고두고 돌이켜볼 수 있는 나의 흔적이 생긴다. 상대방에게 보내는 이메일은 발신 보관함에서 삭제하면 그만이고, 카카오톡 메신저는 채팅방을 나가버리면 끝이다. 손쉽게 삭제할 수 있다. 스크린샷 캡쳐를 하지 않은 이상 추억이 되기 힘들다. 추억을 실물로 탄생시키고 보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편지의 뾰족한 메리트가 된다.
또한 전자메일과 메신저를 통해 보내는 문장들은, 사실상 0과 1로 프로그래밍 되어 있기 때문에 주고 받는 사람에게 “글자”로 남는다. 그러나 손편지는 글자들의 단순한 향연을 넘어, ‘물질성’ 자체가 주는 직접적인 “경험”으로 남는다. 활자 뿐 아니라 쓰는 이의 글씨체, 편지지의 종류, 발송 방식, 도착까지 걸린 시간들이 총체적으로 종합되어 하나의 경험이 된다.
반면 편지의 단점도 존재한다.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타자를 치는 속도보다 손을 직접 이용해야 하는 손편지 쓰기 속도가 월등히 느리다. 그러나 이는 장점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나에게 손편지를 주었을 때의 기쁨은 이루어 말할 수 없다. 편지지를 고르고, 글자를 꾹꾹 눌러쓰는 긴 시간 동안 나를 떠올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편지에 들어간 정성이 편지내용에 진정성을 부여해준다.
또한 편지는 정확한 작성시각을 유추하기 힘들다. 편지를 전달 받은 시각이 곧 작성 시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실물이 없는 인터넷 이메일, 휴대폰 메신저는 전송 버튼을 누르는 즉시 발송되기 때문에 작성 완료 시각과 발송 완료 시각의 격차가 대부분 크지 않다. 그러나 손편지는 수신자에게 실물을 전달해야만 한다. 우체국을 이용하거나 직접 가져다 주는 수 밖에 없으니 작성시각과 전달시각 사이의 이동 시간이 존재한다. 이 시차는 편지를 더욱 로맨틱하게 만들어 준다. 내가 밥을 먹거나, 샤워를 하고 생활을 하고 웃고 있거나, 어쩌면 매우 힘들어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순간에 지구 상의 한 명 쯤은 내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삶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곤 한다.
IV. 결론
나 또한 위와 같은 감동을 상대방에게 선물하고 싶어서 손편지를 쓴다. 신속, 간편을 추구하는 시대적 관점으로 보았을 때 편지는 너무나 느리고 번거롭다. 정말 단점 투성이인 최악의 연락 수단인 셈이다. 그러나 이 단점들이 편지의 낭만을 극대화 시킨다.
굳이, 수고를 들여가며, 일정하지 않은 글씨체, 완벽하지 않은 규칙의 행간, 비교적 오래 걸리는 이동 시간을 더해야 하는 편지의 속성은 애정과 정성 없이는 실현이 불가능하다. 이는 편지를 쓴 사람의 “진정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편지를 기다리게 만들고, 무슨 내용일까 궁금하게 만든다. 혹여 예고되지 않은 편지일 경우 소소한 깜짝 선물이 된다.
필요한 순간에 꺼내볼 수 있는 기록된 물질로서, 애정과 정성으로 빚어낸 시간의 경험으로서 내 방 서랍 속 한 켠, 마음 속 한 켠에 남는 것이다. 너무나 빠르고 건조한 이 사회에서, 우리는 어떠한 “순간”을 포착하여 “진심”을 담아 선물하기 위하여 손편지를 쓴다.
첫댓글 연구논문처럼 형식을 갖추어서 쓴 글이네요. 이제는 익숙해진 워드프로세서 또는 프로그램을 낯설게 보면 "손편지"의 존재, 이유, 가치가 등장하지요. 물론 그런 것들은 우리가 부여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어떠한 '순간'을 포착하여 '진심'을 담아 선물하기 위하여"라고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그것은 그렇게 되는 것이랍니다.